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신년사로 ‘개그’ 하다

    김승근 독립신문 기자


    새해 첫날 북한 김정은의 입에서 ‘조국통일’이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통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고 떠들었고 박수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피식’
    나는 어이가 없어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남한 정부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일체 빠져 있었다.
    5.24조치로 궁지에 몰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쥐새끼 무리라느니,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느니 떠들었고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막말했던 김정은이다.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해 동족을 사상케 한 자가 갑자기 ‘조국통일’을 말한다?

    “지나온 북남관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동족대결로 초래될 것은 전쟁뿐입니다.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동족대결정책을 버리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길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의 발언이다.
    악수하다 말고 뒷통수에 별안간 비수를 꽂더니 우리가 다투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는 왜 갑자기 “통일을 이룩하는 데 중요한 문제는 북과 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돌발적인 이번 행보는 사실 개그 꽁트를 보는 것만 같다.

    대선을 앞두고 햇볕정책을 펼치는 진보정당을 무작정 밀더니 막상 안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정당이 재집권을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점잖을 빼고 있다.

    다시는 보지도 않을 것처럼 쏘아대며 욕설하던 이가 정색을 하더니 남북관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순식간에 웃고 있는 것이다.

    고집을 부려 다 팽개치고 미사일은 일단 쐈는데, 정작 굶어죽기 일보 직전 아닌가! 김정은은 지금 징징대고 있는 거다. 윽박질러 보니 안 통하는 게 이명박 정부였고, 돌아선 게 국제사회다. 순식간에 태도를 고치고 지키지 못할 미래를 약속하는 건 북한의 대내외적 상황을 대변해준다.

    북한으로선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거나, 혹은 핵무기 개발을 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사회를 돌이키고, 굶주리는 주민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리와의 관계개선은 필연적인 것이다.

    김정은이 마이크 앞에서서 19년만에 육성 신년사를 하며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고 통일을 앞당긴다”고 밝힌 이유다.

    그뿐이랴. 김정은은 인민생활의 안정향상을 말하는가 하면 경제 건설의 성과는 인민생활에서 나타나야 한다면서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강조했다.

    재밌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을 가로막고 최악의 상황으로 이끈 게 누군가. 김씨 3대가 선택하고 행하고, 결과까지 만들어 냈다.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고개만 저쪽으로 돌려 다 잊어버리고 걱정하는 척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 굶주리는 주민들을 외면한 채 모든 선택에서 주민들을 배신하고 있는 김정은이 ‘인민’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위선적인가 말이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스스로 ‘우주 정복’을 발언했다. 얼마전 쏘아보낸 광명성3호를 말하는 거다. 이런 표현까지 쓴 것을 보면 앞으로도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런 북한을 우리가 존중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배려는 김씨 3대의 세습을 연장시켜 줄 뿐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의미는 하나도 없다. 그 의미없는 미사일을 쏘아댄 탓에 북한 주민들은 올 겨울이 더 춥고 배고파지지 않았나.

    세계 각국의 식량 원조를 받고도 주민들이 영양실조를 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3년치 식량에 해당하는 로켓을 우주로 쏘아 보냈으니 당연한 결과다. 우호국과의 친선협조를 외친 부분은 어떤가. 더 이상 국제사회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우주 정복’을 실현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주민들은 더 굶주리게 됐고, 전세계를 적으로 돌아 세웠다.

    그래놓고 신년사를 통해 부강조국건설을 다 이룬 것처럼 자화자찬했다. 각급 당과 근로단체들에 자신의 육성 신년사를 보고 소감문을 제출하라는 지시를 했단다. 코메디다. 과연 공산당은 공산당이다.

    모두 거짓에 위선으로 가득찬 연설이었지만 속마음을 드러낸 부분도 있었다.

    “평양시를 주체조선의 수도, 선군문화의 중심지답게 더욱 웅장하고 풍치수려한 도시로 만들며 (중략) 인민들을 위한 현대적인 문화후생시설과 공원, 유원지들을 더 많이 건설해 우리 인민들이 새시대의 문명한 생황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극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북한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모든 주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의도였다면 절대로 이런 발언은 못했을 것이다.

    대동강변에 새로 생긴 실내수영장은 1주일에 두 번 일반 주민에게 개방되는데 입장료가 7.4달러(우리 돈 기준 8300원)이지만 손님들로 꽉 들어차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입장료는 북한 노동자 4~5개월치 월급에 해당한다.

    놀이공원은 어떻고, 대형마트는 또 어떤가. 대형마트를 시찰한 김정은이 지방에도 건설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평양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주민들이 돈이 없어 물건이 팔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재원이 없어 마트 하나 개설하는 데도 애로사항이 많다고 한다.

    이런 북한에서 유원지와 문화후생시설은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이지 알고 있지 않은가.

    김정은은 부국강병을 말하기 전에 민생을 먼저 챙겼어야 했고, 조국통일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을, 우호국과의 친선을 외치기 전에 신뢰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썼어야 한다.

    우주 정복을 위해서인지 어떤지 몰라도 결국 김정은이 쏘아보낸 그 미사일은 민생을 내팽개치고, 남북간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았으며 국제사회의 룰을 무너뜨렸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 “인민들에게 생활상 혜택이 더 차려지게 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10년동안 햇볕정책으로 일관했던 우리. 이제 떼만 쓰면 다 주는 줄로만 아는 김정은이다. 이명박 정부, 이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대북정책이 이런 북한의 못된 버릇을 싹 뜯어 고쳐줄 것이라 기대한다.

    김정은은 정녕 민생을 챙기고,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한다면 ‘북한 주민들 챙기기’부터 나서라. 미사일이나 핵무기 개발은 스스로를 더 궁지에 몰아넣을 뿐이다.

    우리도 이런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 돌변에 바보처럼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안보의식이 무너질 때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들어올지 모른다.

    국내 종북세력이 기승을 부릴지, 강력한 무력 도발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시도 마음을 놔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안보의식을 넘어서 경계력을 보강하고 상황보고체계를 개선하는 등 지난해 드러난 우리 군의 문제점을 대수술해야 한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예정돼 있는 만큼 미래를 향한 철저한 준비태세를 통해 강한 군대를 육성해 나가는 길만이 진정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