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정보 누출 혐의… 재판부 "공무상 비밀, 공모관계 인정 안 돼"
  • ▲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기록 등 내부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넘겨진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성창호·조의연 영장전담 판사가 1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데일리 DB
    ▲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기록 등 내부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넘겨진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성창호·조의연 영장전담 판사가 1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데일리 DB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기록 등 내부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성창호·조의연 영장전담 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 중 '현직 판사'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다. 앞서 유해용 전 재판연구관(현 변호사)은 1월1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13일 오전 10시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의 선고공판을 열고,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비위법관 등의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3월5일 불구속 기소됐다.

    '정운호 게이트'는 2016년 상습도박 혐의를 받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전관 변호사에게 수임료 100억원을 줬다는 보도에서 시작됐다. 이는 '정운호 사건'을 배당받은 항소심 재판장이 법조브로커로부터 정 전 대표 선처를 부탁받았다는 의혹으로 번졌다. '정운호 게이트'에 전·현직 법관이 연루됐다는 것이었다.

    "수사기록 보고, 공무상비밀누설 해당 안 돼" 

    공소장에 따르면, 신광렬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2016년 2월11일~2018년 2월12일)는 2016년 4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관련 수사기록 등을 수집해 2016년 5월3일~9월9일 임 전 차장에게 10회에 걸쳐 9개 문건 등을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조의연·성창호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비리에 연루된 현직 법관 등의 압수수색영장청구서 등을 신 부장판사에게 보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신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내용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 판사는 법관 비위 관련 내용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 판사와 조의연·성창호 판사 간에 범행을 공모했다는 공소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에 비춰보면 신광렬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법관 비위를 보고한 것으로 보이고,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사법부의 부당한 조직 보호를 위해 적극 협조해, 정운호 수사기록을 모은 뒤 보고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신광렬 판사는 법관 비위 관련 사항을 행정처에 보고할 의무가 있고, 임종헌 전 차장은 이를 취합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며 "수사기록 정보라고 해서 모두 공무상 비밀 누설의 객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광렬 판사의 보고행위로 인해 범죄 수사기능에 장애가 (결과적으로) 발생하지 않았고, 임종헌 전 차장을 통해서 행정처 내부에 알려지는 것 역시 위험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실질적으로 보호할 공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하지 않고, 사법행정상 필요에 의해 한 직무집행"이라고 덧붙였다.  

    피고인들 간 공모도 해당 안 돼

    신 판사와 조·성 판사 간 공모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정운호 게이트' 관련 법조인의 범죄혐의가 보도되고 있었고, 특수1부장검사와 대검찰청 관계자 등이 정식 브리핑을 하거나 언론에 수사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었다"며 "신광렬 판사가 임종헌 전 차장에게 보고한 수사정보는 이미 일부 언론사에서 보도되는 등 언론기사와 동일한 부분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장전담판사는 중요사건에 대해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신광렬 판사는 법관 지위와 관련한 사항을 상급기관인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이라며 "피고인들이 9개의 문건을 작성해 임종헌 전 차장에게 보고한 사정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수사기록의 외부 누설을 위해 (피고인들이) 범행을 사전에 공모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전 공모가 인정되지 않고 조의연·성창호 판사가 신광렬 판사에게 한 보고가 직무상 정당성을 갖는 이상, 조의연·성창호 판사의 공소사실은 모두 증명할 수 없다"고 봤다. 

    "검찰 위법수집 증거" 변호인 이의는 기각 

    다만 '검찰이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검찰이 관련 문서를 법원행정처로부터 임의제출받을 당시 문서작성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지적해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관련 법리와 임의제출의 경위를 살펴보면 당시는 사법행정권 남용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며 "(임의제출받은) 하드디스크는 원래 대한민국 소유로 공적인 것이고, (임종헌이) 퇴직으로 행정처를 떠난 뒤에도 (그 하드디스크의) 사용처도 행정처로 귀속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임종헌으로부터 받은 압수수색 증거에 대해 공소사실과 관련된 임종헌의 범죄인데, 위법이 있는 이상 관련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가 위법이라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전자정보매체에 포함된 전자정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임종헌의 범죄사실을 인지하게 됐어도, 사전에 위법한 절차를 걸쳐 범행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 문건 유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변호사법위반 등)로 기소된 유해용 전 재판연구관도 지난 1월1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에 연루된 인사들 중 사법부가 내린 첫 판단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은 오는 21일로 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