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공개된 새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 논란 "국가 정체성을 북한에 두겠다는 것인가" 역사학계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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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뉴데일리DB

    문재인 정부가 마련한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試案)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끝내 현실화됐다.

    지난 2일 교육부가 발표한 새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 최종 시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역사학계 관계자들은 "우리 정부 스스로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3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 나라의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을 국책연구기관 일개 연구원이 발표한다는 현실 자체가 정부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현재 집필 시안 발표 내용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로 대체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표현 삭제 △대한민국 수립을 '정부 수립일'로 표기 △북한 주민 인권 및 북한의 군사 도발 삭제 △6.25 남침 표현을 집필 기준 대신 교육과정에 게재 등이다.

    지난 1월 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공청회에서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꾼 집필 기준 초안을 제시했으나 여론의 비판으로 인해 논란이 거세지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났다.

    그러나 2일 공개된 최종 시안은 그대로였다. 교육부는 해당 시안을 결정한 근거에 대해 "역대 교과서에서 대부분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써왔고, 1948년 UN결의 당시 '감시 가능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이명희 교수는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대체된 것과 관련한 배경을 먼저 짚으며 문재인 정부가 절차를 생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용어는 MB 정부 때 새롭게 추가된 것이 맞다. 그 이유를 보면 현실 사회에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두고 이를 자칫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수정한 것"이라고 했다.

    전교조 일부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잘못된 개념으로 해석해 교육을 하는 문제점 등이 발생해, 국가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것이다.

    실제 집필 기준은 정권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민주주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자유민주주의' 였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당시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기재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있어서 TV토론회도 열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며 "근데 국민 뜻을 존중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어떻게 그런 의견수렴절차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교과서를 뜯어고치나"고 반문했다.

    이명희 교수는 "용어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한 우려를 불식시킬 방안이 있어야 되는데 현재 그게 없다"며 "이는 일부 세력에게 잘못된 사인을 줄 빌미가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교과서 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 표현 삭제와 관련해서는 "이는 국민들이 스스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 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력히 질타했다.

    "역사적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남북이 언젠가는 합쳐야 된다는 게 암묵적인 사회적 동의인데 언젠가 통일이 돼야할 때 과연 남북 중 누가 중심이 될 것이냐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 기원을 따지는 것은 결국 국가 정체성 및 정통성을 다투는 문제다"

    "대한민국은 UN의 지원을 받고 절차에 따라 그들의 감시 속에서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해서 비밀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했다. 국민들이 직접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해서 만든 게 대한민국. 왜 6.25 전쟁 때 UN군이 자동개입을 했겠나.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 대한민국을 공식 승인했기에 북한의 전쟁도발에서 한국을 지원한 것"

    이명희 교수는 6.25전쟁의 본질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은 대한민국을 없애려고 한 것이 6.25의 본질"이라고 주장, "6.25 당시 북한은 한국보다 한참 잘 살았지만 국군과 국민들은 대한민국 체제를 선택해 목숨걸고 싸웠고 UN 도움을 받아 체제를 수호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대한민국 체제 정통성에 금이 갈 수도 있는'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일까.

    이명희 교수는 "이번 6월 교육감 선거가 있다. 만약 여기서 좌파 성향의 전교조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 훨씬 더 심각한 일이 발생할 것인데, 이번 교과서 개정은 그 단초를 만드는 행위"라며 "역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연구를 굳건히 뒷받침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자책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더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국가임을 국민들이 스스로 애매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가 수립일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의 지적이 숱하게 쏟아지기도 했다.

    정경희 영산대 교수는 지난달 20일 한 토론회에서 "현재 교과서에는 UN의 대한민국 승인(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왜곡해서 기술하고 있다"며 "만약 1919년에 대한민국이 세워졌다면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대한민국 대표는 왜 없었느냐"고 지적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 역시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1919년 건국이 됐다면 이후 펼쳐진 독립운동의 존재와 의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많은 역사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성취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면서 북한 체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우호적으로 서술하기까지 한다. 특히 북한 체제와 주체사상에 대한 서술은 거의 미화 수준"이라고 공개적으로 평했다.

    한편 평가원은 지난해 8월부터 새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새 집필 기준은 출판사들이 집필하는 교과서의 검정 기준으로, 이 기준을 어기면 교과서 출판이 제한된다. 교육부는 7월 중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안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