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학생에 '입국연기' 권고, 신입생 행사 취소, 졸업식 취소도… 휴학 검토도 잇따라
  • ▲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안내문이 22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붙여져있다. ⓒ박성원 기자
    ▲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안내문이 22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붙여져있다. ⓒ박성원 기자
    “아무래도 지금은 중국인유학생들과 같이 생활하기가 꺼려지죠. 개강이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휴학할까 고민이에요.”

    우한폐렴 공포가 이어지는 가운데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서 중국인유학생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인유학생이 상당하고, 고향에 갔던 이들 학생이 개강과 함께 대규모로 학교로 돌아오는 상황이어서 캠퍼스 내 감염 확산을 우려하는 것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취했지만, 정부에서 뚜렷한 지침을 내놓지 않으면 큰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인유학생은 지난해 기준 7만1067명으로 전체 유학생(16만165명)의 44%를 차지한다. 2월 중순부터는 개강을 맞아 중국인유학생이 대거 입국할 예정이어서 학생들과 대학 관계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경희대 2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학교에 중국 학생들이 많은 편인데 개강 후 우한폐렴이 확산할까 걱정된다"며 "주변에는 휴학까지 고려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충청권 4년제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B씨는 “졸업반이어서 학교에 갈 일이 많지는 않지만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라며 “중국인 학생들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3월 개강을 앞두고 우한폐렴 대책 마련이 시급해지자 각 대학은 중국인유학생들에게 입국연기를 권고하거나 대규모 행사를 속속 취소하는 등 관련 대책을 내놨다. 

    서울대는 ‘중국 후베이성에 다녀온 학생은 증상이 없어도 잠복기를 고려해 입국 후 14일간 등교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자를 재학생 전원에게 보냈다. 고려대는 중국에 체류한 학생은 2주간 기숙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부득이한 경우 학교가 지정한 장소에 머물며 하루 1회 이상 감염 증상 여부를 자진신고하도록 했다. 부산외대는 중국에 간 유학생 600여 명에게 오는 2월 말 이후로 입국연기를 권고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숙명여대는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예정된 신입생 관련 행사를 취소했다. 인천재능대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졸업식을 취소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의 주요 여행 코스로 꼽히는 이화여대는 30일 캠퍼스 투어를 잠정중단하기로 했다.  

    중국인학생 비율이 높은 대학의 한국어교육기관도 잇따라 휴강에 들어갔다. 성균관대 한국어학당은 31일, 동국대는 2월3일, 숙명여대는 2월4일까지 휴강한다. 일부 대학은 상황에 따라 휴강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신입 행사, 어학당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 대학가 ‘불안감’ 확산

    이처럼 대학들은 분주하게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학사일정을 조정하거나 귀국일정을 늦춰달라고 통보할 뿐 근본적인 대안을 내지 못해 막막한 상황이다. 중국인유학생이 전체 외국인유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수백 명의 학생을 어떻게 격리조치할지도 고민이다. 

    서울권 4년제 대학의 한 관계자는 “당장 입학하는 중국인유학생들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부에서 이들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 이상 학교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호남권 4년제 대학의 관계자는 “사실 재정적 이유로도 중국인유학생을 포기하기는 어렵다”며 “지금은 교육부 대책방안을 따르면서 우한폐렴이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는 “대학차원에서 내려지는 조치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며 “방역체계와 부처 간 역할분담, 긴밀한 업무협조, 정보교환 등이 잘 이뤄져야 하는데 현 정부에선 이 모든 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야당 시절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을 땐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한다며 맹비난했다”며 “그러나 지금 청와대는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감이 전혀 없고 우왕좌왕하며 아마추어 같은 모습만 보이고 있다”고도 비난했다.

    한편 교육부는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 “최근 중국 후베이성에 다녀온 학생과 교직원의 현황을 파악하고 증상이 없더라도 귀국일 기준 14일간 자가격리할 것”을 요청한 상태다. 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졸업식·입학식 같은 단체행사는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