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이회창 사퇴 때 '법치 수호자' 높이 평가, YS정권 맹비난… '대쪽' 사라지자 YS 레임덕
  •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굴레를 벗고 사실상 정치 입문을 선언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27년 전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1994년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헌법상 보장된 총리 권한 행사와 관련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다 항의성 사표를 내고 사퇴했을 당시 변호사였던 문 대통령이 이 전 총리 편에 서서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기 때문이다. 

    이는 윤 전 검찰총장이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로 정부를 비판하며 직을 던진 것과 닮은 꼴이서 해당 발언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문 대통령의 입지를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변호사였던 문 대통령은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김 대통령의 인사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이 총리가 물러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라며 "그동안 이 총리가 '법치주의'에 근거한 합리적 행정 구현에 노력해왔음에 비추어 볼 때, 총리로서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려는 것이 사임의 배경이 된 데 대해 현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 ▲ 1994년 4월 23일 '이회창 국무총리 사의 파동'을 보도한 한겨레신문 기사. 문재인 변호사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네이버
    ▲ 1994년 4월 23일 '이회창 국무총리 사의 파동'을 보도한 한겨레신문 기사. 문재인 변호사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네이버
    文, 이회창을 '법치주의' 수호자로 평가

    당시 문 변호사가 이 전 총리를 '법치주의' 수호자로 치켜세운 것처럼, 윤 총장 역시 '법치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임기 중 사퇴라는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총장은 4일 검찰 구성원들에게 "검찰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작별 성명을 보냈다.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여권 인사 라임·옵티머스 연루 의혹,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등 권력을 향한 사건의 수사지휘를 못하는 '식물총장'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신념을 보였던 윤 총장은 박근혜정부 시절 좌천됐다 국정농단 수사로 복귀했다. 문 대통령은 그의 강직한 품성을 높게 여겨 서울지검장에 이어 검찰총장에 앉히고, 말로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맡겼다. 

    김영삼 대통령도 법관이었던 이회창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감사원장·국무총리로 중용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소신 있는 모습으로 김 대통령과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이 전 총리는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총리가 제외되자 통일부장관 등 회의 구성원들이 총리의 직할이라는 법적 근거를 들며 '총리의 승인을 받지 않은 회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결국 김 대통령은 자신의 인사 취지를 후회하며 이 전 총리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李, 총리직 떠나고 대권주자로 부상

    이 전 총리는 사퇴하면서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는 말을 남기며 국민들에게 '대쪽'이라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내부에서 직언하는 사람이 없어진 YS정권은 김현철 한보비리 사태, IMF 사태 등을 겪으며 급속도로 레임덕에 빠졌다.

    이 전 총리는 사퇴 이후 신한국당에 입당해 정권을 심판할 대권주자로 나섰다. 비록 두 차례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김대중 후보와 39만 표(1.6%p), 노무현 후보와 57만 표(2.3%p)라는 근소한 차이를 남겨 '충청 대망론'의 가능성을 보였던 유일한 인물로 남았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의 정치 참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윤 총장이 유력 대선주자가 없는 야권 후보로 나설 경우 소신과 강단이 있는 이미지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윤 총장 또한 충청도(부친 고향이 충남 논산) 출신으로 분류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7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요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총장 간의 갈등을 보고 있으면 과거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의 갈등이 연상된다"며 "때려줄수록 큰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5일 윤 전 총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오전 11시 20분쯤 윤석열 검찰총장 면직안을 재가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