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경험 35세 국회의장… 퍼주기 복지, 경제 위기, 우파 탄압에 '반정부 투쟁' 나서
  • ▲ 지난 22일 쿠데타에 지지하며 시위를 벌이는 베네수엘라 시민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2일 쿠데타에 지지하며 시위를 벌이는 베네수엘라 시민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쿠데타 시도와 실패,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그리고 젊은 국회의장의 ‘임시 대통령’ 선언으로 베네수엘라 정국이 혼란의 도가니다. 특히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젊은 국회의장을 두고 남미는 물론 미국과 러시아까지 편이 갈려 대립하는 모양새다.

    우고 차베스의 좌익 포퓰리즘 정권을 계승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상태다. 이에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베네수엘라방위군 소속 군인 27명이 수도 카라카스에서 쿠데타를 시도했다. 이들은 “쿠데타를 시도 중이다. 국민들께서 도와 달라”는 영상 메시지를 SNS에 올린 직후 정부군에 진압됐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의 영상 메시지가 SNS에 퍼진 뒤 카라카스를 시작으로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23일에는 국회도 반정부 시위에 동참했다.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가 선봉에 섰다. 우파 야당이 다수를 차지한 베네수엘라 국회는 이미 지난 15일 마두로 정권에 정통성이 없다고 선언했다. 마두로의 라이벌 정치인들이 가택연금된 상황에서 치른 대통령선거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두로 지지세력이 장악한 대법원은 쿠데타가 진압된 21일 “국회의 주장은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국회의원들의 거리 진출을 부추긴 셈이 됐다.

    1983년생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

    혜성처럼 등장한 후안 과이도는 1983년생으로, 올해 35세의 초선 국회의원이다. 초선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을 맡게 된 것은 사실 마두로 정권 탓이다. 마두로 좌익정권이 부정부패와 실정(失政)을 비판하는 우파 정치인을 모두 구속하거나 연금하는 바람에 초선인 과이도가 국회의장까지 맡게 된 것이다.

    과이도는 1983년 1월23일 베네수엘라 바르가스 지역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항공기 조종사, 모친은 교사였다. 조부는 예비역 군인이었다. 과이도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9년 12월 바르가스 지역을 덮친 산사태로 한때 홈리스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때 차베스 정권이 재난재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고 우파가 됐다고 한다. 2007년 안드레스 벨로 가톨릭대학을 졸업한 과이도는 미국에 유학,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 ▲ 23일(현지시간) 지지자들 앞에 서서 마두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후안 구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3일(현지시간) 지지자들 앞에 서서 마두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후안 구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후 귀국한 과이도는 차베스 정권에 맞서겠다며 우파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차베스 정권부터 2013년 집권한 마두로 정권까지 좌익세력이 공기업과 공무원들을 장악하고 우파 진영을 탄압했지만 과이도는 살아남았다. 과이도는 2015년 총선에 자신의 고향인 바르가스 지역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마두로 정권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우파 진영을 더욱 탄압했다. 웬만큼 알려진 우파 정치인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거나 연금당했다. 마두로에 대항할 사람이 갈수록 줄어든 탓에 과이도는 2017년 국회 감사원장에 임명됐고, 2018년에는 우파 야당의 대표가 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마두로 지지파-과이도 지지파로 갈려

    대통령선거와 사법부 등에서는 온갖 불법을 저지르던 마두로 정권도 과이도가 의장으로 있는 의회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좌익 적폐정권 퇴진’을 원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은 우파 야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할 수 있게 해줬다. 과이도는 그런 국민의 열망 덕분에 ‘임시 대통령’ 선언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베네수엘라 국민의 열망은 이제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지켜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 성명을 내고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에서 “우리는 베네수엘라가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외교적·경제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서방 각국도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과 단교를 선언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23일 자신의 지지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헌법에 따라 취임한 대통령으로서 미국 제국주의 정부와 단교하기로 결정했다”며 “모든 미국 외교관이 떠날 수 있도록 72시간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 ▲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나라는 붉은 색. 후안 구이도를 지지하는 나라는 녹색으로 표시했다. ⓒ위키피디아 공개 그래픽.
    ▲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나라는 붉은 색. 후안 구이도를 지지하는 나라는 녹색으로 표시했다. ⓒ위키피디아 공개 그래픽.
    하지만 미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마두로의 ‘단교’ 소식을 전해 듣고 “미국은 마두로를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불법 대선으로 당선된 전직 대통령 마두로에게 외교관계를 단절할 법적 권한은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의 설전과 별개로 세계 각국은 과이도 지지와 마두로 지지로 편이 갈린 상태다. 러시아는 미국을 비난하며, 마두로 정권 편에 선다고 밝혔다. 볼리비아·쿠바·멕시코도 마두로 정권을 편들었다. 이들은 모두 좌익세력이 집권한 나라다.

    반면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페루·파라과이·과테말라·코스타리카는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지지한다고 밝혔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마두로를 외면한 셈이다. 캐나다도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EU 역시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성명을 통해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빠른 시일 내에 대통령선거를 다시 치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