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비난한 성균관을 규탄한다

    조선을 망하게 만든 유림의 후예들이여, 염치를 알라!

    강철화     
        
    유림(儒林)집단인 성균관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이조 500년 허송세월”운운한 데 대해
    “조선이 망한 것이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문명국가를 침략한 것”이라면서 “나라의 존엄과 선열을 모독한 문창극은 역사와 민족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하고,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명색이 선비, 유림의 후예라는 사람들의 역사인식이 너무나
    무식하다!천박하다! 비겁하다! 염치없다!

  • 성균관 성명서는 “조선이 망한 것이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문명국가를 침략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그들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빈곤한 지를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고 싶지 않은 얘기지만 조선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침략으로 망한 게 아니다.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망한 것이다.
    일제가 쳐들어오기 전에 이미 조선은 국가로서 스스로 존속할 능력을 잃고 있었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침략해 들어왔을 때 조선에는 그들을 막을 군대가 없었다.
    전국의 모든 병력을 다 긁어모아도 1만 명 안팎이었다.
    왜 그 지경이었나? 군대를 키우고 먹일 경제력이 없어서였다.

    조선 말기에 어쩌다 그랬던 게 아니라 조선조 500년 내내 그랬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전에 율곡 이이가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200년 된 나라에 1년치 양식이 없습니다”
    라고 울부짖었을까?

    조선이 그렇게 가난하게 된 것은 성리학이 기본적으로 상공업을 말업(末業)이라고 천시하고,
    시장을 억압하는 국가사회주의적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조선을 그 모양으로 만든 것은 조선조 500년 동안 온갖 기득권을 누리면서도,
    국방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 같은 기본적 의무 이행조차 거부했던 양반 사대부 계층이었다.
    누가 양반보고 군대 가라고 하거나 세금 좀 내라고 하면
    “국기(國基)를 문란케 하는 행위”라며 난리를 쳤다.

    그들이 회피한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전가됐다.
    양반들은 갓난아기나 노인, 심지어 죽은 이에게까지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전가하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았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곳곳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좌파에서 ‘갑오농민전쟁’으로 추켜올리는 동학란은 그 민란의 집대성에 다름 아니었다.

    <서경>을 보면, 학정(虐政)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이 날이 언제 망할까? 너와 함께 망하고 싶구나”라고 세상을 저주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당시 조선이 바로 그 짝이었다.

    하지만 나라가 그 지경이 됐어도 양반들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는 눈을 감고,
    당쟁이다, 세도정치다 하면서, 헛짓거리만 했다.

    동학란 때 청군을 불러들여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그 잘난 양반이었다.

    그 양반들의 최정점에 있던 사람이 바로 고종이었다.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할 임금이면서도 그는 스스로 노론(老論)임을 자처하면서,
    다른 당파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배척했다.

    이상이 성균관이 성명서에서 ‘500년 모범적인 문민국가’ ‘문명국가’라고 칭송한 나라
    조선의 적나라한 실체였다.
    그리고 성균관은 조선을 가난하고 허약한 나라로 만든 양반들,
    나라가 망하는 날 마땅히 혀를 깨물고 죽었어야 할 무리들의 소굴이었다.

    성균관 성명서는 “선비들이 경연(經筵)에서 임금을 가르치고, 사관이 임금의 간섭을 배제하여
    실록을 편찬하고, 임금이 사림의 공론(公論)을 경청했던 나라가 그 어디에 있었던가”라고
    조선을 찬양한다.

    그래,조선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였다.
    경연에서 임금을 가르치고, 임금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기들 입맛대로 역사를 쓰고,
    ‘공론’이라는 미명 아래 임금까지 윽박질러가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강요할 수 있었던 선비라는 자들에게는 말이다.

     더 역겨운 것은 나라를 그렇게 망쳐놓고도, 정작 나라가 망할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殉國)하거나 항일투쟁에 나선 유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임금이었던 이희(고종)부터가 일본 천황의 번왕(藩王)으로나마
    종묘에 제사를 계속 지낼 수 있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매국노 이완용은 왕가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한 충신(忠臣)으로 자처했고,
    이희도 그렇게 생각해서 죽는 날까지 이완용을 아꼈다.

    백성들은 고종이 이완용을 죽도록 미워했던 걸로 생각했지만,
    그건 뭘 모르는 ‘어린 백성’의 행복한 착각이었다.

    양반의 최정점에 있었던 임금이 그 모양 그 꼴이었으니,
    대부분의 유림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일제(日帝)에 순응했다.

    조선의 성균관은 일제시대에는 경학원(經學院)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행세 꽤나 한다는 유림들은 천황의 은사금을 감사하며 받았고,
    경학원 대제학 자리를 선망(羨望)했다.

     성균관 성명서에서 가장 유치하고 구역질 나는 대목은
    “조선이 망한 것이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문명국가를 침략한 것”이라면서 “강도가 집안에 쳐들어오면 먼저 강도의 야만성을 규탄해야지, 집안사람들이 모질지 못했다면서 자책부터 하는 것 아니냐”고 문창극 후보자를 비난한 부분이다.

    “조선이 망한 것이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문명국가를 침략한 것”이라고?
    놀고 있네.
    명색이 유림이라는 자들이 <맹자>도 안 읽었나?

    <맹자> 에 이르기를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안도 반드시 스스로 망친 후에 남이 망치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야 남이 공격한다.
    <시경>의 '태갑'에서 '하늘이 만든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조선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일제가 쳐들어오기 전에 스스로 망쳤고,
    남이 공격하기 전에 스스로 공격했다.

    “강도가 집안에 쳐들어오면 먼저 강도의 야만성을 규탄해야지, 집안사람들이 모질지 못했다면서 자책부터 하는 것 아니냐?”고?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자물쇠가 망가졌어도 고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던 자들,
    식구들에게 피죽도 제대로 못 먹여서 강도가 쳐들어왔을 때 맞서 싸우기는커녕
    오늘 낼 하면서 누워 있게 만든 게 누군데 그런 소릴 하나?

    이런 소릴 하면 ‘식민사학’운운하며 친일파로 모는 것으로 피해가려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조선이 망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몇 안 되는 분 중 하나였던
    황현의 <매천야록>을 한번 보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망치고, 스스로 공격한 참담한 기록의 연속이다.

    “나라의 존엄과 선열을 모독한 문창극은 역사와 민족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하라”고 했던
    성균관의 논리대로라면, 황현도 나라의 존엄과 선열을 모독한 것이 되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라의 존엄과 선열을 모독’한 가장 큰 죄인은
    조선조 500년 동안 나라의 권력과 재부(財富)를 독점했으면서도 결국은
    나라를 망국으로 몰아넣은 견유(犬儒)들이다.

    그들이 조선조 500년을 문창극 후보자 말처럼 '허송세월'하게 만들었다.
    유림들이 만든 그 폐허 위에 이승만이 근대국민국가를 세웠고,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강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그런데 100년 전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던 견유의 후예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조선조 500년 역사에 대한 성찰 없이 좌파 놈팽이들과 함께 주먹 부르쥐고
    문창극 규탄 대열에 이름을 얹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게는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을 키우고 먹여 준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했을 때에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성균관이 이제 와서
    '문창극 죽이기'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은 꼴불견이다.
     
    조선왕조가 망할 때 다 함께 혀를 깨물고 죽었어야 했건만
    비겁하게 살아남았던 견유의 후예들이여,
    염치를 알면 그 입 다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