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뇌물죄'를 '제3자 뇌물죄'로 바꾼 듯… 법조계 "검찰 스스로 공소 부실 인정"
  • ▲ 검찰. 정상윤 기자
    ▲ 검찰. 정상윤 기자
    검찰이 1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정확한 공소사실 변경 부분은 밝히지 않았으나 '직접 뇌물죄'를 '제3자 뇌물죄'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의 '직접 뇌물' 혐의를 주장하던 검찰은 이번 공소장 변경으로 스스로 공소부실을 인정한 셈이 됐다.

    검찰은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속행 공판에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이 공소장 변경에 대한 신청을 했다"며 "변경 허가 여부에 대해서는 다음번 기일에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 "직접 뇌물죄 근거 부족" 지적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을 삼성 뇌물수수 건과 관련해 직접 뇌물죄로 기소했는데, 이번 공소장 변경을 통해 공소내용을 직접 뇌물죄에서 제3자 뇌물죄로 변경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검찰이 항소심 재판 도중 공소장을 변경한 이유는 그동안 주장했던 이 전 대통령의 직접 뇌물죄에 대한 혐의 입증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삼성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직접 뇌물죄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는데, 검찰이 이 같은 상황에서 직접 뇌물죄에 대한 공소유지가 힘들다고 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2007년 11월부터 기존에 거래하던 미국의 대형 로펌 에이킨검프(Akin Gump)와 ‘프로젝트M’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계약을 하고 매월 12만5000달러씩 자문료를 지급했다. 검찰은 이것이 삼성의 자금지원이라며 이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고, 1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거래한 돈이 어떻게 이 전 대통령의 직접 뇌물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직접 뇌물(단순 수뢰죄)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접 또는 사자(使者)나 대리인을 통해 금품을 받아야 한다.

    '제3자 뇌물죄' 입중도 쉽지 않을 듯

    따라서 이 전 대통령의 직접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삼성의 자금을 받은 김석한 변호사나 에이킨검프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 혹은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 항소심 재판 내내 삼성 뇌물 수뢰 주체에 대한 재판부의 지적이 이어졌지만 검찰은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제3자에게 금품이 지급되는 경우에도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다.

    지난달 28일 증인으로 출석한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나 금산분리 등을 생각하고 다스에 자금을 지원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어떤 특정한 사안에 도움을 받고자 했다기보다는 도와주면 회사에 유익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서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소장 변경으로 검찰은 스스로 자신들의 공소부실을 인정한 꼴이 됐다”며 “이학수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증언했기 때문에 제3자 뇌물이라는 검찰의 주장도 입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