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교육청, 21일 “정치편향 교육 없었다” 결론… 교육계 “제 식구 감싸기냐” 비판
  • ▲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이뤄진 인헌고에 대한 특별장학 조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뉴데일리DB
    ▲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이뤄진 인헌고에 대한 특별장학 조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뉴데일리DB
    서울시교육청이 ‘정치편향교육’ 논란이 일었던 서울 인헌고 교사들에게 법적·행정적 징계조치를 하지 않기로 결론냈다. 이들 교사가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강제로 가르치거나, 정치편향적·정파적 교육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시교육청의 판단이다. 교육계에선 "공정성이 결여된 조사 결과"라며 전형적 '제 식구 봐주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1일 시교육청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이뤄진 인헌고에 대한 특별장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교육청은 "특별장학을 진행한 결과 일부 교사의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으나 지속적·반복적·강압적 정치편향교육은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인헌고 재학생들로 구성된 ‘인헌고학생수호연합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교사들의 정치사상 주입교육 실태를 폭로했다. 이들은 일부 교사들이 교내 마라톤 행사에서 학생들에게 반일 구호 제창을 요구하고, 수업시간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뉴스는 모두 가짜뉴스다’ ‘너 일베냐’ 등의 발언으로 특정 정치사상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교육청은 지난달 22일 학생수호연합 학생 2명을 면담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교생 441명에 대한 무기명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특별장학에 착수했다. 설문지는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강요 느꼈다"고 학생들 증언에도… 서울시교육청 “강제성 없었다”

    설문 결과, 반일 구호가 적힌 ‘마라톤 띠’ 제작이 강요된 것이라고 답한 인원은 21명, 마라톤대회 구호 제창에 강제성이 있었다고 답한 인원은 97명으로 나타났다. 또 29명은 교사가 ‘조국 뉴스는 가짜’라고 하는 것을, 28명은 ‘너 일베냐’고 발언하는 것을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이 같은 결과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내놨다. 응답자들의 분포가 특정 반이나 학년에 집중되지 않았고, 교사의 발언을 법적·행정적 징계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는 게 교육청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교육청은 학교나 교사에게 주의·경고 등 행정처분이나 특별감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교육청은 “마라톤의 사전 교육활동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됐고, 행사 과정에서 나온 반일 구호는 한일관계에 따른 당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로 정치적 중립성을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봤다.

    이어 “수업시간 중 ‘조국 관련 뉴스는 가짜뉴스’ ‘너 일베냐’와 같은 발언도 있었지만, 이를 특정 교사가 반복적으로 한 게 아니라 일부 학생의 발언이나 행동에 대응하다 의도치 않게 나온 것으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교사의 해당 발언이 수업 진행상 불가피하게 우발적·산발적·일회적으로 지도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말이다.

    다만 교육청은 인헌고 측의 책임도 일부 인정했다. 교육청은 “교사가 의도치 않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학생이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한 점은 성찰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사회현안과 관련된 토론교육이나 일상적인 교육에서 정치적 중립성의 범위와 한계 등에 대해 규범과 규칙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교육청의 책임도 있다고 인정했다.

    학생 탓이라는 조희연 “정치교육 원칙 만들겠다”

    이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성명을 내고 “기성세대의 지식과 시각에 의문부호를 던지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거나 금기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도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이 남다른 감수성으로 교사와 다른 시각과 생각을 지니고 행동했다”고 진단했다. 인헌고 사태의 책임이 학생들에게 있다는 의미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교육감은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누가 더 잘못했는가 하는 관점이나 법적·행정적 처벌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며 “성찰적 변화와 새로운 규범과 규칙을 정립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사회현안(정치)교육의 규범과 원칙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독일의 ‘보이텔스 바흐 합의’와 같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 ▲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과 회원들이 21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교육당국의 정치편향 교육에 대한 엄정한 조치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박성원 기자
    ▲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과 회원들이 21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교육당국의 정치편향 교육에 대한 엄정한 조치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박성원 기자
    교육청의 발표 직후 교육계에서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진보성향의 조 교육감이 있는 서울시교육청이 솜방망이식 처분으로 인헌고 봐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와 17개 시·도교총 등 교육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은 이날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헌고 특별장학 결과 발표를 ‘부실조사’ ‘공정성을 결여한 조사’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조사 결과 정치편향교육을 느낀 학생들이 많았음에도 교육청은 강압과 사상 주입이 없었다며 납득할 수 없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사담당관이 전교조 출신 인사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키웠다”고도 주장했다.

    “제 식구 감싸기냐”… 교총, 교육청 ‘미온적 대처’ 비판

    하윤수 교총 회장은 “교육청은 솜방망이 처분으로 교육의 정치 중립 의지조차 박약함을 드러내고 있고, 국가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며 “정치편향교육은 교육현장에서 반드시 축출해야 할 ‘교육적폐’”라고 주장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는 “교사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게 분명한데 교육청은 온갖 궤변으로 학생들의 진실된 목소리를 짓밟았다”며 “조 교육감이 전교조 감싸기 차원에서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는 “해당 교사들에게 징계나 법적 처벌을 가하지 않고 넘어가면 인헌고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조 교육감의 무책임함에 또 한번 실망했다. 학생들을 정치전사로 키우겠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인헌고 등 정치편향 논란이 불거진 학교에 대해 국회 차원의 조사를 촉구하고, 여당 등이 선거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는 견해를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