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장·공수처 검사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친정부 기관 변질 가능성 높아"
  •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야당 탄압용 아니냐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법조계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정부여당인데 야당 탄압용이라는 의견은 잘못됐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공수처 수장인 공수처장 임명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어 실질적으로 '친여 기관'이 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받은 공수처의 권력을 제한할 제도적 장치도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야당 탄압용'으로 사용될 위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공수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마저 제기한다. 반대로 문 대통령이 공수처 설치법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공수처, '야당 탄압' 기관 될 가능성 커

    문재인 대통렁은 19일 오후 8시부터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공수처에 대해 "공수처 설치가 야당을 탄압하려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고위공직자의 거의 대부분은 정부와 여당에 있지 않겠냐"며 "사리에 맞지 않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검찰과 경찰 등 사정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국정농단 같은 사건들이 생겨난 것"이라며 "공수처는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 총재도 공약했던 사항"이라고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공수처가 반대파 숙청기관이 될 것"이라는 야당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12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와 회당에서 "공수처 설치법을 12월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하겠다"고 공언했다. 공수처 설치법이 본회의에 부의되면 60일 내에 법안 상정과 표결이 가능하다. 문 의장이 상정을 강조함에 따라 당일 표결이 가능하도록 다음달 3일 부의와 동시에 상정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야당이 공수처를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우선 공수처의 지배구조 때문이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수처 설치법안을 보면, 공수처장은 공수처장추천위원회의 5분의 4 이상 찬성으로 2명의 처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한 뒤 인사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하도록 돼 있다.

    추천위원회는 법무부장관·법원행정처장·대한변호사협회장과 여당 추천 위원 2명, 야당 추천 위원 2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공수처 검사 임명도 인사위원회 추천과 처장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도록 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여당이 야당 측 추천위원 중 한 명만 포섭하면 공수처장을 추천할 수 있는 데다, 지명은 결국 대통령이 한다는 점에서 결국 실질적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 '친여' 인사 임명에 대한 야당의 견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이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것도 그래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하면서 공수처법 폐기를 요구했다. 황 대표는 공수처법에 대해 "문재인 시대의 반대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자들은 모조리 사법정의라는 이름으로 처단하겠다는 법이 바로 공수처법"이라고 강조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13일 패스트트랙 충돌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출석하면서 "정부와 여당이 공수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탄압' 변질 가능성 높아… 이회창, '공수처' 아닌 '특검제' 추진

    편향적 지배구조는 공수처를 결국 정치탄압의 수단으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여당이 검찰의 기소권 독점을 비판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또 다른 칼'을 탄생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판·검사와 경무관급 경찰공무원, 장성급 장교와 고위공무원 등을 포함한다. 특히 현직 고위공직자의 범죄뿐 아니라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범죄도 포함하기 때문에 이전 정권의 공직자에 대한 보복수사가 가능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0일 '삼성 떡값 리스트'를 거론하면서 "공수처법은 리스트에 올랐지만 조사와 처벌을 받지 않은 황교안 검사와 같은 사람들을 조사하는 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수처는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 총재도 공약했던 사항"이라고 말했던 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이 전 총재가 추진했던 것은 공수처가 아닌 특검제다. 이 전 총재는 고위공직자의 비위를 수사하기 위한 독립 수사기관 설치에는 공감했지만 그 방식으로 특검제를 제시했다. 공수처법과 달리 특검을 상시적으로 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였다. 이 전 총재의 특보를 지냈던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지난달 23일 "이회창 총재님은 공수처 설치를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헌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공동대표는 이날 본지에 "공수처장은 물론 공수처장이 제청하는 공수처 검사들 역시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좌파 독재법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이면서 과거에는 변호사였던 사람이 국가정책에 대해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라며 "공수처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발언을 한 것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는 것이고, 모르고 있었다면 본인의 무능을 증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