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시티=연합뉴스) 미스 베네수엘라 출신인 젊은 여배우의 죽음에 베네수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2004년 미스 베네수엘라에 뽑힌 뒤 드라마 배우로 활약하던 모니카 스페아르(29)가 지난 6일 밤(현지시간) 전 남편과 함께 강도의 총에 맞아 숨졌다.

    세계 최고의 살인범죄율로 악명높은 베네수엘라에서 안타까운 희생이 또 일어나자 대통령이 치안회의를 긴급 소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8일 범죄 발생률이 높은 곳의 시·도지사들을 불러 범죄대책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이 보도했다.

    이번 회의는 애초 이달 말에 예정됐으나 이번 사건 때문에 앞당겼다.

    영화, 공연, 텔레비전 등 연예업 종사자들은 수도 카라카스에서 길거리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었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다수의 해외 언론이 이번 사건을 관심 있게 보도했다고 엘우니베르살은 전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스페아르 일행은 다섯 살 난 딸과 함께 베네수엘라 서북부 카라보보주(州)의 푸에르토 카베요 항구 인근 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나타난 뾰족한 장애물에 타이어가 펑크나 차를 세웠다가 변을 당했다.

    어디선가 재빨리 도착한 견인차 2대가 승용차를 옮기던 중 무장괴한 5명이 나타나자 견인차 기사들은 달아났고 스페아르 가족은 승용차 안으로 피신해 문을 잠갔다.

    괴한들은 공포에 질린 이들을 향해 총기를 무차별 난사했다.

    스페아르와 전 남편 헨리 토머스 베리(39)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딸은 오른쪽 다리를 다쳤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져 친척집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마두로는 사건 직후 "이건 학살이다"며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범죄를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야간에 한적한 도로에 장애물을 설치해 차를 세운뒤 금품을 강탈하는 강도들의 수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두로는 1980년대 후반 자신의 가족 중 한 명도 비슷한 장소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구엘 로드리게스 내무장관은 용의자 5명을 검거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스페아르 일행이 견인차를 직접 불렀는지, 견인차 기사들이 괴한들과 공모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스페아르는 여행업에 종사하는 베리와 이혼했으나 딸을 위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동료는 전했다.

    베리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베네수엘라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아르는 미스 베네수엘라에 뽑힌 다음해 태국에서 개최된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최종 5명의 후보에 올랐다.

    이후 배우로 전향한 스페아르는 미국 마이애미에 본사를 둔 스페인어 방송 '텔레문도'의 드라마 '금지된 열정'과 '야생화' 등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페인어 방송매체인 텔레문도는 스페아르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내보냈다.

    스페아르의 동료는 충격과 비통함을 감출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마이애미에 사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여배우 가비 에스피노는 텔레문도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우리나라의 하루하루 삶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베네수엘라가 두려워 떠났다. 그런 일이 모니카에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을 사랑하지만 다시는 발을 들여놓기가 싫어졌다"고 덧붙였다.

    무장 강도가 총기를 발사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들은 심지어 외교관이나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을 납치해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를 일삼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야당 의원인 레오폴도 로페스는 "정치 부패와 불법 무기 거래와 결탁한 마두로 정부가 이번 사건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집권기간 베네수엘라에서 살인 등의 강력 범죄는 계속 늘어났다.

    마두로는 작년 취임 후 범죄 척결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걸었으나 세계 최고의 인플레이션율 등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외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