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1시,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관에서 열려
  • 2011년 9월 옛 서울역 광장에 동상 하나가 들어섰다. 지금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동상은 보지만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 64살의 나이로 일제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강우규 의사다.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1919년 9월 2일, 남대문 정거장(舊서울역 광장)에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던 ‘왈우(曰遇) 강우규 의사’의 순국 92주기 추도식을 오는 29일 오전 11시에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강인섭) 주관으로 연다고 밝혔다.

    강우규 의사는 1955년 평남 덕천에서 태어났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북간도 두도구(頭道溝), 길림, 시베리아, 연해주 등지를 여행했다. 중국 길림성 요하현(遼河縣)에 동광(東光)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에 힘쓰기도 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노령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5월에는 노령의 노인동맹단(老人同盟團)에 참가, 노인들을 대표해 조선총독을 폭살할 계획을 세워 폭탄을 구입, 허형(許炯)과 함께 원산을 거쳐 8월 5일 서울에 도착했다.

    강 의사는 서울 안국동 김종호(金鍾鎬)의 집에 머물면서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9월 2일 남대문 정거장으로 가 신임 총독 일행이 마차를 타려는 순간 폭탄을 던졌다. 일제 경찰 스에히로(末弘又三郞)가 즉사하는 등 37명의 사상자가 생겼지만 사이토 마코토 신임 총독은 살아남았다.

    강 의사는 의거 보름 뒤인 9월 17일 종로구 사직동에서 일제 앞잡이 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혔다. 강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고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사형 집행 당시 일제 검사가 “감상이 어떠냐?”고 묻자 강 의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단두대위에 홀로 서니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으리오(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2011년에는 강 의사의 동상이 서울역 광장에 세워졌다.

    오는 29일 강우규 의사 추모식에는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광복회원, 평안남도민회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력보고, 내빈 추모사, 헌화․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