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인이 사망원인 재부검 의뢰… 살인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 인정될 경우 살인죄 추가 적용할 듯
  • ▲ 생후 16개월이던 지난 10월 13일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응급실에서 숨진 정인 양. ⓒ뉴시스
    ▲ 생후 16개월이던 지난 10월 13일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응급실에서 숨진 정인 양. ⓒ뉴시스
    검찰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영아 '정인이'의 사망원인에 대한 재검증에 나섰다. 양부모에 대한 살인죄 추가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재검증을 통해 살인의 고의성이나 미필적 고의성이 포착될 경우, 검찰은 재판 시작 이후라도 공소장 변경을 통해 살인죄를 적용할 방침이다.  

    법의학자들, 정인이 사망원인 재감정 착수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달 전문 부검의 3명에게 정인이 사망 원인에 대한 재감정을 의뢰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의뢰를 받은 법의학전문가들은 정인이의 진료기록과 증거사진 등을 토대로 사망 원인을 재검토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양모 장모씨를 아동학대치사 및 아동 유기‧방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양부 안모씨는 방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아이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양모 장씨에 대해 살인죄 적용이 어렵다고 봤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범인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명확한 의도를 갖고 있거나,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사망에 이를 만한 위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아동학대치사의 경우엔 살인의 고의는 없었지만 실수로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적용된다.

    정인이의 주된 사인은 등 쪽에 가해진 강한 충격으로 인한 복부 손상인데,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얼마만큼의 충격이 가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들고 있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사망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심정지 정인이 택시로 병원 이송… "미필적 고의 소지 다분"

    재감정을 통해 등 쪽에 가해진 충격의 원인과 정도에서 고의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검찰은 양모에 대한 살인죄 혐의를 적시할 수 있다. 이 경우 양부 안씨에게는 살인방조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정황으로선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양모는 사망 전에도 정인이를 지속적으로 폭행했고, 사건 당일 심정지 상태인 아이를 구급차가 아닌 택시로 병원에 데려갔다는 점 등을 토대로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한 '미필적 고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4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건의 가해 부모에 대해 살인죄 의율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현재 양모 장씨에 대해서는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 양부 안씨에 대해 방임 등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보도되는 바, 현출 증거자료만 봐도 살인죄로 의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췌장 파열' 사망 사건, 미필적 고의 살인" 판례 다수

    대법원도 췌장 파열로 인한 사망 사건에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판례가 다수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지난해 초등학교 여교사 A씨(27)를 폭행해 췌장 파열과 폭강내 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한 김모(48)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이 양모에게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 혐의를 적용할 경우 양형기준도 크게 달라진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의 기본 양형기준은 10∼16년이며, 가중 요소가 인정될 경우 무기징역 이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동학대치사의 기본 양형기준은 4∼7년으로, 가중 요소가 있어도 6∼10년에 불과하다.

    정인이 양모 장씨와 양부 안씨에 대한 첫 재판은 오는 13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다.

    2019년 6월 태어난 정인이는 생후 7개월인 지난해 1월 장씨 부부에게 입양됐다. 이후 양모로부터 상습적 학대를 당했고, 입양 271일 만인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입양 이후 어린이집 교사와 소아과 전문의 등이 3차례나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서울 양천경찰서는 그때마다 내사 종결 혹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