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15부 '주권면제' 적용, 日정부 상대 손배소 각하… 소송비용도 원고가 부담케 해지난 1월 민사34부는 "주권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 판결… 석달 만에 뒤집혀
  • ▲ 법원. ⓒ정상윤 기자
    ▲ 법원. ⓒ정상윤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을 법원이 각하했다. 법원은 앞서 일본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과 달리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20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각하 판결했다. 각하는 소송이 적법하게 제기되지 않았거나 청구 내용이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주권면제의 적용 여부였다. 주권면제는 국가 평등의 원칙상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서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제 관습법이다. 이날 법원은 이 같은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일본정부는 국내 법원에서 피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원은 피해자들의 피고에 대한 청구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한일 합의에 의해서 피해자들의 손배 청구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보지도 않는다"면서도 "현 시점에서 국제 관습법과 대법 판례에 따르면 외국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에서 법원이 피고에 대한 재판권을 갖는지 여부에 대해 헌법과 법률, 이와 동일한 효력 갖는 국제 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서는 대한민국과 피고 사이의 '한일 합의'가 현재에도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고 전제한 재판부는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현실적으로 피해구제가 이뤄진 상황에서 합의 상대방인 피고에 대해 국가면제에 관한 관습법이 국내법과 안 맞는다고 부정하는 것을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해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대한민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외교적 교섭을 포함해 대내외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울러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라"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중 두 번째로 내려진 판결이다. 앞서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일본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민사34부는 민사15부와 달리 '반인도적 행위에는 주권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3개월 사이 같은 법원에서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피해자 할머니 측이 항소 의지를 밝힌 만큼 주권면제 적용 여부에 관한 판단은 2심과 대법원에서 다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재판을 참관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결과가 좋게 나오든 나쁘게 나오든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것이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