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하겠다"→ 2017년 "혼란 우려"→ 2018년 "재추진"→ 2019년 재검증 시사가덕신공항특별법, 사실상 文이 주도… "이런 법은 처음 본다" 심상정도 맹비판
  • ▲ 부산 강서구 가덕도 전경 ⓒ뉴시스
    ▲ 부산 강서구 가덕도 전경 ⓒ뉴시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남부권 공항 부지를 물색하겠다'는 언급을 시작으로 18년간이나 우왕좌왕하던 동남권 신공항이 '가덕신공항'이라는 정치적 산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것이 골자인 '가덕신공항특별법'은 지난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인하지만, 정치권 곳곳에서는 4월 부산시장보궐선거에서 불리해진 민주당이 의석 수의 힘을 빌려 '가덕신공항특별법'을 제정해 국책사업을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의 이 같은 파상공세에 '부산시장선거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낀 국민의힘마저 '가덕신공항특별법'에 찬성하는 기류로 돌아서면서 정치권에서는 '도긴개긴'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TK(대구경북)와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고 공정성 차원에서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침묵'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해공항 확장, 5개 지자체장이 합의했는데...

    동남권 신공항은 2016년 박근혜정권에서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났다. 당시 동남권 신공항의 3가지 안은 '김해공항 확장' '밀양신공항' '가덕신공항'이었다.

    당시 정부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세계 3대 공항 설계회사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사전타당성검토' 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가덕신공항은 밀양신공항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꼴찌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 당선 후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가덕신공항을 두고 여러 차례 '말 바꾸기'를 해온 문 대통령이 '가덕신공항'에 힘을 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16년 총선 과정에서는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 5명을 당선시켜주면 가덕도신공항을 건설하겠다"고 했고, 가덕도를 전격방문해 "객관적, 국제적 기준을 따르면 부산 시민의 바람과 같을 것"이라고 가덕도를 명백하게 지지했다. 

    하지만 2017년 초에는 “지금 와서 입지를 다시 옮기고자 하면 여러 가지 혼란이 있을 것”이라며 국책사업의 연속성을 인정했다. 

    이후 대통령 당선 후에는 국책사업 변경에 따르는 부담감 때문에 한동안 잠잠했지만, 2018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당선된 후 '가덕신공항' 건설을 재추진했고, 여기에 문 대통령이 힘을 실으면서 '가덕신공항'은 급진전을 이루게 된다.

    문 대통령이 2019년 2월 부산지역 경제인과 오찬 간담회에서 동남권신공항과 관련한 국무총리실 재검증을 시사하며 "부산 시민들이 신공항에 대해 제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부터다.

    총리실이 '김해공항 확장안'에 트집을 잡는다면 박근혜정부 때 영남권 5개 광역 시·도지사가 합의해 결정한 '김해공항 확장'을 백지화하고 가덕신공항 건설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니나 다를까.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는 김해신공항 확장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결정했다. 영남권 5개 광역 시·도지사가 합의한 공정한 국책사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번복된 것이다. 4월 부산시장보궐선거에서 PK(부산·경남)의 민심을 얻기 위해 국책사업을 흔든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네 번 국회의원 하면서 낯부끄러운 법안이 통과되는 것도 많이 봤고,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봤다. 그런데 이렇게 기가 막힌 법은 처음 본다"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밀어붙여서 하는 게 매표공항이 아니고 도대체 뭐냐"고 비판했다.
  • ▲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왼쪽부터),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이만희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왼쪽부터),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이만희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TK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반납하라" 냉소적

    가덕신공항 건설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 TK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가덕신공항 건설이 확정되면 군위·대구에 건설되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전락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구시와 경북도는 가덕신공항특별법에 맞서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7일에 이어 23일 다시 국회를 찾아 최근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보류된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 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두 사람은 성명을 통해 "지난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가덕도신공항특별법' 단독처리와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 보류 결정은 납득할 만한 이유도, 합당한 근거도 없이 그동안 민주적으로 진행돼왔던 영남권 5개 시·도 간 합의를 뒤엎는 정치적 폭거"라고 주장했다.

    권 시장은 "오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두 개의 특별법이 동시에 처리되지 않을 경우 여당은 대구·경북 시·도민의 불 같은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 도지사는 "영남지역 5개 광역단체장의 합의를 깨고 가덕도로 공항을 가져간다면 단체장 2명 몫의 국고 지원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몫"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23일 유승민 전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부산시장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제정한다면 영남권은 가덕도와 대구경북 공항의 '투 포트'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며 "가덕도신공항이 전액 국비로 건설되면 대구·경북신공항도 당연히 전액 국비로 건설돼야 하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여부도 마찬가지로 공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TK정치권에서는 "가덕신공항이 확정되면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는 냉소적 반응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시 공무원은 "공식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의 속뜻이 '가덕신공항'이라는 것은 누구다 다 아는 사실"이라며 "대통령의 뜻이 그렇다면 가덕도(공항)으로 가는 것 아니냐. 문 대통령이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 이상 국가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권 시장과 이 지사는 지역공항특별법을 고집할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구경북신공항 백지화에 앞장서야 한다. 반납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공항 폭거'를 이겨내지 못할 바에는 국가를 위해 TK가 이번 공항 문제를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구 수성을 지역구 출신 홍준표 의원은 "지난해 9월 TK신공항특별법을 선제적으로 발의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최근 동시 통과 추진에도 미온적더니 뒷북치면서 TK신공항특별법 통과를 뒤늦게 주장해본들 버스는 이미 떠났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