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반공단체 활동, 20대 레이건 정부서 두각… 볼턴의 의중 잘 아는 측근
  • ▲ 지난해 5월 존 볼턴 NSC 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공식석상에서 만났을 때 모습.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5월 존 볼턴 NSC 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공식석상에서 만났을 때 모습.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찰스 M.쿠퍼만(Charles M. Kupperman)’을 국가안보 부보좌관에 임명한 것은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이었다. 그런데 미국 언론들은 2018년 5월부터 이미 ‘찰스 쿠퍼만’ 부보좌관을 주목했다. 쿠퍼만은 존 볼턴 보좌관이 임명된 직후 국가안보회의(NSC)에 합류했고, 그의 경력이 매우 화려했기 때문이다.

    쿠퍼만은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시급 79달러(한화 약 8만 8300원)의 임시 계약직 신분이었다. 그는 ‘미라 리카델’ NSC 부보좌관이 당시 멜라니아 트럼프의 대변인과 갈등이 생겨 사임하게 되면서 그 자리를 맡게 됐다. 대다수 언론들은 “쿠퍼만은 30년 넘게 나의 조언자였으며, 그는 국방, 군축, 우주 분야 관련 국가안보 의제를 만들고, 트럼프 대통령을 도울 것”이라는 존 볼턴 보좌관의 성명에 주목했다. 반면 좌익 진영은 쿠퍼만이 20대 시절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쿠퍼만은 20대 후반 레이건 행정부에서 ‘군비통제 및 군축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좌익 성향 언론들은 존 볼턴을 공격할 때면 쿠퍼만과 ‘매튜  C.프리드먼’이라는 측근까지 끼워 넣어 ‘섀도우 NSC’라고 비판했다. 일부 한국 언론은 이들을 ‘미국판 최순실’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강경 우파들의 신상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이트 <라이트 웹(https://rightweb.irc-online.org/profile/charles-m-kupperman)>에는 쿠퍼만에 대한 언론 비판이 잘 정리돼 있다.

    쿠퍼만은 1960년 7월생으로, 20대 중반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을 했다. 10대 시절에는 반공주의 단체 현존위협위원회(CPD)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외에도 미주리 대학 국방전략연구소, 안보정책센터(CSP), 공공정책국가연구소(NIPP) 등 미국 내 우파 단체에서 주로 활동했다. 보잉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NIPP의 약력 소개에 따르면 쿠퍼만은 보잉에서 ‘미사일 방어체계 및 전략통합’ 담당 부사장으로 일했다.

    <뉴욕타임스> “볼턴 주변에 포진한 측근, 그림자 NSC”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쿠퍼만과 볼턴이 NSC를 좌지우지 하면서 ‘외교적 참사’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 매체는 제임스 매티스 前국방장관이 사임하게 된 계기인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비롯해 이란 핵합의 파기 등을 쿠퍼만이 주동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로부터 직접 피해를 입은 이란 관영매체는 쿠퍼만과 볼턴이 이란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 기조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 ▲ 1987년 찰스 쿠퍼만이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 부부를 만나는 모습. ⓒ로널드 레이건 도서관 공개사진-위키피디아.
    ▲ 1987년 찰스 쿠퍼만이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 부부를 만나는 모습. ⓒ로널드 레이건 도서관 공개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해 5월 로버트 팔라디노 NSC 대변인을 인용해 “NSC 부보좌관이 공석일 때 볼턴은 500여 명 이상으로부터 이력서를 받았지만 결국 쿠퍼만을 채용했는데, 이는 볼턴이 자신에게 자문을 해주는 참모들의 실용적인 감각은 물론 전략적 감각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를 반대하는 진영은 이를 부풀려 “볼턴과 수십 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은 측근 그룹들이 NSC 운영을 좌지우지 하고 있으며, 사실상 백악관 비선그룹”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 반대 매체들은 볼턴과 쿠퍼만, 그리고 전직 로비스트인 ‘매튜 프리드먼’까지 싸잡아 ‘볼턴 비선그룹’이라며 좌익 진영이 반대하는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이란 핵합의 파기, 시리아 철군, 이스라엘 대사관 이전, 중국 압박, 우주군 창설 등이 모두 이들이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 중이다.

    하지만 쿠퍼만이 위험하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라이트 웹>은 “쿠퍼만은 레이건 정부 이후 새로 들어선 미국 정부들이 적지 않은 이슬람 출신 인사들을 기용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는 설명으로, 그가 강경 우파로써 과격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쿠퍼만의 다른 약력도 아시아 태평양이나 인도양 보다는 중동과 반미 이슬람 국가에 집중돼 있다. 그에 관한 현지 언론 보도 가운데 한국이나 북한을 특별히 언급한 대목도 없다.

    쿠퍼만, 레이건 시절 활동은 CPD 회원인 덕분

    “쿠퍼만이 볼턴을 움직인다”는 주장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쿠퍼만은 1970년대 반공주의 단체 ‘현존위협위원회(CPD)’에서 활동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선 출마 전 잠깐 동안 CPD의 명예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쿠퍼만을 비롯한 회원들과 알게 됐다. 이런 인연으로 쿠퍼만은 레이건 정부에서 ‘명예직’에 위촉된 것이다.

    반면 1948년 11월생인 볼턴은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코빙턴 앤 불링’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었고, 레이건 재임 시절인 1988년 마흔 살의 나이에 이미 법무부 선임 국장으로 일했고, 이어 아버지 부시 시절에는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지냈다. 그는 이전부터 이미 네오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즉 쿠퍼만은 볼턴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측근’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