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되고 함량 미달 법관 도려내야 사법부 산다"
  • ▲ 박경귀 원장ⓒ
    ▲ 박경귀 원장ⓒ

    '가카 빅엿'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서기호 판사가 '나 꼴찌다. 하지만 불량하지 않다.'며 법관 재임용 심사에 반기를 들었다.

    맞다. 누가 누구를 평가할 것인가? 신이 아닌 인간이 인간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를 갖는다. 하지만 평가의 내재적 결함이 평가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막연하게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 생활하는 모든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evaluation)'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평가는 그 자체가 상대성을 갖는다. '비교'를 통한 가치의 확인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교기준이 공식적 평가목적과 평가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할 뿐이다. 일상 사교에서는 인품, 지력, 재력이 평가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기업에서는 실적과 생산성이, 공공조직에서는 조직목적에 부합되는 직무수행 능력과 실적이 중시된다.

    어느 평가든 평가자가 평가에 임하는 순간, 주어지는 공적 평가기준 이외에 자신의 인식, 지식,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기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완전한 절대평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불가피한 상대평가의 산물인 '꼴찌'에 대해 너그러운 시선을 갖기도 어려운 게 냉혹한 현실이다.  

    특히 일정규모의 기업과 공공조직은 방대한 인력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인사평정', '근무성적평가' 등의 이름으로 정교한 상대평가 절차를 운용한다. 하지만 평가의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조직 구성원이 평가에 임하는 자세, 근무 태도, 조직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달리 나타난다. 특히 평가결과의 활용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수준으로 하느냐가 구성원의 근무행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철저한 성과주의자로 유명했던 GE의 전 회장 잭 웰치는 사원평가에 2 대 8의 파레토 법칙을 적용했다. 그는 구성원을 20:70:10의 비율로 고중저(高中低) 성과자로 구분한 후, 상위 20%에 과감한 성과보상을 주고, 하위 10%는 강력한 경고를 주거나 퇴출을 시켰다. 이를 통해 대다수 중간등급 70%의 인력에게 재직(在職)의 안정성을 주면서도 고(高)성과 보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퇴출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높여 조직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민간기업의 인사 및 성과평가제도의 체계는 이와 유사하다.  

    정부조직은 어떤가?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하위 성과자에 대해 직위해제 후 퇴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지만, 근무성적평정이 실질적인 퇴출의 기준으로까지 활용되고 있지는 않다. 단순히 매년 적은 금액의 성과보상금 지급 및 연봉인상의 기준으로만 부분적으로 환류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高)성과자와 저(低))성과자 모두에게 큰 자극이 되지 못하고, 평생 직업의 안정성을 누리게 된다. 한번 공직에 입문하면 통상적으로 60세 정년까지 근무한다. '철밥통' 이라는 질시와 비아냥을 받는 이유이다.

    다행이 법관은 법률로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재임용 적격심사를 받아 임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법관 재임용 적격 심사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법관의 자질과 판결의 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장치이다.

    하지만, 그동안 법정에서 막말이나 부적절한 재판 운영, 국민의 법인식이나 사회적 통념과 괴리된 판결 등으로 사법 신뢰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지탄을 받은 일부 법관에 대해서조차 엄격한 평가 및 퇴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임용 심사 탈락자가 거의 전무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된 지 오래이다. 주기적인 법관 인력의 '물갈이'를 통한 '판관(判官)의 질'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임용 심사를 앞두고 서 판사가 자신의 근무성적 평정결과를 스스로 공개했다. 10년 동안 하(下)등급을 5번 받았다. 스스로 '하위 2%'라고 고백했듯이 늘 꼴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수준의 인력은, 민간기업의 예를 보면, 아무리 너그러운 기업이라도 '3진 아웃제' 등으로 벌써 퇴출되었을 것이다.

    서울시, 울산시 등 여러 지자체에서 시행한 '3% 퇴출제'에 비추어 보아도, 최근의 막말 파동과는 전혀 무관하게 10년 동안 여러 번 퇴출 기회를 넘긴 셈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서 판사가 생존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이하다.

    이제 서 판사의 커밍아웃으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법관 근무성적평정제도 운영의 맹점이 고스란히 공개되었다. 물론 실질적 퇴출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퇴출은커녕 최하위자에게 긴장감을 주거나, 격려 고무하는 기능으로 작동되지도 않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대법원의 법관 인사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 판사의 이번 공개사건은 피평가자로서 재임용 탈락 위기의식에서 나온 선제공격의 성격이 짙다. 재임용 심사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압박인 셈이다. 자신을 탈락시킬 경우, 정치적 희생양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점을 참작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그가 무엇을 기대했든 비공개 원칙의 근무성적 평정 결과를 공개한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다.

    법관 내부평가제도에 대해 근거 없는 불신을 조장하기보다 형편없는 등급평가를 받아온 자신의 초라한 실적에 대한 성찰이 우선되어야 했다. 사실 상식적으로 근무성적 평정제도가 서 판사에게만 편파적으로 운영되어 왔다고 볼 수 없다면, 막말로 사회적 물의까지 빚은 마당에, 그동안 자신의 근무태도, 직무수행 역량, 근무실적에 대한 자성과 함께 재임용 심사를 차분히 기다리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재임용 심사는 객관적인 실적자료와 근무성적 평가에 근거해서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근무실적이 불량하다면 그에 근거하여 재임용에서 탈락시켜야 한다. 물론 막말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안은 법관의 품격과 명예를 실추시킨 징계의 대상은 되겠지만, 신분유지의 가부를 결정하는 재임용 심사에 직접적으로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만약 공직배제에 상당하는 명확한 실적 불량을 확인하고서도 시중의 보복성 오해를 두려워하여 재임용한다면 이 또한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법관 재임용 심사제도가 실질적으로 법관의 인적 쇄신과 역량 제고의 기제로 활용되도록 혁신하는 일이다. 한번 어린 나이에 판사로 입직하면 원하는 한 계속 근무하는 경직된 제도를, 경륜과 식견을 갖춘 변호사가 판사로 지속적으로 충원되는 유연한 시스템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법부를 만드는 일은 편향되고 함량미달인 법관을 도려내는 엄중한 자정의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