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영도다리 오가며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수' 던지는게 당대표 할 일인가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25일 오전 11시를 전후해 서울 여의도 당사에 도착, 최고위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25일 오전 11시를 전후해 서울 여의도 당사에 도착, 최고위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옥새 투쟁'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 파동이 벼랑의 벼랑 끝까지 몰린 시점에서 엉성한 타협안으로 극적 마무리됐다.

    25일 오전 11시 30분 무렵부터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시작된 긴급 최고위원회의는 4시간여 동안 이어지다가 마침내 결론을 냈다. 대구 동갑(무소속 류성걸 의원)·수성을(무소속 주호영 의원)·달성(무소속 이종진 의원) 3개 지역구는 공천이 이뤄진다. 이 지역구에는 각각 정종섭·이인선·추경호 후보가 출마한다.

    대구 동을(무소속 유승민 의원)·서울 은평을(무소속 이재오 의원)·송파을(새누리당 유일호 의원) 3개 지역구는 토론 끝에 공천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오후 6시까지가 후보 등록 마감 시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공천을 결정한 셈이다.

    문제가 된 6개 지역구 중 정확히 절반인 3개는 공천이 이뤄지고, 나머지 3개는 공천이 보류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친박(親朴) 최고위원들 사이의 엉성한 타협안이라 할 수 있다.

    외견상으로 봐도 그렇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더욱 개탄스럽다. 결국 '옥새'를 쥐고 있던 김무성 대표의 고집이 관철된 것이기 때문이다. 저 '높으신 곳'에 있는 분의 의중은 '배신의 정치'를 한 자를 찍어내라는 것이었는데, 죄없는 곁가지들만 희생당했을 뿐 정작 핵심 당사자는 '무투표 당선'이라는 꽃가마를 타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질 판이다.

    이 와중에 진작부터 새누리당의 정체성에 맞느냐는 논란의 대상이 됐던 이재오 의원까지 덤으로 구제받았다. 이재오 의원이 구제된 것은 이번 '김무성 대표 대 친박 최고위원들' 간의 대결 구도에서 쌍방이 내세운 논리 구조와는 완전히 모순되는 결정이라, 아무리 전쟁 중에 '유탄'이 아무 곳으로나 튄다지만 황당한 감을 감출 길이 없다.

    이번 '막장 공천' 사태에서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이나 당대표 등 그 어떤 '당권자'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향식 공천'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반면 친박 최고위원들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사람들의 공천"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재오 의원은 지난 2009년 1월 26일 백두산 정상에 올라 "이명박 만세"를 외칠 정도로, 한때 권력의 중추인 청와대에 과잉 충성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이재오 의원이 개헌론을 주장하자 개헌 진영의 진정성이 흐려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런 행적을 가지고 있다.

  •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최고위원회의 소집요구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최고위원회의 소집요구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상향식 공천을 주장한 김무성 대표가 친박 최고위원들과의 기싸움 끝에 이재오 의원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 자체가 자기모순의 극치라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외에도 6개 문제 지역구의 3개 공천~3개 무공천이라는 엉성한 타협안을 보면, 도대체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도출한 것인지 의심가는 대목이 하나둘이 아니다.

    대구 수성을의 주호영 의원은 계파에 관계없이 박근혜정부의 성공과 국정개혁을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사람이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을, 이재오 의원의 서울 은평을의 공천이 보류되는 동안 정작 주호영 의원의 대구 수성을은 공천이 이뤄지게 됐다. 이 어줍잖은 타협안은 대체 어떤 논리 구조에 근거를 가지고 이뤄진 것인가.

    주호영 의원은 박근혜정부 국정 운영의 돌발 변수였던 세월호 사태를 잘 수습했고, 국회 정보위원장으로서 핵심 쟁점법안인 테러방지법 통과에 앞장섰다. 총선을 앞두고 다들 공무원들의 표심이 떨어질까 두려워 피하던 자리였던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피하지 않고 솔선수범해서 떠맡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망국의 시발(始發)이라고까지 불리는 국회선진화법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성실히 법정 투쟁을 선도했다. 당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한 인물이다. 도대체 유승민·이재오 의원은 꽃가마 태워주고, 주호영 의원은 어려운 무소속 싸움의 길로 내모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어줍잖은 절충안이 도출되게 된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

    유승민 의원의 정치적 생사에는 현재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다. 이 틈을 타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 의원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옥새 투쟁'을 벌이고 절충안을 도출한 것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대구 동을 공천 여부만 중요하고 다른 5개 지역구는 관심 밖이다보니 이런 황당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까.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25일 오전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은 채 서울 여의도 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25일 오전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은 채 서울 여의도 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총선 이후 본격화될 차기 대권 경쟁과, 그 대권 가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핵심 정치 일정인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돌파하기 위해 정치적 제스처를 보인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아무리 내용을 뜯어봐도 진정으로 당이 가야 할 옳은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번 김무성 대표의 '결기 아닌 결기'는 결국 당도,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승부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자신의 대권 가도에 닥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길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를 걸었다.

    사실 유승민 의원의 당락에 큰 관심을 가지고나 있는지도 의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김무성 대표의 핵심 측근에 대한 공천은 이미 충분히 이뤄졌다. 4·13 총선이 치러진 뒤 6월쯤 소집될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대권 가도로 힘있게 견인할 세력들에게 미리 자신의 '결기'를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필요했고, 그것을 신중히, 아주 신중히 타이밍을 보다가 집행한 것에 불과하다.

    김무성 대표에게 허를 찔린 권부(權府)와 친박계가 이것을 더욱 강력하게 보복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향후 오히려 당은 더욱 막장의 다툼 속으로 빠져들 우려도 크다. 도저히 당을 위한 행보라고는 보아줄 수 없는 이유다.

    만약 정말로 당을 생각했다면 진작 나섰어야 맞다. 이틀에 불과한 후보 등록 기간이 시작되고 자신은 '옥새'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전국위원회를 소집할 시간도 없다. 완전히 이길 수밖에 없는 시점이 돼서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은, 자신이 정치를 배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 정신과도 상반된 것이다.

    '막장 공천' 파동의 와중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무소속 조해진 의원(새누리당 전 원내수석부대표)은 이날 종합편성채널 TV조선에 출연해 이 사태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조해진 의원은 "김무성 대표는 진작 투쟁을 했어야 국민의 지지도 받고 당대표의 리더십이나 위상도 섰을 것인데, 이미 그 시점이 다 지났다"며 "자기 것을 다 챙기고 나서 저항하는 것을 '몽니'라고 하는데, 이것은 몽니"라고 질타했다.

    나아가 "이미 (상황은) 다 끝난 게 아니냐"며 "김무성 대표가 외마디 소리를 질러봐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몇 자리 안 되고, 나머지 잘못된 수십 자리의 공천은 쏟아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는 시점"이라고 비판했다.

  •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25일 오전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을 향한 최고위원회의 소집 요구를 하기 위해 간담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25일 오전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을 향한 최고위원회의 소집 요구를 하기 위해 간담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본인이 본인 입으로 직접 본인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실은 조해진 의원의 컷오프 또한 대단히 잘못된 사례에 해당한다. 조해진 의원은 이인호 KBS 이사장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좌파 세력의 거센 공세에 시달릴 때, 미방위 여당 간사로서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으로 중무장하고 맞서 싸운 대표적인 인물이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비롯해 여러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그의 인식은 흠잡을 곳이 없는 정통 보수다. 서울법대에 재학할 때부터 주사파(주체사상파)의 학내 침식에 대항해 맞서 싸웠던 인물이고, 평생을 좌파·급진·운동권 세력에 맞서 세 딸이 사는 대한민국을 올곧게 지켜내는 것만 고민한 사람이다.

    '잃어버린 10년'이 노무현정권의 대못질로 15년, 20년으로 연장될 위기 속에서 정권을 탈환해 온 1등 공신이다. 원래의 지역구인 밀양·창녕은 물론 새로 합쳐진 함안·의령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정도로 지역구 관리도 잘해온 최고의 대의대표 중 한 명이다.

    이런 사람들이 아무런 죄 없이 우수수 잘려나갈 때, 그 때 나섰어야 할 김무성 대표는 대체 어디에 가 있다가 지금 영도다리를 오가면서 정치적 퍼포먼스에 열을 올리나.

    감히 혹평하자면 '실시간 검색어 정치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유승민 의원의 공천 문제는 비유하자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유승민'이 오르내리는 것과 같다. 실시간 검색어에 '유승민'이 오르내리니 아무런 내용도 없는 기사를 그에 맞춰 급조하려다 주술이 꼬이는 3류 매체 기자와 같은 모양새의 정치 행태를 보여줬다.

    정작 살렸어야 하는 사람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를 때는 손을 감히 내밀지 못하다가, 죽여야 할 자는 엉뚱하게 살렸다.

    '실시간 검색어' 유승민 의원조차 어찌보면 김무성 대표에게 활용당한 셈이다. 이 시점에서 묻고 싶다. 과연 유승민 의원은 김무성 대표에게 고마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