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포럼 인보길 대표,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출간… 가장 논쟁적인 '3년' 재조명
  • "중국 공산당을 그대로 두고는 한국도, 아시아도, 세계도, 평화는 없다." (350쪽)

    "중국이 공산체제인 한 한국은 살아남을 수 없으며, 세계평화도 보장할 수 없다." (302쪽)

    "중국이 공산화된 채 북한과 아시아지역이 공산당 손아귀에 놓이면 대한민국은 독립국가로, 민주국가로, 통일국가로, 존립할 수 없다." (310쪽)

    미국이나 대만 또는 홍콩 정치인이 내놓은 주장이 아니다. 최근에 나온 주장도 아니다. 무려 66년 전이던 1954년,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던 이승만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66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그의 통찰력 때문이다. 그는 역설했다. 

    "중국이 공산체제인 한 한국은 살아남을 수 없다. 세계평화도 보장할 수 없다."

    이 같은 그의 경고는 66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이 조직적으로 국내 여론을 조작했다는 ‘차이나 게이트’ 의혹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흔드는 부정선거 의혹 ▲전 세계를 오염시키며 인류를 경제공황의 늪으로 빨아들이인 ‘우한코로나 의혹’을 통해 되살아나, 중국과 중국 공산당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중국 한족과 우리 한민족의 5000년 투쟁사

    사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중국 한족과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옛날 고조선과 한의 투쟁, 고구려와 수의 투쟁, 고구려-백제-신라 삼국과 당의 투쟁, 이후 조선과 중국의 투쟁, 6·25 당시 중공군과 투쟁, 오늘날 벌어지는 중국 공산당과 물밑 투쟁 등 우리 한민족의 5000년 역사는 중국 한족과 빚은 크고 작은 갈등의 역사다. 

    수 양제나 당 태종은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는 ‘친정(親征)’을 감행했다. 수하 장수를 사령관으로 임명해 대신 보내도 될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수천 리 길을 수개월에 걸쳐 건너와 우리 한민족을 공격했다. 

    요즘으로 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중국의 베이징을 향해 쳐들어간 셈이다. '황제'를 자칭했던 중국의 왕들이 왜 그런 무리수를 둔 것일까?

    당시 중국은 세계 최고의 패권국가였다. 그런 한족의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와 우리 한민족을 공격했다는 것은, 우리 한민족이 당대의 양대 패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당시 중국 왕들의 ‘친정’은 "한반도 일대의 한민족을 꺾지 않고서는 한족이 천하제일이라 감히 주장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제국주의 일본의 지배를 받고 6·25의 비극을 겪은 우리는 '5000년 역사'를 통사적으로 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중국 한족의 위협보다 일본의 위협을 더 크게 여기고, 중국 공산당의 위협보다 북한 공산당의 위협을 더 크게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이 북송-남송으로 갈라지고, 이후 몽골족의 지배를 받아 위축됐던 고려 500년을 제외한다면,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 한족과 기나긴 투쟁의 시간이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이 공산체제인 한 세계평화는 없다"

    “중국이 공산체제인 한 한국은 살아남을 수 없다. 세계평화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승만의 연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 민족의 주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그것도 일찌감치 천명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공산체제인 한, 세계평화는 보장할 수 없다”는 이승만의 주장은 "중국 공산당이 세계경제를 위협한다”는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시킨다. 

    "이승만은 독재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말씀하십시오."

    소위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불리는 4·19 당시 '부정선거 다시 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경무대(현 청와대) 앞까지 갔다 총탄에 친구를 잃은 한 청년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청년이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2020년에 쓴 것이다. 

    청년은 1990년, 조선일보가 개최한 광복(해방) 50주년 기념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 전시회를 통해 대한민국 건국사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후 매달 학술강연회를 열어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발자취를 더듬는 이승만 연구가로 변신했다.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도서출판 기파랑)'은 10여 년 전부터 매달 '이승만포럼'을 진행하며 이승만 바로보기운동을 벌이는 인보길 이승만포럼 대표의 역작이다.

    2018년 '제11회 우남 이승만 애국상'을 수상할 정도로 이승만과 근·현대사에 정통한 저자는 "우리가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입에 올리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부정한 '독재자'라고 잘못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19는 이승만 최후의 성공작

    책의 마지막 제15장을 4·19에 할애한 저자는 4·19가 이승만이 한평생 그토록 꿈꾸던 '똑똑한 국민 만들기'의 완성, '이승만 최후의 성공작'이라는 과감한 해석을 내놓는다.

    1960년 4월23일 부상당한 학생들이 입원한 병원을 찾은 이승만은 이들을 얼싸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4·19가 일어난 지 일주일 만인 4월26일 자진 하야한 그는 대만 장제스 총통의 위로편지에 "나는 위로받을 이유가 한 가지도 없소. 불의를 보고 일어서는 똑똑한 젊은이들과 국민을 얻었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소"라고 답했다. (390쪽)

    결국 4·19는 이승만 자신이 일으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목표를 이룬 그에게 후회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특히 4·19 일주일 전부터 선거부정(3·15 정부통령선거)이 있었음을 늦게나마 알아차린 이승만이 자진 하야를 먼저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국무회의 기록은 '쫓겨난 독재자 이승만'의 허상을 단번에 씻어 날려 준다.

    대통령직선제, 한미동맹, 자유시장경제

    제목부터 1952~1954년 3년을 '위대한 3년'이라고 했다. 저자에 따르면 '위대한 3년'은 그 앞에도 한 번 더 있었다. 1945~1948년의 만 3년, '건국혁명' 3년이다. 책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첫 번째 위대한 3년보다 과소평가되거나 심지어 폄하돼온 두 번째 위대한 3년에 오롯이 집중한다.

    1953년의 한미동맹은 그렇다 치고, 대통령 이승만의 1952년과 1954년은 각각 '부산정치파동(1차 개헌)'과 '사사오입개헌파동(2차 개헌)'으로 알려진 해다. 책은 이름부터 ‘파동’ 대신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자유시장경제·국민투표 개헌'으로 고쳐 부른다.

    유신헌법 15년 동안 그토록 되찾기를 갈구했던 대통령직선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가능하게 한 자유시장경제다. 권력의 단맛에 빠진 386 출신들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직접민주정치 제도다. 이 모두를 대통령 이승만이 처음 도입했다.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은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을 '미완의 건국'으로 규정한다. 두 번째 위대한 3년을 거치고서야 대한민국은 '나라 국(國), 집 가(家), 나라집'으로 온전히 독립국가체제가 완성되었다고 본다.

    나라를 찾고, 세우고, 지키다

    3·1운동(1919) 70주년의 해에, 대한민국 건국이 1948이냐 1919년이냐는 논쟁이 있었다. 1919년을 주장하는 세력이 애써 외면하는 것 하나는, 한성임시정부부터 상하이 통합정부까지 1919년 모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국가수반은 이승만이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이 임정 대통령에서 탄핵당해 면직된 1925년 이후부터 건국 전까지를 제외하면 1919년부터 1960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은 으레 이승만이었다. (김구는 '주석')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96년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에서 입헌군주제를 처음 주장하고,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호기로 삼아 2·8독립선언과 3·1만세운동을 기획한 것도 이승만이었다.

    이승만 국회의장 때 제정된 건국헌법은 전문(前文)에 3·1운동을 독립정신으로 천명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 취임사 날짜도 '대한민국 30년(1919~1948)'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96년의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에서 입헌군주제를 부르짖은 것도 약관의 이승만이었다. 3·1운동 그 해에 '대한공화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이라는 직함으로 일왕에게 보낸 국서는 짜릿하기까지 하다.

    "(1919년) 4월23일 한국 국민의회가 구성되어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부를 수립하였으므로 일본 정부는 주권국가를 승인할 것이며, 최소한의 외교관을 제외한 모든 일본인을 즉각 철수시키라." (46쪽)

    이승만 현대사를 제대로 보려면 결국 '위대한 3년'뿐 아니라 그의 전 생애를 봐야 한다. 90년 생애 중 배재학당 시절부터 1960년 4·19로 하야하기까지 70여 년을 권두 화보와 서론 및 마무리, 그리고 중간중간 '자료'로 요령 있게 간추렸다.

    ◆ 저자 소개

    인보길(印輔吉) :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신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를 수료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편집부장·문화부장·편집부국장·편집국장·논설위원·CTS본부장·상무이사·뉴미디어연구소장·종합미디어본부장 등을 지냈고, 디지털조선일보 대표이사로서 한국 최초의 인터넷 신문을 창간했다. 서울시문화상·우남애국상 등을 수상했다. 엮은 책으로 '이승만 다시 보기(2011)'가 있다.

    현재 인터넷 미디어그룹 뉴데일리(newdaily.co.kr) 대표회장,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이승만포럼 공동대표이며, 유튜브 채널 '인보길의 우남 이야기'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