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원제: 사로잡힌 자, 사로잡은 자 

    모차르트형 천재와 베토벤형 천재

    최성재  

    <원제: 사로잡힌 자, 사로잡은 자>
    피터 키비 지음, 이화신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 2010년, 431 페이지

    천재가 남발되고 있다. 암기를 잘해도 천재, 노래를 잘 불러도 천재, 악기를 잘 연주해도 천재, 달리기를 잘해도 천재, 얼음을 잘 지쳐도 천재, 수영을 잘해도 천재, 공을 잘 차도 천재, 컴퓨터를 잘해도 천재, 앱을 잘 개발해도 천재, 돈을 잘 벌어도 천재 등등. 세상에 온통 천재가 넘쳐난다. 어느 분야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 아낌없이 천재 칭호를 붙여 준다. 과히 천재 인플레이션이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서양에선 어땠을까.

    우선 동양은 어땠을까. <손자병법>의 손무나 <(소설) 삼국지>의 제갈량을 군사 천재라고 불렀지만, 고대 중국을 이상화했던 한자 문화권의 동양에선 주나라에서 춘추시대까지 산만하게 전해져 오던 유교를 깔끔하게 정리한 공자를 유일한 천재로 여겼다. 생이지지(生而知之) 곧 ‘타고나면서 알고 있었던 분’은 오로지 공자에게만 해당되었던 것이다.

     서양에선 오랫동안, 그러니까 약 2천년 동안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유일한 천재로 여겨졌다고, 이 책의 저자 피터 키비(Peter Kivy)는 밝힌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천재는 작곡가 헨델, 이어서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서 다시 모차르트, 다시 베토벤으로 진자 운동한다. 그 뒤에는 시대적 조류와 뒷받침하는 철학이 있었다. 헨델은 생전에 줄곧 천재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후에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모차르트가 나오고 뒤이어 헨델과 비슷한 유형의 악성 베토벤이 나오면서 천재의 두 전형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으로 굳어진다.

     서양 최초의 천재론은 플라톤의 대화편 <이온>에 등장한다. 이온은 호메로스의 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만 정통하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답한다.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기 때문이라고. 우리말로 하면 접신(接神)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기술(테크네 techne, art)이 아니라 ‘신에게서 받은 감화력(divine influence)'이 창작활동의 원천이다. 신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그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삼는다.”

    ‘사로잡힌 자(the possessed)'의 이론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를 플라톤적 천재라고도 한다.

    그로부터 약 500년 후 서기 1세기에 작자 미상의 짧은 논문 <숭고함에 대하여>에서 플라톤적 천재에 의문을 표한다. 소논문의 저자는 롱기누스(Longinus)라고 잘못 알려졌는데, 편의상 저자는 롱기누스로 통일한다. 영어 속담에 ‘호머(호메로스)도 존다.(Even Homer nods.)';;란 말이 있는데, 저 위대한 호메로스조차 졸다가 쓴 것인지 아주 평범한 시구가 있다는 뜻이다. 롱기누스의 회의론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2부작 중 <오디세이>에 대해 롱기누스는 회의적이었다. 평범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롱기누스는 호메로스가 기력이 떨어진 노년에 썼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뮤즈 여신이 호메로스의 입을 빌어 말한 것이라면 나이와는 무관하여야 한다. 신으로부터 받는 영감(inspiration)보다는 인간의 타고난 재능(talent) 쪽으로 진자가 기운다. 재능은 재능이되 필요하면 범속한 규칙을 깨뜨리고 숭고함(sublime)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로잡은 자(the possessor)'의 이론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를 롱기누스적 천재라고도 한다.

    “가장 뛰어난 자질들은 완전무결함이 가장 적은 법이다. 최고의 부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글에도 반드시 뭔가 결여된 것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껑충 뛰어 르네상스를 지나 계몽주의 시대가 열린다. 1711년 작곡가 헨델(1685~1759)이 영국에서 처음으로 크게 성공한 그 해에   공교롭게   미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요셉 애디슨(Joseph Addison)이 헨델에 꼭 알맞은 천재론을 발표한다. 롱기누스적 천재론은 11개의 논문으로 체계화되고 그 후 영국은 50년 동안 ‘숭고한’ 천재 헨델에 열광한다. 타고난 재능을 어릴 때부터 절차탁마하고 기존의 음악 규칙을 때로 과감히 어기고 숭고함에 도달한 천재 헨델에 열광한다.

    도무지 노력할 필요가 없는, 누구나 인정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후에 독일이 자랑하는 천재 괴테가 음악 천재로 유일하게 인정한 신동이 등장하면서 헨델에게 기울었던 진자는 급격히 모차르트(1756~1791)로 기운다. 괴테는 천재의 재능은 자연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들의 재능은 자연에 속하며 그 위대함은 자연에 내재되어 있다.”

    모차르트형 천재에 대한 철학적 설명은 쇼펜하우어가 완성한다.

    ‘애 어른, 어른 어린이, 영원한 어린이, 현실을 뛰어넘는(그래서 현실 생활에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처럼 무능력한) 발군의 관조 능력’ 등으로 쇼펜하우어는 플라톤적 천재에 대해 마침표를 찍는다. 그 사이 재능의 원천은 고대인이 누구나 믿던 신에서 근대인의 무신론에 바탕을 둔 자연으로 옮겨간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해서는 과학계도 비상한 관심을 가져 1769년 영국 왕립학회에 과학적 보고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여덟 살도 채 되지 않은, 키가 매우 작은 어린 소년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이없는 일로 여겨질 줄 압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성실한 증언을 담아 보고서를 올린다면, 최소한 왕립학회 심의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가차 없이 퇴짜를 맞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망 있는 학회에 전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역사상 가장 일찍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꽃피운 예가 담겨 있는 이 보고서는 학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베토벤(1770~1827)의 차례다.
    헨델의 숭고함에서 모차르트의 아름다움으로 갔다가 다시 베토벤의 숭고함으로 넘어간다. 천재의 원천은 신에서 자연으로, 마침내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간다. 베토벤은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귀족이나 왕족의 취향 또는 교회의 가치 대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최초의 프로 음악가다. 모차르트보다 수명이 22년 길었으나 작품 수는 4분의 1도 안 된다. 그러나 창의성 면에서는 베토벤이 모차르트보다 앞선다. 베토벤은 중기 무렵부터 기존의 음악 형식을 과감히 깨뜨린다. 대표적인 것이 <운명> 교향곡과 <합창> 교향곡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C단조에서 3악장과 4악장을 쉬지 않고 바로 연주하도록 했고, D단조에서는 교향곡에서는 꿈에도 생각 못하던 ‘목소리 악기’를 집어넣어 버렸다. 사로잡은 자 베토벤을, 스스로 신이 되었던 베토벤을, 기존의 규칙을 파괴하고 새 규칙을 제정한 베토벤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다음의 두 마디다.

    “자네는 실수를 범했지만(commit), 나는 실수를 허용했네(permit).”

    “이제 내가 그것을 허용하노라.(And so I allow them!)”

     칸트는 베토벤에 매료되었다.
    <판단력 비판>에서 그는 천재의 4가지 특성을 얘기한다.
     독창성, 전범성(典範性), 과학적 설명 불가성, 배타성! 여기서 전범성이 칸트의 가장 뛰어난 통찰로서 그것은 옛 규칙을 파괴하고 후세대가 따를 새 규칙을 제정하는 것이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으로서 낭만주의에 여명을 비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배타성은 천재가 예술에만 한정된다는 주장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칸트에 의해 베토벤은 모차르트와는 다른 또 다른 유형의 천재임이 철학적으로 명확해진다.

    모차르트형 천재와 베토벤형 천재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한쪽이 더 각광을 받기도 하고 서로 융합되기도 한다. 20세기에는 상대주의가 넘쳐나면서 구조주의의 이름으로 천재를 해체하려는,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득세한 적도 있다. 또한 천재가 모든 분야로 확대되기도 했다. 여성주의자들은 천재론 자체를 남성우월주의로 폄하하기도 했다.

    재능과 노력은 모차르트형 천재에게조차 필수불가결하다. 모차르트의 초고에 보면, 그도 여러 번 고쳐 쓴 것이 발견된다. 천재를 신으로 우상화할 필요도 없지만, 미치광이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천재의 인간적 약점은 너그러이 보아 넘기고, 그들이 더 큰 성취를 이루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어떤 분야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거나 두루 혜택을 주면서, 천재 자신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내 편’이면 인간말자도 천재로 떠받들고(히틀러급 김일성과 스탈린급 김정일과 차우셰스쿠급 김정은은 북한에서 생전에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한 불세출의 천재로 떠받들림), ‘내 편’이 아니면 아무리 천재라도 사이코패스의 눈을 반짝이며 실컷 이용만 하고 걷어차거나 작심하고 헐뜯기에 여념 없는 고약한 풍토가 있다. 천재의 재능이 꽃피기가 매우 힘든 나라이다. IQ 210의 천재도 한국에서는 단지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리다 만다. 그 재능을 꽃 피우고 열매 맺어 개인적으로도 행복하고 사회와 나라도 여러모로 덕을 보기는 무척 어렵다. 그나마 예체능 쪽에서는 천재에게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에 버금가는 천재는 아직 한 명도 없었지만, 아마 한국에서 태어나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번역서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

    1. p.249 ‘현악4중주 18번 C단조’는 ‘현악4중주 작품18 C단조’가 맞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는 16번이 마지막 번호다.     원문에는 ‘초기 바이올린 4중주의 하나인 C단조(one of his earlier violin quarters in C minor’로 되어 있는데, 번역자가 불편한 친절을 베풀었다. 베토벤의 작품18은 현악4중주 6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2. p.262 ‘베토벤의 현악4중주 가운데 하나(제18번 4악장)’은 ‘베토벤의 현악4중주  가운데  하나(제4번 작품18)’이  맞다.      원문에는  ‘현악4중주의 나중  것  중 하나 제4번 작품18(one of the latter's string quarters(OP.18 NO.4)'인데, 이건 원문에도 잘못이 있다. ‘latter's’를 ‘earlier’로 바꿔야 한다. 작품 18의 6곡 중 앞의 3작품과 뒤의 3작품은 작곡연대가 크게 둘로 나눠지고 4번은 그 중에서 가장 나중에 작곡되었다는 게 정설인데, 아마 저자는 이걸 염두에 두고 쓰다가 문맥에 닿지 않는 ‘latter's'를 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