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체리레몬칵테일' 출간한 김규나 작가… "법치 무너진 지금의 상황 안타까워"
  • ▲ 김규나 작가가 25일 오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이기륭 기자
    ▲ 김규나 작가가 25일 오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이기륭 기자
    "남성 혐오, 페미니즘 등 한쪽 입장으로만 가는 시대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투운동도 일방적 매도를 해서는 안 된다. 미투운동은 바람직한 남녀 관계로 가기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

    지난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칼>로 등단한 김규나(53) 작가가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칼>은 사랑과 결핍, 상처, 배신 등 인간의 감정을 섬세한 심리 묘사와 탄탄한 문장으로 그려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김규나 작가는 이후 2017년 11월 관계의 단절이 회복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그린 첫 장편소설 <트러스트미>를 낸 뒤 약 1년 만에 <체리레몬칵테일>을 펴냈다.

    <체리레몬칵테일>은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me too), 성폭력부터 사회 곳곳에 숨은 정계·언론계·학계 문제를 날카로운 필치로 서술한 작품이다. 사회 구조보다 개인의 의지, 자유, 책임에 중점을 둔 소설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오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김규나 작가를 만났다.

    '미투·성폭력' 소재 <체리레몬칵테일>

    - 첫 장편소설 <트러스트미> 이후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미투·성폭력 등을 소재로 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소설 앞부분에 서술된 대관령 사건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지난 2011년 여름, 소설가이자 문단에 있는 사람들 몇 명과 강원도에 갔다. 그 길에 소설 속 주인공 '미온'과 같은(미온은 차 뒷자석에서 수음을 하는 송두섭 교수를 목격한다) 상황이 벌어졌다.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웠다. 그 순간에는 괜찮았으나 이후 충격의 여파가 왔다. 이걸 소설로 써야겠다고 나중에 생각했다. 폭로나 고발의 개념은 아니다. 다만 이 일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쓰게 됐다."

    - <체리레몬칵테일>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건가?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는 내가 겪은 일부 경험을 녹여냈다. 여기에 허구를 가미했을 뿐이다. 소설 속 내용 중 실제 내가 경험한 부분은 5~10% 정도, 나머지는 여기에 소설적 요소를 더했다."

    - 소설 제목이 독특하다. <체리레몬칵테일>이라는 제목을 정한 이유가 있다면. 

    "제목을 먼저 정하고 소설을 썼다. 소설 첫 내용이 대관령 사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제목은 무겁지 않았으면 했다. 책 뒷편에서 설명했듯 체리는 여자, 레몬은 남자를 상징한다. 체리는 한 씨앗을 품은, 단단한 과일이다. 레몬은 씨앗이 많고 시큼한 맛 탓에 많은 이들이 다 먹지는 않는다. 칵테일은 술이지 않는가. 잠깐 취하는 것이다.

    체리레몬칵테일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기분 좋게 취하고 서로 만나서 춤추고 사랑하는 그런 시간을 의미한다. 이를 우리는 부정하지 말고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세상에는 부모 자식·부부·연인·친구 등 사이에서 수많은 폭력이 존재한다. 폭력에 대한 처벌은 법치가 해야 할 부분이다. 이와 별개로 내가 그 폭력을 딛고 어떻게 나를 다시 회복시키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 두 주인공 미온·강주가 보는 '폭력'의 정의가 다소 다르게 묘사된 것 같다. 소설에 담으려했던 폭력의 정의는 무엇인가?

    "미투 사건이 터지면서 이슈가 됐다. 이 소설을 쓰면서 '폭력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체벌과 폭력은 다르다. 소설 속 '영우'가 말했듯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폭력이다. 폭력에 반대하고 폭력을 가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법치로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법치가 무너진 상황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폭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또 성폭력은 힘의 불균형, 권력자와 피권력자 등의 '관계' 때문에 생긴다. 그동안 미투 폭로가 되지 않았던 이유다."

    '미투' 거론 일부 작가를 소설 모델로 삼아"

    - 문단 내 성폭력 문제도 자세히 서술됐다. 고은 시인 같은 실제 사건들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건 아닌가?

    "앞서 말했듯 대관령 사건은 실제 경험한 일이다. 노래방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일이 일어난 적도 있다. 작가 세계에 발을 막 들여놨던 시절, 어느 세미나에 한 중견 작가가 강사로 왔다. 그가 비디오 방을 가자고 이끌었고 이를 거절했다. 소설 속 횟집에서 작가들의 성추행이 노골적으로 이뤄지는 장면·발언 등도 이런 현실을 모티브로 했다. 이 소설에서는 고은 시인을 모티브로 한 인물은 없다. 다만 미투에 거론된 작가들 중 일부는 이 소설의 모델이 됐다."

  • ▲ 신작 <체리레몬칵테일>로 돌아온 김규나 작가.ⓒ이기륭 기자
    ▲ 신작 <체리레몬칵테일>로 돌아온 김규나 작가.ⓒ이기륭 기자
    - 안희정 전 지사의 미투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안희정의 경우 상대 여성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건 자기 입장이 모호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최근 안희정 부인의 진술을 보면서도 의문이 든다. 폭력을 행사한 쪽도, 반대인 쪽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도 옹호하고 이해해주고 싶지 않다."

    - 성추행 가해자로 묘사된 송두섭 교수는 권위적이고 이중적 인물로 보인다. 이 캐릭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나?

    "현실적이면서 재미있는 캐릭터다. 교수이면서 정치평론가이고, 이후 정계 진출을 꿈꾼다. 이 캐릭터를 통해 우리나라 기득권층,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정치 권력자들의 모순을 비판하고 싶었다."

    "알고싶지 않을 권리도 지켜져야"

    - 송두섭 교수의 부인 '권민자' 시선에서, 기자를 보는 비판적 시각도 소설에 담겼다. 현재 한국 언론을 평한다면.

    "탄핵 이후 페이스북을 할 때 '기레기한테 소설 쓰지 말라'는 댓글을 봤다. 화가 났다. 소설은 어려운 작업이다. 탄핵 법조문 증거가 주로 기사였다. 기자들은 본인이 '기레기'라고 불리는 이 시대를 통탄해야 한다. 개인 느낌을 쓰지 말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사실만 전달해서 독자가 판단하게 해야 한다. 최근에는 '5·18 망언'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도되고 있다. '망언'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5·18에 대한 비판을 모두 망언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독자의 비판적 사고를 막게 하는, 기자들의 자체 판단에 의한 행위다. 소설 속 권민자는 말한다. 국민이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다 폭로하지 말고, 국민이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권리도 지켜야 한다고. 기자로서 인간적인 부분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 소설은 이전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인간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시각이 있는 듯한데?

    "세상은 그저 그릇이다. 이 안에 무엇을 담아서 어떻게 하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전작 <트러스트미> 이전의 한국 소설은 사회 비판적이었다. 모든 게 세상 탓이었고, 개인의 외로움과 힘듦 역시 사회 탓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이다. 그런 세상은 점진적으로 탄탄하고 좋은 세상으로 변하게 된다. 이게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드려고 노력하고 의지를 가진다면 그게 좋은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김 작가는 '5·18 망언'이라는 언론의 무신경한 보도로 정당한 비판도 '망언'으로 폄훼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김 작가는 '알 권리'에도 '차별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알고 싶지 않은 권리'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탈북자 '내 남편이 광주 갔었다'고 말했다"

    - 최근 5·18 논란이 된 '5.18 비하 처벌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다. 완전히 공산주의로 가겠다는 무서운 생각이다. 5·18 문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에 대한 접근 자체를 불허하는 것도 폭력이다. 출판사를 하면서 해외에 있는 탈북민들과 6개월 정도 이야기한 적 있다. 북한 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만난 탈북민은 '5·18 때 자신의 남편이 일반 한국인 복장을 하고 광주에 갔었다'는 발언을 했다. 확신하진 않지만 좀 더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망언인지 여부는 누구도 결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하나를 꼽는다면.

    "최근 10대 아들에게 정관 수술을 시키는 부모 이야기가 보도됐다. 부모는 아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기 위해 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부모 스스로가 아들의 잘못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이기심'의 문제다. 부모의 무책임인 것이다. 이 사회의 무책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선택에는 책임이 있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정작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탄핵 주도 세력 역시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는 책임의 무게를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