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뜻, 단 1㎜도 침범한 적 없어… '대통령팔이' 비난은 능욕"
  •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일한 접견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자신을 향한 비판은 괜찮지만 박 전 대통령의 뜻을 '회절(回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상윤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일한 접견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자신을 향한 비판은 괜찮지만 박 전 대통령의 뜻을 '회절(回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상윤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일한 접견인'

    유영하 변호사를 이를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다.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던 지난 2월16일 탈당을 결행한 유 변호사가 지난 4일 갑작스레 박 전 대통령의 자필편지를 들고 국회를 찾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의 편지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유 변호사는 당시를 "조사 하나 글자 하나 틀릴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날 이후 2kg 넘게 빠져 회복되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 변호사의 떨리는 목소리로 전달된 편지에는 박 전 대통령의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야당을 중심으로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달라"고 강조했다. 메시지가 나오자 여권은 '옥중정치'라며 비난했다. 반면 야권은 '대승적 결단'이라고 추켜세웠다. 

    편지가 공개된 지 보름여 지났지만 미래통합당에서는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우파의 또 한 축인 자유공화당은 '통합 노력 부족'을 들어 연일 미래통합당을 비판한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이 '대승적 통합'을 향해 움직이기보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각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해 정쟁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 이후 보름 동안 유 변호사의 행보에도 의혹의 눈길이 쏟아졌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발표 다음날(5일) 돌연 미래한국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했다. 하지만 미래한국당은 면접 후 그를 비례 후보에서 배제했다. 공병호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국론분열과 계파정치의 주동자"라고 배제 이유를 밝혔다. 

    미래한국당 공천에서 배제된 유 변호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탄핵당한 대통령 변호와 메신저 역할을 이어나가는 유 변호사를, 19일 그의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메시지 이후에도 야권은 여전히 공천갈등으로 시끄럽다.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나?

    "이번 선거는 보수우파가 단일대오로 가야 하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지칭했다)의 메시지 전달 이후 미래통합당이라는 큰집에서 손을 내밀어 남아 있는, 아스팔트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을 끌어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도 이런 것을 두고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지만 힘을 합쳐달라'고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대야당은 새로운보수당과 안철수에게는 다 손을 내밀어 놓고, 왜 고생한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는가. 대통령이 보수통합을 위해 도와주는 카드를 냈는데, 이를 두고 국론분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말이 안 된다."

    -향후 어떤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지금이라도 빨리 수습해서 대통령의 통합의 뜻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역구에서는 절대 분열해서는 안 된다. 비례대표는 분열하더라도 그 표를 보수진영이 나눠 먹을 수 있지만, 지역구에서 나뉘면 상대에게 표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각 지역의 거대야당 후보들이 당의 이해를 구하고 후보 개인 간 단일화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제1야당 후보로 나왔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박 전 대통령 메시지의 파장이 컸다. 공개 과정은?

    "절차를 밟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3월4일 접견하러 갔는데, 오늘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게 서한이어서 절차를 밟아 구치소 측에서 우편특송으로 내 사무실로 보냈다. 받고 나서 이장우 의원에게 전화해 '오늘 정론관에서 할 말이 있다'고 했더니 이 의원이 뭐냐고 묻더라. 대통령 메시지가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편지를 읽으면서 속으로 덜덜 떨었다. 토씨 하나 조사 하나 틀릴까, 의미가 왜곡돼 전달될까 많이 긴장했다." 

    -유 변호사를 향해 대통령을 팔아 자기정치를 한다는 사람도 많다

    "나는 대통령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 1㎜도 침범한 적이 없다. 내가 그런 식으로 당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장난친다면 박 대통령이 나를 만나 주시겠나? 바로 접견금지될 것이다. 탄핵당하고 구속된 대통령께 내가 바랄 것이 뭐가 있겠나? 대통령 변호를 시작하면서 내 전화번호에서 1000명 넘는 사람을 지웠다. 대통령 변호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내가 왜'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대통령 조종해서 배지나 달아보려고 한다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이 내가 조종한다고 조종되는 분이시냐? 그런 말들은 대통령을 능멸하는 것이다."

    -접견 분위기는 어떤가?

    "대통령께서 구금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좀 힘들어 하시는 느낌이다. 그냥 내가 느낀 개인적 '느낌'이다. 변호사로서 법적인 것도 당연히 해야 하지만 심리 변호도 해드리려고 조금 더 자주 찾아가 뵙는다. 대통령께서는 안에서 책과 편지만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지자들의 편지로 세상을 보면 아무래도 한쪽만 보게 된다. 그래서 최대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진보진영의 생각과 여론, 또 보수진영의 여론을 전달해드리는 정도를 한다. 양쪽을 모두 보고 판단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개 변호사로서 판단하는 것이고, 대통령을 지내신 분의 판단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어떤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나?

    "내가 대통령의 친척이라느니, 무슨 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을 처음 뵌 것은 정치를 시작하던 2004년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17대 총선 바로 전날인 4월14일. 당시 당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이 군포지역구에서 출마한 나를 지원유세하기 위해 오셨다. 2시30분에 오셔서 25분 유세하시고 정확히 2시55분에 가셨다. 그때 처음 뵈었다. 그렇게 낙선하고 원외위원장들과 저녁자리가 있었다. 그때 처음 개인적 만남을 가졌다. 다음 19대 총선 때도 박 전 대통령은 지원유세를 네 번이나 오셨다. 마지막 날 오후 5시 반쯤, 내가 여론조사에서 1% 지고 있다고 나오자 가야 한다고 하고 오셨다고 하더라. 유세가 끝나고 차로 가서 인사드리려는데 저녁으로 포장김밥을 드신다고 하더라. 그때 '살아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낙선했다. 떨어지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차를 타고 강릉으로 갔다. 가는 도중 원주로 빠지는 고속도로 주변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발신자제한표시여서 아무래도 대통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쉼터에 차를 대고 전화를 받았더니 '어떻게 해요'라고 하시더라.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울컥하더라. 당시 대표였던 대통령은 아직 젊고 기회가 있지 않으냐며 위로하셨다. 항상 저를 아껴주셨다. 변론을 부탁하지 않으셨더라도 내가 갔을 것이다. 그런데 부탁하시면서 아는 변호사가 나 하나뿐이라고 하시더라. 그걸 어떻게 거절하나. 거절해서도 안 되는 일이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 ▲ 유영하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먹거렸다. 그는 한번도 박 전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정상윤 기자
    ▲ 유영하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먹거렸다. 그는 한번도 박 전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정상윤 기자
    유 변호사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는 이후 한참 동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말을 이었다.

    "대통령이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치소에 계시는데 변호사로서 무슨 말이 필요한가? 내가 대통령을 팔아먹었다고? 누구한테 팔아먹나? 내가 이것을 견디는 이유 중 하나는 이 30만 페이지의 법정기록을 본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결백을 믿기 때문에 언젠가는 바로잡아야겠다는 소명으로 버틴다. 이게 내 희망이다. 다른 것은 없다. 같은 정치판에 있다고 자신들의 눈으로 남을 보지 말라. 대통령께서 나에게 해주신 것이 많다. 모셨던 분이 어려움을 당했는데 어떻게 저버리나.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메시지 발표 후 미래한국당에 입당해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이유가 뭔가?

    "사실 미래통합당 공관위 측에서 여러 차례 연락이 왔었다. 청와대에 근무하던 수석을 통해 의사를 타진해왔다. 그분이 전화해서 'TK 지역구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한다고 하더라. 나는 '대통령이 아직 안에 계시지 않느냐'고 답했다. 그리고 대통령께 가서 말씀드리고 절차를 밟아 거절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가서 대통령께 말씀드렸다. 가만히 계시더라. 가서 완곡하게 거절하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세요'라고 하셨다. 그런데 탈당하기 전 다시 연락이 왔다. 다시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다 2월 말쯤 대통령께서 지나가는 말로 '정치 하셔야죠'라고 하시더라. 웃으면서 넘어갔다. 대통령께서 "지난번 지역구 출마, 그거는 다시 생각해봐도 누가 가도 당선되지 않느냐. 의석수를 늘리거나 보수를 아우르는 그런 역할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러시면서 "통합 메시지를 내더라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있을 수 있다. 뜻이 어디 있는지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혼선이 없지 않겠느냐"고 하시면서 "미래한국당 쪽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이때 대통령이 메시지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비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대통령께도 말씀드렸다. 내가 욕 좀 먹을 것 같다고. 그런데 웃으시며 '나보다 욕 더 먹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시더라. 진보진영은 통합 메시지를 내면 대통령께 자기 혼자 살려는 옥중정치라고 매도한다. 보수진영은 유영하에게 자기정치를 한다고 한다. 사면이 적이다. 하지만 어른 뜻이 그러니…. 그날부터 서류를 준비했다. 서류를 준비하려면 3~4일 정도 걸린다. 2월 말 즈음 생각을 굳혔다. 나는 대통령이 결정하면 따른다. 그것이 싫다면 떠나야 한다." 

    -공병호 미래한국당 공관위원장은 공천 '부적격'이라고 했다.

    "비례대표를 신청한 다음날 공병호가 언론을 통해 내가 비례후보로 부적격이라고 하더라. 당규에는 '부적격'은 강간범이나 피의자 등일 때를 말한다. 그런데 본인이 부적격이라며 '배제 요건'을 말하더라. '부적격'과 '배제'는 엄연히 다른 기준이다. 본인이 만든 당규도 모르나? 공병호는 내가 국론분열과 계파정치의 주동자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면접은 보게 해준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황당했다. 그런데 공병호가 면접을 녹취하겠다고 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살면서 그런 모욕적인 일은 처음 당해봤다. 녹취는 형사 피의자한테나 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신청을 철회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경솔하게 철회하면 그게 대통령의 뜻이니 뭐니 또 할 것 같아 참았다."

    -면접에서는 어떤 질문이 있었나?

    "면접은 1분 스피치와 2분을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총 3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3분 동안 사람을 평가하고 점수로 계량화한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때 1분 스피치를 정확히 기억한다. 

    '안녕하십니까? 유영하 후보자다. 먼저 면접 기회를 주신 위원장님과 공관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변호사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변호했고, 그 와중에 어떤 분열적인 행태나 계파적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이번 총선은 문재인 대통령을 심판하고 대선에서 승리할 초석을 마련해야 할 선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보수진영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뭉쳐야 하기 떄문에 박 전 대통령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드리고 보수 표 분산을 막기 위해 공천을 신청했다. 부족하지만 기회를 주시면 총선 승리에 기여하겠다.'

    이렇게 내가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랬더니 공병호가 "박 대통령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유영하 변호사의 국회의원 자질과 역량을 평가하는 자리"라고 해서 내가 '네'라고 답했다. 그런데 대뜸 '신청 서류는 언제 준비했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박 대통령이 단순한 한 석은 의미가 없고, 메시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분산되니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신청하라고 해서 2월 말쯤 자료를 준비했다'고 답했다. 답을 들은 공병호가 '찬반 양론이 있는 것 알고 계시나. 댓글 보나'라고 묻더라." 

    -그것만 물었나?

    "그것만 물었다. 공병호가 이 말에 절대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같이 면접을 본 사람들이 있다. 저 질문이 공병호가 말하는 국회의원 자질과 역량에 대한 질문이냐? 나를 조롱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했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변호사에게 국론분열과 계파정치 주동자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앞으로도 힘든 과정이 많이 남았다. 향후 계획은?

    "대통령께서 자유롭게 되시고 다 잘 풀리시면 그때는 곁을 떠나려고 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야 대통령이 편해지신다. 지금은 대통령이 구금돼 있으시니 당연히 내가 머물러야 한다. 대통령이 작은 방에 지금도 갇혀 계시다.(눈물) 나만 나와서 편히 있어서…. 그게 갑자기 생각나면 너무 힘들다. 내가 변론을 잘못해서 대통령이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면…. 

    유 변호사는 결국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자신의 과오 때문인 듯 자책했다. 

    박 전 대통령이 통합의 메시지를 내놓은 지 보름째인 19일, 미래한국당 한선교 대표가 비례대표 공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최고위원들도 뒤를 따라 사퇴했다. 20일 미래한국당 신임대표로 부임한 원유철 의원은 "공병호 공천관리위원장을 교체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