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사람’으로 얼버무린 대통령 개헌안...전문가들 “헌법 아닌 추상적 선언”

올바른 개헌안의 모색 국민대토론회, “분권 실종, 대통령에게 권한 집중”

김태영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4.17 19:28:48
▲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하고 있는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뉴시스 DB

지난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전자결재로 발의한 정부 주도 개헌안을 두고 학계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일각에서는 국회가 개헌안을 수정 할 수 없고, 찬반 표결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국무회의 심의 절차가 필수적인데도 이를 ‘사실상 생략한’ 발의는 심각한 위헌적 요소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개헌 논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적 여망에서 시작됐는데, 청와대가 공개한 대통령 개헌안은, 인사권을 독점한 대통령의 임기를 8년으로 늘려주는,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개악(改惡)’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자유민주연구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이 공동주최한 <올바른 개헌안의 모색, 국민대토론회>는, 대통령 개헌안을 둘러싼 논란을 되짚고, 국민에게 개헌과 관련된 바른 정보를 전달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이날 토론에는 고영일 변호사, 장영수 고려대 교수, 조갑제 대표, 이민 변호사,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겸 동국대 교수, 박인환 건국대 교수 등이 참석했으며, 사회는 김태훈 변호사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이 맡았다. 유동열 원장은 개회사에서 "토론회를 통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킬 올바른 개헌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발제자로 나선 고영일 변호사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문제점 분석’을 주제로, 대통령 개헌안 안고 있는 문제를 개괄적으로 검토했다.

고 변호사는 “헌법 개헌안에 대한민국의 건국이 있는가? 대한민국은 국민보다 외국인이 더 중요한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신앙이나 정치적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 군인이 파업하면 대한민국은 누가 지키는가?”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통해 개헌안을 분석했다.

그는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한 사실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기본권의 주체가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뀌면, 외국인도 내국인과 마찬가지의 헌법적 보호를 받게 된다. 문제는 국가간 상호주의 원칙 아래 권리행사에 대한 제한이 불가피한 외국인이 무제한적인 보호를 받게 된다면, 심각한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국가 전복을 꾀하는 외국 정당과 사회단체가 국내에서 반대한민국적 집회와 시위를 해도 원칙적으로 이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외국인이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대통령 개헌안에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 원칙이 신앙과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고 변호사는 이런 논리를 근거로 “대통령 개헌안이 실현되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가 파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 변호사는 대통령 개헌안은 공무원과 군인에게 단체행동권(파업)을 원칙적으로 인정해, 향후 대대적으로 공무원과 군인의 노동 및 인권운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29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합법화가 됐는데, 헌법까지 이를 명시하고 보장할 경우 국가위기 시 공무원 동원이 불가하고, 군인은 전투가 불가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 고영일 변호사.ⓒ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헌법으로서의 조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 야당이 반대하는데도 협의절차를 생략하고 대통령이 발의권을 행사하면서 합의 정신을 저버렸다는 점, 분권과 협치의 정신에 반해 실질적 권한을 그대로 대통령에게 집중했다는 점을 짚었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조갑제 대표는 “1948년 8월15일, 즉 대한민국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 개헌안은 국가의 해체(解體)를 위한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헌법은 중의적(重義的) 의미가 많아, 반드시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야 하는데, 이번 개헌안은 순수 한글 전용이어서 문제가 많다”고도 했다.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이민 변호사는 “대한민국 개헌은 역사에 대한 긍정감과 소속감 장려, 국가와 사회 의미 복원, 국가 경쟁력 향상과 기업 환경 최적화 등 통합과 상호인정의 정신을 확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대통령 개헌안은 이러한 국가 목적 달성에 크게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네 번째 토론자로 나선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행 1987년 헌법의 개정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 성과를 반영해 대한민국 국민이 지향하는 가치와 이상, 실현목표를 이전 헌법보다 더 훌륭하게 표출하고 있으며, 호헌장치인 헌법재판소 제도 역시 성공적으로 정착한 상태”라면서 “호헌(護憲)이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다섯 번째 토론자로 나선 김상겸 동국대 교수는 “헌법은 헌법규범에 의해 효력을 갖기 때문에 선언적 의미의 인권선언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대통령 개헌안은 기본권 주체를 ‘사람’으로 변경해 기본권을 ‘인권’으로, 헌법을 ‘인권선언문’으로 바꿨다”고 비판했다.

여섯 번째 토론자로 나선 박인환 건국대 교수는 “대통령 중심의 관제 개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진정한 의미의 ‘국민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국민개헌’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회 개혁 ▲헌법수호 의지 강화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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