국내 제약사 '백신후보물질' 개발해도 文정부 움직임 없어… 활로 찾아 해외 모색기업에 자금 지원하면 "정경유착" 뒷말… 공무원들,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어웃돈 주고라도 백신 사왔어야 했는데… 그런 행동 정당화할 근거법도 없어
  • ▲ 군 장병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28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체육관에 설치된 예방접종소에서 해군 장병이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사진=해군작전사 제공) ⓒ뉴시스
    ▲ 군 장병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28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체육관에 설치된 예방접종소에서 해군 장병이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사진=해군작전사 제공) ⓒ뉴시스

    지난 27일 우한코로나(코로나19) 백신 국내 개발 전망을 밝게 하는 낭보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신약 연구개발 기업 제넥신. 

    이날 제넥신은 "인도네시아 최대 제약회사인 칼베파르마에 자체개발한 코로나 백신후보물질 GX-19N 1000만 도즈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계약조건은 칼베파르마가 제넥신에 계약금을 내는 대신 임상비용을 대는 조건이다. 

    칼베파르마는 임상을 거쳐 백신이 최종 개발되면 이 백신을 자국 인도네시아에서 판매하고 제넥신에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했다. 

    양사는 현재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에 임상2·3상 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제넥신은 제넨바이오·SL벡시젠·바이넥스·포스텍·국제백신연구소·카이스트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왔다. 

    제넥신에 따르면, GX-19N은 DNA 기반 백신으로 현재까지 총 240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전신 부작용은 전무했고 경증의 이상반응 또한 매우 낮았다. 제넥신은 이를 근거로 GX-19N이 어떤 백신 플랫폼보다 안전성이 뛰어나다고 자평했다.

    우리 기업, 백신후보물질 수출 성공… 최종 개발은 왜 더디나

    제넥신의 발표대로라면, 우리 기업이 개발한 백신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먼저 공급는 상황이다. 제넥신 관계자는 27일 통화에서 "사실 우리나라부터 제공하고 싶은데 우리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해외에서는 급하게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라며 "저희 같은 개발사로서는 정부가 움직이기만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활로를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넥신은 지난해 백신 개발 지원금 93억원을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영국처럼 백신을 개발할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개발이 더디거나 상용화가 지지부진하다는 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백신 원천기술의 부족을 이유로 꼽지만, 총체적 시스템의 부재라는 지적에 무게가 쏠린다. 

    백신 원천기술 부족보다 총체적 시스템 부재가 원인

    염호기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개발은 물론,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에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법률적·제도적 국가 시스템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는 대표적 전문가다.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대책본부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염 교수는, 한마디로 민간의 역량을 국가 차원으로 승화할 수 있는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본지를 통해 촉구했다.

    염 교수는 통화에서 "제넥신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기업들도 코로나 백신 개발 역량을 지녔다.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에 나섰다면 우리도 좀더 일찍 자체 개발한 백신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유병률이 낮아 백신 개발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한 염 교수는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면역원성을 가지고 임상을 하는 방법이 있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 정도 임상을 해서 면역력을 획득했는지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염 교수는 "백신의 면역원성이 어느 정도 나오면 되는지 임상시험을 해서 정하고, 그 다음에 여러 백신후보물질을 적용해 보면서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며 "그러려면 면역원성이 뭔지 정의부터 세워야 하는데, 그게 안 돼 있다. 세팅하자고 제안했지만 정부는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도, 수입도 근거법 없으니 공무원들 안 움직여"

    염 교수는 또 "정부가 특정 기업에 수백억원대 자금을 몰아줬다고 하면 당장 정경유착이라고 뒷말이 나오니, 공무원들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며 "백신 수입도 마찬가지다. 좀 비싸게 주고서라도 사와야 했는데, 그런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법이 없으니 책임을 회피하려다 이렇게 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우리 중앙방역대책본부에 자문위원회가 있다. 그런데 회의에 나가서 아무리 얘기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친 염 교수는 "자문위원회에 결정권을 주라는 근거법이 없으니 공무원들로서는 잔소리로 들릴 뿐"이라고 개탄했다. 
  • ▲ 27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해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들이 모여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경우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하며 야외 마스크 착용에 대한 지침을 완화했다. ⓒ뉴시스
    ▲ 27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해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들이 모여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경우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하며 야외 마스크 착용에 대한 지침을 완화했다. ⓒ뉴시스
    "형식적인 자문회의는 그만… 민간 역량 흡수할 변변한 위원회도 없어"

    염 교수는 "형식적인 위원회 대신 전문가로 구성된 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하위에 백신개발팀·방역운영팀·진단검사운영팀 등 전문분야별 실행 소위원회를 꾸려 전문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그래서 이들로 하여금 팬데믹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지속관리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런 시스템을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일할 수 있도록 예산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 염 교수는 "한 달에 한두 번 열리는 회의에 각 전문가가 출석해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형식적 자문회의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한편, 지난해 마스크대란에 이어 백신 수입도 늦어지자, 국회가 뒤늦게 나선 결과가 바로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의 개발 촉진 및 긴급 공급을 위한 특별법'(공중보건특별법)이다. 코로나 사태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의료제품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제정한 것이다. 

    국민의힘 백종헌·이종성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기동민·한정애 의원 등이 각각 유사한 법안을 발의해 병합된 법률이다. 이 법이 시행된 것은 코로나가 발발한 지 1년이 넘게 지난 올해 3월에 와서다. 

    뒤늦게 공중보건특별법 마련… "백신 수입 통관 원활해져"

    공중보건특별법은 "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의 신속한 개발을 촉진하는 한편, 긴급 생산·수입명령, 유통 개선 조치 등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 필요한 의료제품을 긴급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공중보건상 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제안이유를 밝혔다. 

    즉, 백신·치료제·마스크·진단키트 등 물품을 신속하고 긴급하게 개발·보급·수입할 수 있도록 법률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백종헌 의원이 식약처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법 제정으로 인해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 백신 등이 표시검사·품질관리 특례적용을 받게 됐다. 과거에는 수입제품 라벨에 한글 표시가 없으면 수입 통관을 통과할 수 없었다. 법 시행 후 백신에는 그와 같은 규제가 해제돼 수입이 원활해졌다는 것이 백종헌의원실의 설명이다. 

    식약처는 국내 코로나 백신 개발 촉진을 위해 국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하위법령을 정비 중이라고 백종헌의원실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