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항소심] 이팔성 "감정 문제로 금액 부풀려" 진술…'비망록' 신뢰도 떨어져
  •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팔성(75)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명박(78) 전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자금이 이팔성 전 회장의 돈이 아닌 성동조선의 돈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팔성 뇌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성동조선 뇌물’만 존재하는 셈이다. '전달자'에 불과한 이 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임명된 반면 '공여자'인 성동조선은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뇌물죄 성립 여부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뇌물 수수의 핵심 증거로 제시한 이팔성의 비망록과 메모지도 신빙성이 낮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돈을 건넨 구체적 정황이 담기지 않은 데다 이 전 회장이 "감정문제로 비망록에 금액 등을 부풀려 썼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 항소심 공판에서 이 전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불법자금을 지원한 것도 떳떳하지 못한데, 그 돈마저 남의 돈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게 너무도 부끄러웠다”고 진술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팔성 뇌물’ 아닌 ‘성동조선 뇌물’

    검찰은 이 전 회장이 2007년 대선 전 이 전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 변호사와 김윤옥 여사를 통해 16억5000만원의 대선자금을 건넸으며 취임식 직전 맞춘 양복 5벌 값 1230만원을 대납했다며 이 전 대통령을 사전수뢰뇌물죄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총선 전인 2008년 4월 이 전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 측에 건넨 3억원에 대해서도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총 19억 6230만원을 수수하고 그 대가로 이 전 회장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임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증인신문에서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대선 전) 성동조선으로부터 20억원을 지원받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전 회장이 이 전 대통령 측에 건넨 19억6230만원은 성동조선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성동조선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이 전 회장이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생각하고 대통령이 되면 이팔성 전 회장이 좋은 자리로 갈 것이라고 생각해, 나중에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20억원의 정치자금을 조건 없이 지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장대로 이 자금이 뇌물이라고 한다면 뇌물 공여자는 이 전 회장이 아닌 성동조선이 된다. 게다가 전달자에 불과한 이 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임명되는 동안 공여자인 성동조선은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했고, 2012년에는 회장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검찰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 전 회장에게 "성동조선이 돈을 건네면서 누구에게 얼마를 전달하라는 구체적 지시를 했느냐? 증인의 판단 하에 금액과 대상을 결정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 전 회장은 이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사전수뢰뇌물죄는 적용될 수 있나

    이 전 회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공직 임명을 청탁했는지 여부도 이날 공판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2008년 4월 이상득 의원 측의 혐의가 원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상황에서 재임 전 수수 혐의는 사전수뢰죄에 해당하므로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범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이날 증인신문에서 돈을 준 이유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대선에 사용하라는 것"이었다며 "당선되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답했다. '언제부터 이 전 대통령에게 희망보직을 얘기했느냐'는 질문에는 "대선 전에는 독대한 적이 없다"며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정치나 금융계 일을 통해 장래 나라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말씀드렸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자리'를 청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청탁은 업무에 대해 연관이 있음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판례"라며 "기여하고 싶다. 금융기관장이나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말한 정도로는 구체적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비망록에 금품 전달 내용은 없다?

    또 이날 증인신문에서 변호인이 "메모지는 모두 2007년 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금품을 건넨) 내역이 적혀 있는데, 근거자료로 삼았다는 2007년 비망록과 2008년 5월 이후 비망록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이 전 회장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기존 언론보도 내용과 달리 검찰이 자금 수수의 구체적 정황이 담긴 비망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다만 이 전 회장이 금액과 이름만 기재한 메모지가 여러 장 발견됐는데, 이 전 회장은 이 메모지가 비망록 등을 기초해 썼다고 주장했다.
  • ▲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비망록 중 이 전 대통령 측에 전달한 금액을 언급한 유일한 내용은 2008년 3월28일자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해당 비망록 내용을 제시하면서 "MB와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되는지 여러 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고 기록했는데 30억원을 건넨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이 전 회장은 "30억원은 아니다"라며 "당시 격한 기분에 이리저리 20몇 억원이 되니까 ‘약’이라는 말을 붙여 30억원이라고 쓴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2008년 3월까지 건넸다는 돈은 옷값까지 포함해 총 16억6230만원에 불과하다. 비망록은 2배가 부풀려졌고, 이날 증인신문에서도 이 전 회장은 20몇 억원이라며 허위증언을 한 셈이다.

    또 해당 금액은 자신의 돈이 아닌 성동조선으로부터 받은 돈의 일부일 뿐임에도 마치 자신이 마련한 돈인 듯 원망하는 내용이 담겨 신빙성의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메모 작성 이유는

    이 전 회장은 이날 증인신문에서 메모 작성 이유에 대해 "성동조선이 돈을 돌려달라고 해, 내 선에서 해결이 안 돼 이상득·이상주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에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이 "성동조선 측에서는 돈을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며 "다만 성동조선 회장이 증인에게 2억원 정도 빌려달라고 한 것뿐이라고 진술했는데, 돈을 돌려달라고 협박한 것이 맞느냐"고 묻자 이 전 회장은 "돈을 돌려달라고 한 것은 맞다"고 답변했다.

    재차 변호인이 "성동조선으로부터 받은 금액(20억원) 중 증인이 턱없이 적은 금액(1억원)을 돌려줬는데도 성동조선 측에서 그 금액을 받고 돈을 돌려달라는 협박을 그만뒀다는 것이냐"고 묻자 이 전 회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변호인은 성동조선 회장이 2012년 12월 불법대출 건으로 구속된 사실을 상기시키며 "성동조선이 돈을 이명박 캠프에 전달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추궁해서, 그 때 돈을 전달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메모지를 만든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 전 회장은 "돈을 전달할 때마다 (성동조선 측에) 얘기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변호인이 의문을 제기한 이유는 성동조선이 건넨 20억원을 이 전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메모가 작성됐다면, 메모의 신빙성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의 의문이 사실이라면 액수를 맞추기 위해 전달하지 않은 내용까지 거짓으로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동件’에 대한 진실은

    대선 후인 2008년 2월13일자 비망록에 대한 신문도 이어졌다. ‘MB에게 성동 건(件) 이야기함. 이 부의장과 상의할 것이라고 함’이라고 적힌 비망록 내용에 대해 이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성동구 공천문제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성동조선으로부터 돈을 받아 전달한 사실을 보고하고 ‘선수금 환급보증(RG)’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성동조선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 전 회장은 이날 증인신문에서도 같은 취지의 답변을 이어갔다. 이에 변호인이 성동조선 부회장의 검찰 진술조서를 제시하며 “김 부회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8년에는 성동조선에 RG문제 따위는 없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 진술을 했느냐”며 “RG문제라면 대통령이 경제관료와 상의하지 왜 이상득 전 의원과 상의하겠다고 했느냐”고 묻자 이 전 회장은 “비망록에 그렇게 써져 있다면 사실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성동조선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처음 RG계약을 체결할 때는 어려움이 컸지만, 2008년에는 성동조선의 매출규모나 실적을 보면 RG계약은 걱정할 게 없었다. 이팔성이 내게 들은 내용을 토대로 남해안 중소 조선소를 뭉뚱그려 RG를 설명한 것 아닌가 싶다”고 진술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해당 비망록의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성동조선의 자금 지원 및 청탁문제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남해안 중소 선박회사들의 RG문제에 대한 정책제안을 한 것뿐”이라며 “성동조선 자금 지원 대가로 RG문제 해결을 요청했다는 이팔성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