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예비역 해군대령의 편지

    ‘영웅세대’의 마지막 열정과 헌신이 12.19대선 승리를 만들었다

    배진영     
     
    해마다 연말이면 잊지 않고 연하장을 보내오는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이라는 분이 있다.
    6.25당시 부산에 상륙하려던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북한 선박을 격침시킨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이었다. 대령으로 예편한 후에도 해군이나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6.25때 전사한 부하들을 추념하는 일들을 많이 해 온, ‘평생 해군’인 분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미국 국립기록청 문서를 많이 발굴해 온 방선주 박사가 “6.25 발발 직후 한국 해군이 대한해협에서 괴선박을 격침시켰다는 문서를 발견했는데, 한국 해군이 보도연맹 관계자들을 수장(水葬)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었다. 방선주 박사가 말한 괴선박 수장 사건이 백두산함이 북한 해군선박을 격침시킨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글을 <월간조선>에 ‘기자수첩’ 형태로 실었더니, 그걸 읽고 최영섭 대령께서 연락을 주셨다.

    이후 최 대령께서는 가끔 전화를 주시고, 연말이면 연하장을 보내 주신다.
    나도 생각이 나면 문안인사를 올리곤 한다.
    최 대령님이 보내 주시는 연하장은 ‘지난 한 해 감사했다’는 식의 의례적인 게 아니다. 한자가 가득 박힌, 그리고 한 자 한 자에 애국심이 가득한 글이다.
    이번 연말에도 최 대령님께서는 어김없이 연하장을 보내 주셨다. 혼자만 읽기에는 아까워서 그 내용을 옮겨본다. (* 한자음은 내가 단 것이다. 최영섭 대령께서 한자로 적었지만,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한글로 표기했다)

    ------------------------------------------------
    恭賀 癸巳 新歲(공하 계사 신세)

    天地者 萬物之 逆旅(천지자 만물지 역려), 天地(천지)는 萬物(만물)의 旅人宿(여인숙)이요
    光陰者 百代之 過客(광음자 백대지 과객), 시간은 영원한 과객 같도다.
    浮生若夢 悤悤望九旬(부생약몽 총총망구순), 꿈같은 浮萍草(부평초) 삶 허둥지둥 달리다 보니 어느덧 구순을 바라보게 되었구나.
    夕陽照霄壤 風雨友生遙(석양조초양 풍우우생요), 석양은 하늘과 지평을 물들이고 비바람 세월 속에 친구들이 한 둘 떠나가네.

    大選(대선)의 회오리 바람 속에 歲暮(세모)를 보냅니다.
    左와 右의 대결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수호세력의 血鬪(혈투)였습니다.
    天佑神助(천우신조)!
    하늘이 세우시고 지키시고 일으켜 세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헌법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國運隆昌(국운융창)의 曙光(서광)이 활짝 밝았습니다. 민주당 鄭某(정모) 曰(왈) , “꼰대 늙은 투표에 인생을 맡기지 말라”고 저주하고 貶(폄)한 “꼰대 늙은이들” 日帝(일제), 해방, 건국, 전쟁, 재건,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後代(후대)들이 배주리지 않고 멸시 받지 않는 나라 세우려, 허기진 배 草根木皮(초근목피)로 채우고 누더기 걸쳐 입고, “잘 살아보세” 합창하며 손발이 닳도록 땀 흘리는 험한 세월 줄기차게 달려왔습니다.이제 마음 편하게 눈감을 수 있겠습니다. 건국 대통령, 민주화 토양 배양한 산업화 대통령도 외면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북방한계선도 지킬 수 있고 제주 해군기지도 건설할 수 있고 主敵(주적)개념도 살아나 國防籬牆(국방리장)이 튼튼하게 되었습니다.
    국립현충원에 잠드신 호국의 英靈(영령)이시여, 해와 달이 지키는 가운데 편히 쉬옵소서.
    지난 세월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빚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硝煙(초연) 자욱한 戰線(전선)에서 싸운 전우들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尊尙(존상)께서 老兵(노병)에게 베풀어 주신 無量鴻恩(무량홍은) 筆舌亂呈(필설난정) 平生難忘(평생난망)이옵니다. 晩年(만년)의 餘白(여백) 감사드리며 메워 가겠습니다. 癸巳新歲(계사신세)에 創造主(창조주) 恩眄(은면)으로 尊位(존위) 康寧無疆(강녕무강)하시고 尊宅(존택)에 充閭之慶(충려지경) 있으시옵기 希願長禱(희원장도)하옵니다.

    壬辰歲暮

    老兵 崔英燮 謹呈
    ---------------------------------------

    이렇게 인쇄된 연하장 말미에 손글씨로 “배 기자님, 이 노병 깊은 배려에 감사 올립니다. 최영섭 드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대선을 앞두고 혹시라도 종북좌파에게 다시 나라가 넘어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다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을 老兵의 마음이 절절히 녹아 있었다. 또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낸 세대의 자부심도 느껴졌다.

    마지막 구절에서 다시 한번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이 분들에게 빚진 것은 바로 우리들인데 (백두산함이 부산에 상륙하려던 특수부대를 태운 적함을 격침하지 못했으면, 6.25전쟁은 유엔군이 참전하기도 전에 김일성의 승리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그 끝없는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들인데, 그 인사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어른이 고맙다고 말하다니...만년의 여백을 즐기면서 쉬셔야 할 어른이 여전히 나라 걱정에 노심초사했다니....고맙고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민주당에서는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 졌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그런 선거를 승리로 만든 것은 새누리당도 아니고, 박근혜도 아니다.
    6.25때 나라를 지켰고, 초근목피로 배를 채울 정도로 지지리도 가난하던 이 나라를 이만큼 만든, ‘영웅세대’의 마지막 열정과 헌신이 12.19대선 승리를 만든 것이다. ‘영웅세대’의 순수 열정이 정동영이니 조국이니 공지영이니 하는 철부지들의 더러운 증오와 패악질을 이긴 것이다.

    최영섭 대령께 전화를 올렸다. “대선 앞두고 노심초사하시다가 선거 결과에 안도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게 보였어요?”라면서 껄껄 웃으신다.
    최영섭 대령님, ‘영웅세대’의 모든 어른들, 감사합니다!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