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대부' 장기표-'주사파 핵심' 민경우… 北 참상 침묵하는 '위장 지식인' 비판 사회주의 붕괴 후에도 친북적 환상… "북한 핵 보유, 경제 참상을 미국 탓으로 변명" "북한, 체제 유지 방해되면 남북관계 파탄시켜… 운동권은 엉뚱하게 우리 정부 탓만"
  • "북한은 남한과 대화·교류·협력이나 우리의 지원을 원하지 않는다. 운동권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 우리 정부에 있다면서 '정부 탓'을 한다."

    운동권 대부 장기표 선생은, 과거 보수정권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남북관계가 경색됐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등 대외협력이나 외부의 지원을 원한다고 알려진 것과 상반된 말이다.

    장 선생은 우리 사회가 북한의 '민낯'에 여전히 무지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변종 운동권들의 '북한 정당화'가 주효한 역할을 했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사회주의 실패와 1인독재로 인한 북한의 참상을 목격하고도 이를 사실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종 운동권들은 오히려 북한의 참상을 자연재해와 미국 탓으로 돌렸다.

    1960년부터 운동권에 몸담은 '재야 정치인' 장 선생은 민경우 수학연구소장과 만나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친북적 사고'의 구조와 대안을 모색했다. 민 소장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서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주사파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후 사회주의 붕괴 및 연평도 포격 등을 목도하고 북한의 실상을 인식, 북한 및 변종 운동권 비판에 나섰다.

    장 선생과 민 소장의 대담은 지난달 25일부터 수차례 진행됐다. 본지는 지난 12일 첫 순서로 '1970년대 운동권의 사상적 경향과 운동권에 미친 리영희 선생의 영향', 지난 19일 두 번째 순서로 '북한 참상에도 침묵하는 위장 진보 지식인들'을 각각 보도했다. 

    이번 순서는 '북한의 민낯, 그리고 친북적 사고구조의 대안'이다. 민 소장이 장 선생에게 질문했고, 간혹 장 선생 답변에 반박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북한의 실상에 대한 검증은 사실 (실패한 것으로) 끝난 상태다. 그럼에도 1980년대를 뿌리로 하는 생각과 관념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운동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북한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오면서 북한이 빈곤하고 북한 인민들의 삶이 참혹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운동권은) 여러 논리를 구사하면서 북한을 옹호했다.  

    첫째, '북한은 군사적으로 최강대국인 미국과 대결하려 하고 미국은 북한을 없애려 한다. 북한이 이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력에 경제력을 투입하다 보니 인민들의 삶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변명한다. 

    둘째, 1990년대 초반 북한경제가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심지어 한겨레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 '아, 굶주리는 북한동포여'일 때가 있었다. 북한이 사회주의 때문에 못사는 것인데, (운동권은) 주로 (자연재해인) 홍수 때문에 북한이 못산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못사는 이유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우리는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사회주의와 폐쇄적 독재로 말미암은 폐해, 북한인민의 피폐한 삶 등이 드러났으면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이유를 대며 변명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을 우호적으로 볼 근거는 있었다고 본다. 북한이 우리보다 잘살았고,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의 근거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도 친북적 성향과 그 사고가 유지됐다. (운동권은) 1990년대 초반 여러 사회적 문제가 있었음에도 (친북적 사고를) 해소하기보다 유지한 것이다. 이는 장기간 지속되면서 2021년 현재도 북한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존재한다. 친북적 사고구조의 원형은 어떻게 되고, 어떠한 구조적 요인으로 이 사고가 유지됐는가.

    "운동권 사람들은 남한 내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힘과 권력,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을 옹호하는 것이 유리했다. 이들은 (북한을) 옹호할 논리도 개발했다. 앞서 말한 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때문이고, 북한이 자국을 없애려는 미국에 대항하다 보니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식이다. 또 북한은 권력을 세습해 독재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막강한 미국에 대응하려면 민주주의를 하면 안 되고 (권력자는) 북한사회에서 가장 정통성을 갖는 백두산 혈통에 속해야 한다'고 정당화한다.

    다른 정당화 논리로, 남북관계가 안 좋아진 것을 모두 남한 정부 탓으로 돌리는 점도 있다. (운동권은) 예전에는 반공주의, 이명박·박근혜정부 때의 대북 강경책을 근거로 남북관계가 안 좋아졌다고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도 '미국과 대결하기 위해서' '미국은 핵탄두를 가졌는데 북한은 왜 못 갖는가' '북한은 남한을 향해 핵을 안 쓴다'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민족적으로도 낫다'는 등의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옹호한다."

    -한반도의 '북한정통론' 같다.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친북적 사고구조의 원형을 파헤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뿌리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초반까지, '한반도에서 정통성 있는 국가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북한정통론의) 주된 이유는 첫째, 북한은 무장투쟁(을 한 사람이 정부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경우, 김일성을 중심으로 정부가 구성됐다. 남한은 미국에 의존적이었다. 외교론을 강조한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가 만들어졌다. 또 북한은 사회주의였고, 남한은 자유주의였다. 토지 몰수의 경우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였지만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였다. 북한은 또 친일분자를 색출했는데, 남한은 친일한 자를 중용했다. 

    이런 식으로 (운동권은) 북한정권에 정통성이 있고, 남한정권은 미국이 세운 나라일 뿐이라고 사고한다. 이처럼 말한 것 자체는 사실에 부합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은 이외 북한의 나쁜 점들을 말하지 않았다. 가령, 북한이 친일분자를 색출했지만 학살도 많이 자행한 점 등이다. 북한은 박헌영·조소앙 등을 권력투쟁 과정에서 밀어냈다."

    -여기서 쟁점 하나를 말하면 첫째 이유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동일한 논리구조다. 그런 생각이라면 한반도에 들어선 남북한정부에 대해 정통 관점에서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정통성을 따진다면 북한이 초기에 한 것은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운동권 사람들이 북한을 옹호할 때도 반대했던 사람이다. 구체적 일화를 소개하면, 과거 운동권 사람들은 1970년대 초반 박정희정권의 장기집권을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우리가 박정희정권의 장기집권에 반대했다. 김일성은 장기집권을 30여 년 하는데, 북한을 지지하면 되겠는가'라며 반대했다. 

    무엇보다 북한과 같은 '자유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1970년대로 운동권사회 초기일 때 4·19혁명 10주년 기념 강연회에 학생대표로 연설한 적이 있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운동권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는 명분이고, 자기가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1인독재다. 이는 옳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항일무장투쟁을 한 김일성이 나라를 세운 것 등을 토대로 북한정권에 남한보다 더 정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4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면 북한에 나름 애정을 갖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있을 수 있다. 나는 '공산주의 자체가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역사적·사회적으로 특정한 조건 속에서 어떠한 이념이 사회 발전에 이로울 때가 있다. 가령, 1917년부터 1960년까지 소련은 사회주의를 했다. 소련은 농업국가였다가 첨단산업국가인 미국에 필적할 정도로 따라갔다. 이는 스탈린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 덕분이이었다. 

    중국은 194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인민공사 등을 통해 식량문제를 해결했다. 중국 역시 발전했다. 이는 마오쩌둥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 덕분이었다. 어떤 사람이 소작동을 하다 (사회주의 체제 특성인) 토지를 공동 소유한다고 하면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겠는가. 일할 의욕이 생기면 생산이 발전한다. 그러나 일정하게 먹고살 것이 생기면, 이것(공동 소유)이 인센티브가 되지 못한다. 사회주의가 붕괴한 것은 결국 사회주의 때문인 것이다. 한때는 사회주의 때문에 사회가 발전했지만, 지금 그 사회가 못사는 것은 사회주의로 인해 일을 안 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초기와 후기를 현상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지만, '사회주의 전체가 어떤 것이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 않나.  

    "(평가)하면 안 된다. 사회주의만이 아니다. 자본주의도 '옳다' '그르다' 판단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도 일정한 역사발전 단계에서는 사회에 기여했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사회 발전에 역기능을 한다."

    -북한 체제로 확장한다면, 김일성 체제는 항일무장적 관점에서 초기에는 정통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것인가. 

    "그렇게 평가해야 한다. 사회주의도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북한사회에서 좋았다. 그런데 그 이후 (사회주의가) 안 좋았다.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념의 생명성'을 (명확히) 정리한 학자를 보지 못했다."
  • ▲ 장기표(좌) 선생과 민경수(우) 소장. ⓒ정상윤 기자
    ▲ 장기표(좌) 선생과 민경수(우) 소장. ⓒ정상윤 기자
    -북한의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북한 체제는 이미 (잘못됐다는 판단이) 끝난 것이다. 항일무장투쟁 관점에서 정통성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또 북한정통론이 끊임없이 (중심에서 갈라져 나오는) '가지치기'가 되고 있다. 신채호 선생의 평가를 보면, 북한이 정통하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변종 역사관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뿌리를 공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옳았을 때는 옳았다고 인정하면 된다. 지금의 사회주의를 인정하지 않지만, 사회주의가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다. 사회주의 덕분에 북한이 잘살았다. 소련도 미국에 필적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 지금 사회주의가 나쁘니 모든 사회주의가 나빴다고 하면 안 된다. 어떠한 이념에도 생명이 있다. 사회적 조건에 따라 (그 이념의) 타당성 여부가 달라진다."

    -리영희 선생 평가와 연동한다면, 1970년대 관점에서는 리영희 선생과 장 선생이 (생각이) 같이 갔다는 것인가.

    "그렇다. 리 선생이 그때 의식화한 것은 우리 사회 발전에 나쁜 것이 아니었다. 민주화에 굉장히 기여했다. 그때 (리 선생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상황 등이) 나았다. 다만 리 선생은 (이후 북한 등 사회주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간파했고, 간파했으면 이를 말해야 하는데 (운동권에) 얹혀 가면서 사회적 지위를 누리려 했다."

    -리 선생의 저작을 새롭게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를 쓴 1977년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반도체사업을 위해) 일본을 오갔다. 정보통신 문명이 거대하게 열리는 상황에서 리 선생이 생각보다 초라해 보였다.

    "1970년 가을, 리 선생이 (서울)대에 초청돼 강연했다. 이때부터 리 선생이 유명해졌다. (서울대) 법대만이 아니라 전국의 유명한 학생운동가들이 강연을 들으러 왔다. 리 선생이 그때 탁월했다. 백낙청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뒤 리 선생이 (북한 등 사회주의의) 잘못된 것을 알았는데 이를 고치지 않았다. 그리고 정통성 문제와 관련해서, 한 나라가 정통성이 있었다고 해서 그 정통성을 인정해주면 안 된다. 나폴레옹의 경우, 한때는 프랑스혁명을 선전하는 의미가 있었고 나폴레옹법전이 있는 등 긍정적 영향이 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나중에 독재를 했다. 프랑스혁명의 의미와 정반대로 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실상이 알려졌음에도 (북한이 옳다는) 생각이 유지된 이유는 무엇인가. 진단과 해법이 있다면.

    "해법은 사물을 바로 봐야 하고, (북한의 실상 등에 침묵하는) 우리 지식인들을 규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겨레신문이다. 지식인들이 잘못하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또 (북한의 실상을 말할 수 있는 이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권력을 잡지 않으면 이기주의자들이 권력을 따라 다니면서 계속 잘못된 주장을 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개인적으로는) 권력을 잡아야만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관해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북한에서 한반도 통일을 주장할 때 남한 내 운동권 통일주의자들도 1992년도까지는 (통일을) 말했다. 그러다 1993년부터 통일 주장을 잘 하지 않았다. 남북한 국력 차이가 너무 났다. 그러니 통일되면 남한 주도로 통일될 것으로 보인 것이다. 그러자 (운동권이) 통일을 빼고 남북관계 평화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운동권뿐 아니라 일부 선배들도 평화를 강조한다. 

    이는 북한의 처지를 옹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를 교란하는 당사자를 미국이라고 (운동권은)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북한정권 유지를 도와주는 것이다. 지금의 평화는 김정은정권을 유지시키는 논리다. 운동권에서 김일성 시절에는 통일하자고 주장했고, 그 뒤 북한이 경제력 차이 때문에 남한에 흡수통일될 것으로 보이니 평화를 강조한 것이다.

    (운동권은) 핵무기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말했다. '북한이 미국과 대결하려 하니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 '핵무기 회담을 깬 것은 미국'이라는 등이다. 리영희 선생이나 문정인 같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북한 편을 드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치밀한 언론공작'이다. 주사파의 통일운동을 이야기할 때, 연방제론이나 평화공존 방식을 뛰어넘는 북한의 행동이 있었다. (1983년 미얀마 양곤에서 북한이 일으킨 테러인) 아웅산 사건 등이다. 여전히 '그 사건은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다. 자꾸 그러니,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30여 년간 이렇게 되니, (1969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으로 납치된 사건인) KAL기 사건 등(의 경우처럼) 남한에 공격을 가한 북한이라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선전과 조작이 장기간 계속돼, 어떤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판타지 같은 북한의 통일관이 생기게 된다. 연평도 같은 사건은 객관적 사실임에도 (이들에게는) 벌어지지 않은 사건인 것이다. 환상적 대북관의 기저에 있는 것은 판타지라고 본다. (이에 대한) 집단적 침묵상태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집단이기주의와 결합된 것이다. 정치적 블록(bloc·집단), 카르텔을 형성해 (그러한 대북관을) 지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북한은 남한과 관계를 좋게 하려는데 남한정권들이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운동권은) 본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간 회담 일지의 전문이 공개됐었다. 김정일이 남북교류·경제협력 등 남한으로부터 지원 받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그 문건에 다 드러나 있다.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이라는 책에 압축돼 있다. 그럼에도 (운동권은) 북한이 남한과 대화와 교류·협력·지원 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안 되면 남한 탓을 한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남북대화록을 읽어 보라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요지는 이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2일 북한에서 김영남 북한 상임위원장과 이야기하다, 김 위원장이 '남한은 조국에 적대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이 (대화) 끝에 '위원장님, 내일 또 이런 말을 할 것 같으면 보따리를 쌀 것'이라고 했다는 부분이 회고록에 나와 있다.

    다음날 오전 10시,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만났다. 김정일이 노 전 대통령에게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라'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이 '경의선을 복구하고 경제협력을 한다'는 등의 내용을 말했다. 그러자 김정일이 '남북이 합의해도, 그건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받아쳤다.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큰일이 난 것이다. (북한에 간) 소득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다음 일정을 점검했다. 다음 일정은 (10월3일 보기로 한) '아리랑' 공연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아리랑 공연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합의를 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정일이 (공연을 보는 대신) 회담을 다시 더 하자고 했다. 오후에 회담이 시작됐다. 회담 직전 노 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김정일을 만나 보니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절대 쓰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그러니 대화 중에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오후 회담을 한 뒤 나온 것이 10·4선언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를 지킬 생각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하긴 해야 하니, 합의한 것이다. 북한이 안 지키면 그만인 것이다. (그 생각을 김정일 본인이 직접 밝혔다.) 남쪽에서는 북한이 합의를 지키려고 하는데 남한이 안 지킨다고 공격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금강산관광의 경우도 그렇다. 북한은 이걸 안 하려고 한다. 그런데 (금강산관광을 중단하는) 책임은 자신들이 지지 않고 남측으로 돌리려 한다. 이것이 북한의 술책이다. 북한으로서는 금강산관광을 지속하면 안 된다. 우리 국민이 하루에 3000명씩 (금강산에) 갔다. 그런데 북한사람들은 평생 한 번을 가기 힘든 곳이 금강산이다. 북한사람으로서는 '남한사람들은 얼마나 잘살기에 매일 금강산에 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북한의 체제 유지를 곤란하게 만든다. 그래서 북한이 관광을 중단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이 스스로 안 오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초병을 시켜 (금강산관광을 하는 우리 국민) 박왕자를 쏘게 만들었다. '북한 당국이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을) 중단시킨다'는 말이 당연히 나왔다. 그런데 이것은 북한이 의도한 것이다. 북한은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책임자 처벌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개성공단도 마찬가지다. 5·24조치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개성공단이 박근혜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중단됐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박근혜정부 때 개성공단이 중단되기 전, 이명박정부 때도 4~5개월 정도 개성공단이 중단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중단했지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25만여 명 근로자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공단을 재개한 것이다. 

    재개한 뒤 문제가 생겼다. 당시 상여금을 현금으로 못 주게 돼 있어서 (북한 근로자들에게) 초코파이가 지급됐다. 그런데 이 초코파이가 국내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북한 전역에 돌아다녔다. 그러자 남한에 대한 동경심이 생기게 됐다. 결국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졌다. 북한은 실제로 남·북간 관계를 차단하고 싶은데 그 원인과 책임을 항상 우리에게 돌린다.

    진보진영의 지식인들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남북관계가 파탄났다고 한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북한의 필요에 의해 (남북관계가) 그렇게 됐을 뿐이다. 문재인정권 때도 남북관계가 평화로워진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 파탄이 더욱 지속됐다. 문 대통령 취임한 것이 2017년 5월10일이다. 북한은 그해 연말까지 우리 정부에 대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1월1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잘 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이는 북한이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2017년 11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듬해(2018년) 봄에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폭격 날짜는) 3월31일이라는 등 상당히 구체적인 소문이었다. 미국이 (폭격)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자 김정은은 신년사의 이름을 빌려 당시 평창올림픽을 통해 남북관계를 화해하고 미국까지 (관계 개선을) 하려고 했다. 문 정권이 (대북관계를) 잘하거나 북한이 문 정권과 잘해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회담의 경우는 (북한 비핵화 관련해) '노딜 결렬'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회담을 통해) 북한 핵무기 보유를 용인한 것이다. 김정은이 회담이 끝난 뒤 (2019년 3월22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 있던 인원을 철수시켰다. 그때 이후로는 남북이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한 일이 없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강경책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북한정권은 남한과 관계를 좋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운동권은 그 책임을 매번 우리 정권에 돌린다."

    -대북 인식이 변하지 않는 데 따른 이야기, 최근 하노이회담 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많은 분들은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북 핵무기 폐기를 약속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 북한 핵무기 폐기에 관한 합의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한 내용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북미 간 합의사항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미국이 정상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을 하고 한국을 깜짝 방문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판문점에서 만나자고 제안해 (두 사람이) 6월30일 갑자기 만났다. 그 만남에 대해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북한 핵무기 폐기를 위한 북미 간 대화를 계속하자고 이야기한 모양'이라는 식으로 보도가 됐다. (판문점 회동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은 사이가 좋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문재인정부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북한과 회담 성과를 계승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트럼프는 북한 핵무기를 용인한 것이다. 정 장관이 최근까지도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하며, 이것이 싱가포르 북미 합의사항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 비핵화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하려면 주한미군 철수, 한미방위조약 해체, 북한 핵무기 폐기 등이 있어야 된다. 이게 한반도 비핵화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폭하려 했다는 소문과 관련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2018년 6월 회담 직전인 5월31일 미국에 갔다. 김영철이 뉴욕으로 가서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을 만났다. 김영철은 이 자리에서 '중국에 의존해온 북한이 앞으로는 미국 편에 설 것이니 핵무기 폐기를 닦달하지 말아 달라'면서, 이 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을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미국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이야기였다. 미국은 북한이 사정거리가 미국까지 도달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만 소유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해 6월1일 김영철과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김영철 차에까지 와서 인사했다.

    이후 2018년 6월12일 이뤄진 싱가포르 회담 4개 합의사항은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 6·25전쟁 전사자 유해 미국 송환 등이다. 여기에 북한 핵무기 폐기 내용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 생각에는 '무엇을 지원하면 북한이 좋아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지만, 북한은 이를 바라지 않는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잘살 방법이 있어도 체제 유지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이를 하지 않는다. 개혁·개방을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 물결을 통해 자유화·민주화의 물결이 들어오기 때문에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보수세력들은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유지를 지원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가장 싫어하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계속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 '김정은 제거 시나리오'까지 짜고 있다. 북한은 이를 또 알기 때문에 중국을 경계하는 것이다. 북한은 코로나를 핑계 삼아 중국과 관계를 차단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은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려고 한다. 미국이 강경하게 나오면 기댈 곳은 중국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중국과 북한 간 사이는 좋지 않다. 김정은과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뒤 5년간 정상회담이 없었다. 이웃나라에서 정상회담이 없다는 것은 거의 적대국가 수준에 가깝다는 의미다. 북한이 중국과 2018년 정상회담을 한 이유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폭할 것 같으니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어서 만났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