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CCTV에 고무보트-건장한 남성들 찍혀… "경계실패" 지적에, 해경 "간첩 증거 없다" 해명
  • ▲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변에서 발견된 소형 모터보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변에서 발견된 소형 모터보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문의 모터보트가 발견된 태안 해변에서 한 달 전 엔진을 장착한 고무보트가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들 보트 2척은 모두 중국에서 판매되는 종류로 알려졌다. 보트 2척이 발견된 곳은 1급 기밀 생산부대인 해군특수임무부대(UDU)에서 3km 떨어졌다. 한 군사전문가는 “군의 해안 경계가 완전히 뚫렸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해경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변서 소형 모터보트 발견”

    태안해양경찰서는 지난 24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변에서 버려진 소형 모터보트를 마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밝혔다. 인근 주민은 “보트가 20일부터 방치돼 있어 이상하다”며 지난 23일 오전 11시에 신고했다고 태안해경은 전했다.

    태안해경에 따르면, 모터보트에는 중국산으로 보이는 옷가지, 물품, 먹다 남은 음료수와 빵, 중국 인민해방군 마크가 있는 연료통(제리캔) 여러 개가 발견됐다. 길이 4m, 폭 1.5m, 4t 크기의 보트에는 제조사의 일련번호가 없었다. 보트에 달린 엔진은 일본제로, 국내에 유통되는 모델이 아니었다. 확인 결과 중국에서 판매되는 모터보트와 동일했다고 해경은 전했다.

    해경과 군·경찰은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6명이 보트에서 내려 해변도로를 가로질러 빠져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태안해경은 이런 정황을 근거로 중국인들이 보트로 밀입국한 것으로 보고 군·경과 함께 추적 중이다.

    보트 발견된 해안, 1개월 전에도 고무보트 발견

    그런데 모터보트가 발견된 해안에서 한 달 전에는 엔진을 장착한 고무보트가 발견됐다. 태안해경 수사과 관계자는 “지난 4월20일 밤 주인이 없는 고무보트를 발견해 수거했다”고 말했다.

    고무보트는 바닥이 금속판으로 강화 처리됐고, 엔진도 장착됐다. 연료도 가득 찬 상태였다는 것이 해경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모터보트가 발견된 곳 주변에는 밤이 되면 바다로 나가 굴을 따는 등 불법 어로·채취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도 그들의 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 4월 20일 발견한 고무보트의 주인을 찾는다는 태안 해경의 공고문. ⓒ현지 소식통 제공.
    ▲ 4월 20일 발견한 고무보트의 주인을 찾는다는 태안 해경의 공고문. ⓒ현지 소식통 제공.
    '보트 주인을 찾는다는 공고를 냈는데 안 찾아갔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자신들의 불법행위가 들통날까봐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

    현지 소식통의 주장은 달랐다. 소식통은 “해경이 고무보트와 관련된 CCTV 영상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영상에는 독수리로 보이는 문양이 그려진, 같은 옷을 입은 3명의 건장한 남성이 등장했다. 이들은 연료통을 들고 와 고무보트에 기름을 채운 뒤 바다로 나갔다. 한참 뒤 다시 해변으로 돌아온 남성들은 고무보트를 해변에 올려놓은 뒤 사라졌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었다.

    소식통은 “불법 어로행위를 했다고 해도 최고 몇백 만원 벌금만 내면 되는데 최소한 1000만원이 넘는 고무보트를 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당시 태안해경이 낸 공고문 사진을 보내줬다. 그러면서 “고무보트에 있던 연료통이 이번에 모터보트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고, 엔진은 중국에서만 사용하는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해경 “고무보트, 바다로 나간 적 없다”

    본지 보도 이후 해경 측에서는 “4월 20일 발견한 고무보트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라고 연락해 왔다. 해경은 “고무보트에 대한 신고 당일 군·경 합동으로 현장 조사를 했으며, 그 결과 대공 용의점이나 밀입국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이 고무보트 또한 주민 신고로 발견했다. 해경은 “고무보트를 찍은 태안군청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4월 19일 오후 11시 50분께 신원미상의 남성 2명이 육상에서 고무보트로 접근해 연료를 주유한 뒤 다시 육상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며 “고무보트는 바다로 나간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배가 아니라고 판단해 소유자를 확인할 때까지 고무보트는 학암포 해경 파출소에서 육상 보관 중”이라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은 “최근 발견된 모터보트와 관련해서는 미확인 선박 수사 전담반 인력을 기존의 66명에서 74명으로 확대,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며, 충남경찰청 지능수사대 전문가와의 공조를 통해 용의자를 추적 중”이라고 덧붙였다.
  • ▲ 모터보트 속에 있던 물품들. 검은색 연료통에는 인민해방군이 자주 쓰는 별 무늬가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모터보트 속에 있던 물품들. 검은색 연료통에는 인민해방군이 자주 쓰는 별 무늬가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종우 국장 “해안 경계는 군의 책임, 경계 실패한 것”

    해경과 경찰·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부 언론은 모터보트가 마약 밀수용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수천만 원짜리 보트를 내팽개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 일반적인 밀입국자는 아닐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모터보트와 고무보트가 발견된 곳이 소원면 의항리 해변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불과 3km 떨어진 곳에 해상첩보부대(UDU)가 있어서다. ‘대○실업’으로도 알려진 UDU는 북파침투요원 부대로 유명하다. 국방정보본부 예하 정보사령부 소속으로 대북침투공작이 중단된 이후에는 주변국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개로 태안군 일대의 해안 경계를 맡은 육군 32사단 98연대는 경계초소를 촘촘히 배치하고 열영상감시장비(TOD)까지 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경계에 실패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방부와 합참은 “해경 조사가 끝나면 군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발을 뺀 상태다.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의 신종우 사무국장은 “군 당국이 모터보트 발견을 두고 해경에 조사를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며 “이번의 보트 사건은 명확한 경계 실패로 군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달 새 두 차례나 정체불명의 소형 선박이 해변까지 들어왔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한 신 사무국장은 “군 당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해안경계의 문제점을 모두 살펴보고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