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사건' 임의로 가져와 독점수사, 무소불위 공수처… 수사 이첩 가이드라인도 불투명
  • ▲ 문재인(사진)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 문재인(사진)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되길 희망한다"고 말한 뒤, 야당의 비토권이 무력화된 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청와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초대 공수처장이 이르면 연내 지명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출범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 완료될 계획이다. 

    행정·입법·사법 등을 초월한 독립기구 출범을 앞두고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좌초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공수처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무소불위 권력' 공수처… '수사 이첩 권한' 독소조항으로

    가장 큰 이유는 '공수처장의 수사 이첩 권한'이다. 공수처가 검찰·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의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을 가져와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공수처법 24조 1항은 '수사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는 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이를 곧바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24조 2항)도 있다. 

    당초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에는 없다가, 2019년 말 20대 국회 처리 과정에서 개정안(윤소하 의원 발의)에 포함됐다.

    이러한 규정들은 공수처법 통과 때부터 '독소조항'으로 꼽혔다. 정권 관련 사건 등이 공수처로 이첩될 수 있는 근거이자, 관련 수사를 '통제받지 않는' 공수처가 다룰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野 비토권마저 없어진 공수처, 견제 수단은 없다

    이 상황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공수처장을 대상으로 한 야당의 비토권마저 무력화된 것이다. 

    10일 통과된 공수처법 개정안에는 △전체 공수처장 추천위원(7명) 중 야당 몫 위원 2명이 반대해도 처장 최종 후보자 2명을 추천 가능하고 △공수처 수사검사의 자격요건을 기존 '10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완화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인 공수처 탄생을 우려해왔다. 공수처 권한 확대, 검찰권력이 축소된 데 반해 정보경찰 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 등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특히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사건 등 현 정권을 겨눈 수사가 무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대통령·국회의장·국회의원·대법원장·검찰총장·판사·검사, 그리고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과 이들의 가족이 저지른 직무 관련 범죄다. 그러나 이 중 공수처가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대상은 사법부와 수사기관인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만 해당된다. 

    문제는 고위공직자가 공수처장 입맛에 따라 수사망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A공직자의 직권남용 혐의가 있어도 공수처가 수사하지 않으면 A공직자는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고위공직자의 직권남용 혐의는 공수처만 수사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문 정부 들어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만 직접수사가 가능하게 됐다. 
  •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초대 공수처장이이르면 연내 지명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이종현 기자(사진=공동취재단)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초대 공수처장이이르면 연내 지명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이종현 기자(사진=공동취재단)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사건 이첩 요건 중 하나가 '공정성'인데,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기 어렵다는 사정 및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공수처장에 의해) 자의적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해외에서는 수사 관할이 충돌될 경우 조정하는 기관이 있는 사례가 있으나, 공수처는 입법·행정·사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특이한 조직으로 만들어져 검찰과 공수처를 조정하는 상위기관이 없다"며 "수사 이첩과 관련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어 이와 관련해 향후 공수처와 검찰 간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고 전했다.

    "공수처, 정권 시녀 노릇"… 여당은 "출범 속도 내자"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공수처 도입 자체는 필요하다면서도 "'어떤 내용의 공수처인가'를 따져야 하는데, 지금의 공수처는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공수처 운영은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상태 를전제로 말하자면 현행 공수처법으로 공수처가 검찰이 수사하던 것 중 정권이 부담스러운 사건들을 사건 자체를 이관해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됐다"며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사건 이관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객관적 기준과 함께 합리적 협의 절차가 필요했으나 이러한 부분이 보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도 공수처 출범 후 정권 관련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한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11일 논평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국회 통과는) 문재인정권의 비리를 감춰줄 공수처 괴물 탄생의 순간"이라며 "대통령과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가 숙원이라면 왜 대통령과 주변을 견제하는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4년 넘도록 공석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 출범에 속도를 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이제 공수처를 빨리 출범시켜 고위공직사회를 맑고 책임 있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공수처 출범은 이미 5개월 넘게 지체됐고, 늦은 만큼 출범을 서둘러야 한다"며 "국회의장에게 처장후보추천위를 조속히 소집해주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