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총선' 학술세미나...학자들 "재평가하려면 사료부터 봐라"
  • ▲ 5.10 총선거 당일 아침 7시에 투표장으로 모인 한국인들.ⓒ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DB
    ▲ 5.10 총선거 당일 아침 7시에 투표장으로 모인 한국인들.ⓒ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DB
    “1948년 5월 10일 월요일 선거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보통, 평등, 비밀, 직접 원칙에 입각했습니다. 여성 선거권은 스위스보다도 앞선 것이었습니다. 자유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자유의지(free will)를 확인했고, 국제사회 승인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기틀이 된 1948년 5.10 총선거의 역사적 의미를 객관적 시각에서 재조명하기 위한 학술세미나가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주최로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5.10 총선거의 정치외교학적 가치를 되짚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당시 정치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8년 5.10 총선의 역사정치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김명섭 연세대 교수(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이현우 서강대 교수, 이택선 한국외대 교수, 최선 연세대 교수, 강원택 서울대 교수, 남광규 고려대 교수, 양준석 서울신학대 교수 등 학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참석했으며, 사회는 김용호 인하대 교수가 맡았다.

    5.10총선거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언처럼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개회사에서 “5.10 총선을 38선 이남이라는 공간에 한정해서 보지 말고 보다 넓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승인 받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선거의 부재’였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가 국가로 인정하려면 건국을 원하는 국민의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는 수단이 바로 ‘선거’다. 5.10 총선거는 이런 사실만으로도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사건으로 기록될 가치를 지닌다. 유엔은 '대한민국 건국'을 염원하는 국민의 열망이 5.10 총선거를 통해 표출된 사실을 근거로,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 ▲ 김명섭 연세대 교수(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김명섭 연세대 교수(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선거 제도적 측면에서 본 제헌국회 선거법’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입법의원 속기록, 선거법 초안, 최종안 등 1차 자료 분석을 통해 선거법 심의 및 수정과정에서 각 정치집단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반영되고, 공평한 선거를 위한 의지가 어떻게 관철됐으며,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는지 등을 검토했다.

    이 교수는 제헌국회선거법의 특징으로 ▲‘인격주의’에 기반한 입법 취지 ▲소선거구제 다수득표제 채택 ▲건전한 판단과 공리적 계산이 가능한 유권자 상정(만 23세 이상)  ▲강권적 유권자 등록과 자유로운 투표 등을 꼽았다.

    그는 특히 ‘강권적 유권자 등록’에 주목했다. 일부 좌편향 학자들은 '강권적 유권자 등록'을 이유로, 5.10 총선거를 비민주적 선거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는 당시 정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고 비판했다.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남로당 등 좌익진영의 적극적인 선거 반대, 노조의 총 파업 등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유권자 등록은 강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덧붙여 그는 “비록 유권자 등록은 강제했지만 국민들에게 자유로운 투표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5.10 총선은 공정하고 민주적인 선거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1948년 5.10 총선의 역사정치학> 학술회의가 개최됐다.ⓒ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1948년 5.10 총선의 역사정치학> 학술회의가 개최됐다.ⓒ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택선 한국외대 교수는 ‘5.10 총선을 둘러싼 몇 가지 오해들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민족주의에 기인한 역사인식의 문제를 살폈다.

    이 교수는 5.10 총선거와 관련된 오해를 ▲이승만의 권력 추구 결과물로서 단독정부 수립 결정 ▲트러블메이커로서의 이승만 ▲5.10 총선을 둘러싼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갈등 ▲대한민국의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논란 ▲이승만의 권력욕에 의한 대통령제 추진 ▲5.10총선의 국민의 열망 반영 여부 등 6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이승만의 권력의지가 분단을 초래했다'는 민중사관적 견해에 대해, 이 교수는 “당시 소련 정부가 작성한 문서들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트러블메이커'로 바라보는 좌편향 역사학계의 시각에 대해서도 “이승만은 변혁의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였다”고 반박했다.

    5.10총선을 둘러싼 현실주의-이상주의 갈등에 대해서는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와 인종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간 대립으로 바라볼 수 있다”며, 새로운 분석을 내놨다.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의미를 폄하하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들이 근거로 드는 선거 조작과 투표 강요 등은 대부분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며, “구체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승만 박사가 권력욕에 눈이 멀어 대통령제를 추진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민군정 시기 여당이었던 한국민주당이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다가 막판 대통령제로 입장을 바꾼 결과”라며 사료에 입각한 객관적 시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그는 “5.10선거는 좌파와 북한의 공작에 맞서 과도한 민족주의가 남발해 모든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선 연세대 교수는 '5.10총선과 대한민국헌법의 경제조항'을 주제로, 제헌헌법의 경제조항 특징을 분석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당시 우리 국민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 정부에 의한 강력한 시장 통제 등 사회주의 경제와 유사한 정책을 선호했다.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적 측면에서는 자유주의 진영의 우파 정치인에게 표를 던졌다. 최 교수는 “1948년 헌법 가운데 경제조항은 자유시장경제와 국가의 통제를 적절히 조화시켰으며, 제헌헌법이 채택한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념이 현행 헌법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