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일곱 시간’의 불편한 진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불면 살려준다!”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고문’(拷問)... “숨기고 있는 사실을 강제로 알아내기 위하여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며 신문(訊問)함” 인터넷 사전에 나와 있는 낱말 풀이다.
      그러나 실제로 ‘숨기고 있는 사실’ 중의 대부분은 신문(訊問)하는 개인 또는 세력이
    “원하는 답변(答辯)”이라고 해야 맞는다. ‘고문’의 일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문’이라함은 신문(訊問)하는 자가 “원하는 답변”을 얻어 내려고
    신문(訊問) 당하는 자에게 유·무형의 강제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럴 때마다 “순순히 불기만 하면 목숨은 살려준다!” 거나,
    “용서해 준다!”는 회유(懷柔)가 뒤따른다.
      그리고는 그렇게 고문으로 ‘자백(自白)’을 얻으면,
    “그것 봐, 그게 사실이었잖아!”라고 엄숙하게 확인시킨 후에 죄를 덤터기 씌워 처형(處刑)한다.

  •   지난 2014년 4월 16일의 참담한 사고에 대해 온 국민이 분노·슬픔·연민·아쉬움 등등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그 배가 침몰하던 일곱 시간 동안 이 나라의 최고 자리인
    ‘북악(北岳) 산장’[이하 ‘산장’] 여(女) 세입자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산장’ 측의 해명이나 그 날의 정황에 비추어,
    “그래! 그랬을 거야. 어짜피 대통령이 잠수(潛水) 장비를 차려입고 직접 바닷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니잖는가...”라는 정도로 정리를 한 상태였다. 물론 진상(眞相) 규명과는 별개로
    끈질기게 그것을 물고 늘어진 세력과 무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른바 ‘탄핵 정국’이 열리면서 그 날의 ‘7시간’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탄핵’을 아주 효과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가면서 성사시키려는 처절하기까지 한 몸부림의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 더욱이 ‘산장’ 세입자가 혼자 사는 여자인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좋은 식재료(食材料)는 없었던 거다.
    도덕적 타락과 거의 무능력의 정신병자로 만들 수 있는 절대 껀수였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같은 질문을 해대면서
    정신적인 고통과 사고(思考)에 혼란을 주려는 건 분명 ‘고문’의 영역이라고 봐야 한다.
    그날의 ‘7시간’에 대한 추궁은 그런 식이다. 어떤 답을 원했는가?

  •   ‘찌라시가 된 언론’을 비롯하여 의문을 집요하게 제기하는 무리들은
    결코 직접 화법(話法)을 쓰지 않았다. 자신의 입이 더럽다(?)는 지탄, 또는
    이른바 ‘역풍’(逆風)이 일어날까 눈치를 보면서 계속 변죽만을 울려댔다.
    도덕군자의 근엄함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간간히 헛기침까지 해가면서,
    “순순히 스스로 불기만 하면 용서해 준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답변’은 뻔했다.

     “그날 젊은 놈팽이와 놀아났었습니다...” 또는
    “그 7시간 동안 성형 수술 마취 때문에 널부러져 있었어요...”

      이런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별별 짓을 다했다.
    고산병(高山病) 치료에도 쓰인다는 ‘비아그라’를 비롯하여 알아듣기도 힘든 각종 약품과
    주사(注射)들을 갖다 들이대면서 겁박을 했다. 여기에다가 그 무슨 ‘청문회’라는 걸 벌려놓고,
    별별 증인(證人)들을 출석시켜 그들에게까지 엄포와 회유로 무형(無形)의 ‘주리틀기’를 해대는
    난장판을 벌렸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뻥!” 그러나...

      이렇게 마무리 될 줄 알았으면 오산(誤算)이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랜 시일이 필요치
    않았다.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동네’에 있는 지엄한 ‘헌법기관’조차도 물고 늘어지기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산장’ 여(女) 세입자가 이미 밝혀진 내용을 재차 소상히 소명(疏明)하라 꾸짖고,
    이에 분(分) 단위로 상세한 행적을 보고한 연후에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칭얼거린단다.
      내심 ‘원하는 답변’이 들어있지 않아서 일까? 항간에서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이
    계속 떠들어대는 “그 7시간 해명이 그리 어려워보이지도 않는데도 뭐했는지를 아직도 떳떳이
    못 밝히고... ”와 같은 심정인가?

      아니, 그만큼 밝혔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 건지...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나는 절대 안 믿겠다”가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다.
    그러지 않으면서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떳떳하게 스스로 밝혀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는 건
    ‘고문’의 언사(言事)이며 위선(僞善)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작금에 드디어, 그 ‘7시간’에 대해 ‘원하는 정답’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체면(體面)께나 차리는, 즉 근엄하게 변죽을 울리며 하는 ‘고문’이 통하지 않을 성 싶자,
    아예 기정사실화(旣定事實化)하고 공개적으로 ‘자백’을 요구하기로 했나 보다.

  •   ‘곧, 바이!’(soon bye)라는 전시회에 걸린 ‘더러운 잠’이란 그림...
    갖다 붙이기도 잘 갖다 붙인다. 그 전시회는 ‘안대재’[안경잽이 대권 재수생]께서 공들여 구입한 ‘표창 한 자루’가 주도했다고. “예술”입네, “표현의 자유”네 떠들어대지만, 어짜피 치졸하기 그지없다는 게 중론이다.
      어찌 됐든 2년여 전의 그 ‘7시간’은 자신들이 원하는 행적으로 채워졌어야 한다고
    집요하게 ‘자백’을 강요하며 ‘고문’해 온 무리들의 솔직함이 묻어난 그림이라는 평이다.

      그 무리들? 꼭 지적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더 잘 안다.
    우선 광화문 광장의 이른바 범(汎)‘촛불 세력’을 위시해서 ‘촛불 민심’을 떠벌이는 ‘그당’,
    ‘쉰당’, ‘바른당’, ‘새(鳥)무리 일부, 거기에다가 “잘못 배워 처먹었거나, 눈치로 먹고사는”
    여럿 ‘보수 지식인’ 등등이다.
    아 참! 그 지엄(至嚴)하신 헌법기관의 재판관님은 포함시켜야 할까 말까...

      ‘촛불 세력’이야 환호 할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그 외의 무리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체면 상 대놓고 “이래도 자백을 안 해?”라고 외치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든가 화장실에 가서 “킥킥”거릴지도 모른다.
      ‘군사독재자의 딸’에게 마음껏 이런저런 ‘고문’을 할 수 있는 민주화된 이 나라에서는
    역시 자유가 넘치다 못해, ‘개나 도나’ 자유를 싸지르고 있다.

  •   그건 그렇다 치고, 한 편의 그림이 세상을 바꿀 것 같은 예감(豫感)이 확 온다.
    ‘안대재’ 구입 작품인 구식(舊式) 무기 ‘표창 한 자루’가 역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제대로 ‘구식’이라 그런지 적(敵)을 향해 날렸음에도 상전(上典) 목젖을 찌르려 달려드는 형국이다.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수군거림이 들린다.
      “그 ‘표창 한 자루’는 ‘친박’(親朴)을 넘어서 ‘진박’(眞朴), 그것도 골수라고 하데...”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