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一流국가는 바다가 만든다

    그리스-로마, 베니스, 이슬람,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이야기.

    趙甲濟   

  *조갑제의 현대사 강좌에서 발췌. 
   
      선진국 사람들은 조용하다고 했는데, 또 하나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것이, 선진국 사람들은 虛禮虛飾(허례허식)이 적습니다. 생활이 심플(simple)합니다. 복장에서도 나타나죠. 세계에서 넥타이를 가장 많이 매는 나라가 일본, 한국입니다. 유럽에서는 점점 넥타이를 안 매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에서는 왕족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넥타이를 안 매는 정도까지 가 있습니다. 가끔 백악관에서 무슨 공연을 한다고 할 때 대통령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보신 적 있습니까? 다른 청중과 똑 같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히 근사한 자리를 맞춰서 앉히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 중의 하나죠. 의자의 크기를 가지고 인간을 차별하는 나라는 절대 一流(일류) 국가가 될 수 없죠. 의자는 의자일 뿐이죠. 그렇다고 해서 上下(상하) 구분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용상의 상하 구분은 선진국이 더 엄격합니다. 
   
   한국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제일 골치 아픈 게 그 의자 배치 아닙니까? 의자의 순서를 놓고 구청장이 높으냐, 경찰청장이 높으냐 하면서 싸우고 자신의 의자를 잘못 놓았다고 뺨 맞는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序列(서열)의식, 권위의식이 너무 강하면 一流국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회에서 내빈 소개 순서가 한 30분 정도 계속되는 걸 봤어요. 가만히 세어 보니까 반 이상을 소개하더라고요. 손님 소개가 아니고 자기들을 소개하는 거죠. 內賓(내빈) 소개에 자기 이름이 빠지면 얼마나 원망을 하는지 아십니까? 내빈의 직함이 굉장해요. 반 이상이 회장, 위원장, 총재에요. 한국 사회에서 직함이 점점 더 권위적으로 변해요. 민주화는 脫(탈)권위주의인데 말입니다. 
   
   바다와 친한 곳에서 一流국가가 만들어집니다. 바다와 一流국가는 친하고, 내륙과 대륙이라는 말은 二流 국가와 친합니다. 一流國家群(일류국가군)을 중심한 세계사 속에서 죽 훑어보면, 그리스·로마가 맨 먼저 一流국가였죠. 그때 만들어진 직접 민주주의, 원로원, 호민관, 변호사 제도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는 지중해를 內海(내해)로 하는, 바다와 친한 나라였어요. 이탈리아도 반도고, 그리스도 반도였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一流국가가 唐(당)나라죠. 당나라는 북방민족하고 漢族(한족)하고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가 합쳐져서 唐이라는 세계제국을 만들었는데 황제들은 北方(북방)계통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은 중국의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국제적이고 개방적이며 해양적이었습니다. 唐을 해전에서 무찌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도 해양강국이었습니다. 
   
   8~10세기에는 이슬람 帝國(제국)이 一流국가였습니다. 특히 이슬람의 항해 기술이 대단하여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았습니다. 그 유명한 아라비아 상인들이 통일신라와 무역도 하고 신라에 와서 살기도 했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신라가 세계에 소개되었죠. ‘신라’라는 발음 그대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베니스는 중세 유럽의 해양강국이었습니다. 1000년 동안 한 번도 정변이 없었고 수도가 점령되지 않았던 영원한 一流국가였습니다. 13세기의 몽골제국도 一流국가였죠. 이 나라는 육상중심 국가였습니다. 15, 16세기에는 이스탄불을 무대로 했던 오스만 투르크가 전성기를 맞습니다. 이 나라는 육상국가였는데 해군력을 길러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쳐들어가려다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과 베니스 연합함대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1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서양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포르투갈이 제일 먼저 해양을 개척했습니다. 
   
   콜럼부스는 원래 해양 도시국가인 제노바 출신의 선원이었죠. 이탈리아에서 해군이 강했던 나라가 베니스와 제노바, 피사, 아말피였어요. 그는 포르투갈에서 항해 기술을 익히고,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죠. 15세기에 포르투갈의 엔리케라는 왕자가 항해학교를 만들어서 선원들을 길러냈습니다. 포르투갈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남미로 진출해서 자기 몸보다 몇십 배나 큰 브라질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동양으로 와서 鳥銃(조총)을 일본에 전해준 것 아닙니까. 일본은 그 조총을 개량하여 戰國(전국)시대엔 유럽 전체보다 많은 총을 만들었습니다. 이 무렵 포르투갈 상인들이 조선에 조총을 전해주었으나 전쟁에 무지한 조선인들은 조총이 활보다 못하다 해서 외면해버렸어요. 그래서 임진왜란 때 우리가 당한 거죠. 
   
   16세기는 스페인의 세기입니다. 스페인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바로 그 해에 800년간 스페인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잔존 세력을 몰아냅니다. 서기 1492년 스페인 남쪽에 있던 이슬람의 최후 거점 그라나다를 점령하여 800여년에 걸친 기독교의 수복운동이 끝났습니다. 800년 동안 스페인에는 이슬람 세력이 남아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가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오랫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다가 그 예쁜 알함브라 궁전을 남겨놓고 아프리카로 물러가면서 통일이 되었습니다. 한참 싸우다가 통일이 되면 에너지가 폭발하여 一流 국가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그런 피크 타임을 맞기 전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한 다음에 시너지 효과를 보면서 아마 一流국가로 가는 큰 걸음을 내딛고, 전성기를 맞을 것 같아요. 
   
   16세기에 스페인은 통일을 한 다음에 國力(국력)이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南美(남미), 北美(북미)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죠. 이 개척지에서 銀(은)을 발굴, 본국으로 가져와서 부자가 되니 근사한 건물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을 구경하면 16, 17세기에 만든 대단한 건물이 지금도 그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세기였습니다. 이 나라를 미국에서는 보통 저지대 국가(Low country)라고 불렀습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붙어 있어서 우리는 베네룩스라고 하죠. 불란서에 가면 포도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이 있습니다. 부르고뉴란 公國(공국)이 있었어요. 公國이 하도 힘이 세어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다 점령하고, 나중에 北上해서 베네룩스를 지배한 적이 있었어요. 포도주의 고향인 부르고뉴 지방의 도시, 예컨대 디종, 본느의 옛 건축물은 네덜란드風(풍)입니다. 이때는 왕들이 결혼을 하면 나라를 선물로 주고 받던 시절입니다. 이 네덜란드 지역 통치권이 나중에 스페인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그 때가 종교갈등이 한창 때인데, 네덜란드에 新敎(신교)가 들어왔어요. 당시 스페인의 왕이 누구냐면 펠리페 2세, 영어로는 필립 2세라는 사람인데 ‘나는 가톨릭의 수호자다’ 해서 종교 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교도를 잡아들이고, 종교재판을 열어서 이단으로 몰아 불태워 죽이고 했습니다. 이때 네덜란드에 신교가 들어오니까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한 80년 동안 싸웠는데, 독립전쟁을 끝까지 끌고간 사람들이 지금의 네덜란드를 만들었고 중간에 포기하고 ‘우리는 독립 안 해도 좋다’고 했던 사람들이 벨기에로 남았습니다. 네덜란드는 끝까지 싸워 17세기 초에 독립을 쟁취한 다음에 힘이 넘쳐났어요. 그래서 바다로 나갔습니다. 
   
   17세기 세계에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안 간 데가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 17세기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설치고 다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네덜란드 선원의 유령이 모는 배가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전설도 생기고 말이죠. 이들이 조선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습니까? 하멜(Hendrik Hamel)이라는 사람이 탄 배가 자카르타를 출발하여 대만을 거쳐서 나가사키(長崎)로 가는 길에 제주도에서 破船(파선)을 해서 30여명이 붙잡힌 거죠. 그 중에 8명이 탈출하여 일본 나가사키로 갔습니다. 하멜이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3년 전에 제가 하멜의 고향에 갔었습니다. 하멜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지역이 항구예요. 그쪽이 당진하고 교류가 있습니다. 하멜 표류기를 한 번씩 읽어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저는 기행문을 많이 읽는데, 참 잘 읽힙니다. 특히 한국을 기행하고 쓴 글을 보면 우리가 못 보던 것을 봐요.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좋은 책 세 권이 ‘하멜 표류기’, 그 다음에 저번에 말씀드렸던 ‘入唐求法巡禮行記(입당구법순례행기)’란 책으로 일본사람이 중국을 기행하고 쓴 것인데 거기에 신라 사람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shop)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이란 책이 있어요. 이건 19세기의 한국을 기행하고 쓴 책입니다. 
   
   하멜 표류기를 읽어보면 이분이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하멜이 감탄한 것이 교육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50세가 되어도 과거 시험을 친다, 과거시험에 평생을 건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조금은 못마땅한 눈으로 써놓았어요. 자기들은 배를 잘 몰고 총을 잘 쏘는 것을 최고로 아는데, 이 사람들은 매일 책만 붙잡고 비생산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고문도 많이 하고, 많이 뜯어가고 하는 관리들 비판도 많이 써놓았어요. 
   
   이 네덜란드 사람들이 일본 나가사키로 갔을 때 幕府(막부) 사람들이 취조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멜을 조사한 기록이 있어요. 형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듯이 일문일답으로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가사키 사람들이 하멜을 통해서 조선의 사정을 알려고 책 한 권 분량의 신문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게 바로 한국과 일본의 차이죠. 외국사람이 나타나면 우리는 좀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불러다가 구경이나 하고 구박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빼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통해서 鳥銃(조총)도 만들고 합니다. 사람을 실용적으로 대하죠. 人材(인재)로 보는 것입니다. 조선은 인재를 죽였고 일본은 인재를 우대했어요.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