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원로배우 전성시대…깊은 울림, 진한 감동 전한다
  • ▲ 왼쪽부터 배우 이순재, 최불암, 정동환.ⓒ극단 사조,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리앤홍
    ▲ 왼쪽부터 배우 이순재, 최불암, 정동환.ⓒ극단 사조,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리앤홍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올 봄 연극계가 한층 풍성해지고 있다. 이순재(83)부터 최불암(78), 정동환(69)까지 원로배우들이 잇달아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세 배우 나이를 모두 합치면 230세. 이들은 젊은 배우에게서는 보기 힘든 연륜을 무대 위에서 쏟아내며 여전한 청춘을 과시한다.
  • ▲ 왼쪽부터 배우 이순재, 최불암, 정동환.ⓒ극단 사조,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리앤홍
    ◇ 연기인생 62년 이순재 "치매는 배우에게 사형선고와 같다"

    연기 인생 62년째인 배우 이순재가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로 분해 관객과 다시 만난다.

    극단 사조(思潮)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 4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KT&G상상마당 대치아트홀 무대에 올린다. 2017년 초·재연에 이은 세 번째 공연이다.

    작품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누구보다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과 다르게 항상 퉁명스러운 남편이 아내가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순재·장용은 지난 시즌에 이어 아내가 치매에 걸리자 헌신적으로 변화하는 전직 교사 한상우 역을 맡았다. 정영숙·오미연은 떠난 자식들을 그리워하다 치매에 걸린 아내 주윤애를 연기한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이순재는 그간 정통 사극부터 드라마, 영화, 시트콤, 예능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전 연령대 모두에게 사랑받는 '국민 배우'다.

    이순재는 현재 드라마 '라이브'에 출연하면서도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전국 투어와 '사랑해요, 당신' 공연을 준비하는 등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고령에도 무대에서 건재할 수 있는 건 여전히 긴 대본을 외울 수 있고 "연기에는 완성이 없고, 끝이 없다"는 그의 소신 때문이다.

    앞서 이순재는 '사랑해요, 당신' 프레스콜에서 "현실적으로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얘기이다. 가족들이 어떻게 치매 환자를 놓고 대처해야 하느냐 이런 부분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라며 "직업 특성상 치매는 우리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 ▲ 왼쪽부터 배우 이순재, 최불암, 정동환.ⓒ극단 사조,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리앤홍
    ◇ '국민 아버지' 최불암, 25년 만에 연극 무대 어떨까

    '국민 아버지'로 불리는 배우 최불암이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1993년 '어느 아버지의 죽음' 이후 25년만이다.

    지난 18일 개막한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안경모 연출)는 2016년 초연한 김민정 작가의 '아인슈타인의 별'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에피소드 세 편을 통해 우리 삶의 다양한 단면을 엿본다.

    뜻밖의 사고로 불구가 된 남편을 돌보는 여인, 10년 전 히말라야 트레킹 중 사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천문학도 준호,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진 진석의 이야기가 집중력 있게 펼쳐진다.

    이들은 모두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한 노인을 만난다. "하늘의 별이 흔들릴 때 누가 날 불러줘. 간절히 나를 잡아준다면 견딜 수 있지. 우리는 이미 별을 가지고 있으니까." 노인과 만난 세 사람은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도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깨닫는다.

    노인 역을 맡은 최불암은 "제 나이는 연극할 시간을 다 잃었다. 내가 과연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나이 먹으니까 대사도 금방 잊어버린다"면서 "무대가 검어서 등퇴장이 어렵다. '다리 몽둥이가 부러지면 어떠냐'는 각오로 무대에 섰다"고 밝혔다.

    이어 "얼마 전 신문을 보니 OECD 가입국 중 우리나라가 13년 째 자살률 1위라고 하더라. 실의에 빠진 젊은 세대들에게 '삶의 의미는 이렇다'고 부르짖고 싶었다. 나이 먹은 사람의 연기가 조금이나마 아픔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5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 ▲ 왼쪽부터 배우 이순재, 최불암, 정동환.ⓒ극단 사조,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리앤홍
    ◇ '고전극 전문 배우' 정동환 "삶은 예측 불가능하기에 꿈꾼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티고네', '메피스토', '햄릿' 등에 출연하며 '고전극 전문 배우'로 불리는 정동환이 오랜만에 현대극 무대에 선다.

    정동환은 방진의와 함께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2인극 '하이젠버그'에 출연한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다.

    작품은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극작가 사이먼 스티븐스의 최신작으로, 2015년 6월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흥행 보증 연극 단체인 맨해튼 시어터 클럽에서 초연했다.

    '하이젠버그'는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개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용과 존재의 변덕, 불확실성, 자연과 모든 인간 관계에서의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을 두 남녀를 통해 이야기한다.

    알렉스는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정육점을 운영해 온 70대 황혼기 남성으로, 보이지 않는 내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반해 40대 미혼모 죠지는 다듬어지지 않은 소통방식과 거침없는 행동을 하는 자유분방한 여성이다.

    이야기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런던의 붐비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만남은 그들의 삶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꿔놓는다. '하이젠버그'는 두 남녀를 통해 인간은 고립돼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알렉스' 역의 정동환은 1969년 연극 '낯선 사나이'로 데뷔해 올해 49년째 연기생활을 맞았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했다. 지금의 나이에도 변주가능성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인간의 삶은 예측할 수 없기에 꿈꿀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또, 오늘(24일) 첫 공연을 앞두고 "삶의 가치와 관계를 다룬 작품이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다.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았다"며 "현장 분위기가 밝고 즐거웠다.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은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