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24일, 독일 국회 초청 북한해외근로자 인권침해 증언 방문 차 베를린에 체류 중 북한대사관 앞을 찾았다. 유럽에 있는 북한공관 중 가장 큰 규모이나 경내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정적만이 고요했다. 정문 안에서 어떤 주부와 학생의 모습도 보였으나 “평양아주머니!” 하고 말을 묻는 나의 얼굴을 애써 피했다.    [사진 = 림일 기자]​
    ▲ 지난 24일, 독일 국회 초청 북한해외근로자 인권침해 증언 방문 차 베를린에 체류 중 북한대사관 앞을 찾았다. 유럽에 있는 북한공관 중 가장 큰 규모이나 경내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정적만이 고요했다. 정문 안에서 어떤 주부와 학생의 모습도 보였으나 “평양아주머니!” 하고 말을 묻는 나의 얼굴을 애써 피했다. [사진 = 림일 기자]​

    김정은 위원장! 오늘은 유럽의 중심 베를린에서 편지를 씁니다. 지난 9월 20일부터 독일 국회의 초청으로 현대판 노예근로자로 불리는 공화국 해외근로자들의 심각한 인권상황을 증언하려 여기에 체류 중입니다.

    올해 초 스위스 UN사무국에서 또 지난 4월에는 미국 국회에서 증언했듯이 20년 전 제가 쿠웨이트에서 겪었던 공화국 해외노동자들의 실태는 악몽과 고통 그 자체이죠. 하루 14시간의 강제노동, 한 달에 이틀 그것도 반나절의 휴식, 그렇게 5개월을 일하고도 임금 한 푼도 못 받았으니 말해 더 뭐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는 그런 끔찍한 일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되겠기에 국제사회가 그런 비정상의 현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용기를 내서 이곳 머나먼 독일에까지 와서 외칩니다.

    냉전시대 동부독일의 모습은 평양의 TV에도 자주 비쳐져 공화국 인민들에게는 친근한 나라로 인식되었지요. 그리고 1984년 당신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소련 및 구라파사회주의 나라들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베를린도 다녀갔답니다.

    지난 1990년 10월 3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였던 동부독일과 서부독일은 45년 분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세계가 박수를 보냈던 독일분단장벽 붕괴모습을 공화국 인민들과 저만 보지 못했지요.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독일통일의 상징 브란데 부르크 문 앞에 섰습니다.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광장에는 각국의 외국인들로 붐볐지요. 제가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 “오 필승 코리아!~” “오빤 강남스타일!~” 라고 하더군요. 다시 “노스 코리아” 라고 하니 입술만 삐죽 내밀고 어깨를 들썩이더군요.

    ‘문화의 힘’이 그렇게 큰 줄 새삼 느꼈습니다. 이는 공화국에서 ‘사상의 힘’이겠지요. 2천만 인민에게 쌀과 옷은 둘째 치고 오로지 사상교육만 풍부히 시켰으니 세계 유일무이 3대 정치독재정권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사실 인민에게는 사회주의고 자본주의고 무의미합니다. 지금처럼 수령의 말만 듣고 사는 사회주의는 인민이 굶어죽는 제도이고 자기 벌은 만큼 먹고 입고 쓰고 사는 자본주의 체제만이 인민이 살 수 있는 분명한 제도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인민들이 “지금의 노동당체제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못하는 이유는 당신의 폭정권력이 너무도 무섭기 때문이죠. 자기 고모부도 처형하는 포악무도하고 잔인한 지도자이니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사는 인민들입니다.

    참 어제는 베를린 시내에 있는 공화국대사관 앞을 찾았습니다. 내 고향 평양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서였죠. 굳게 닫힌 정문 안의 경내는 정적이 감돌았고 홍보물 게시판에는 당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과거 사진만 붙어 있더군요.

    경내 국기게양대에 펄럭이는 공화국기는 내가 평양에서 보았던 그 깃발이 분명했지요. 세상에 으뜸가는 사회주의나라이고 조선민족이라는 공화국이 세계에서는 문을 꼭꼭 닫아 매고 얼굴도 안 보이는 모습은 참 씁쓸해 보였습니다.


    2015년 9월 25일 - 독일 베를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