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포지교(管鮑之交)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한자성어다.
     

  • 관중은 길이 역사에 남는 명재상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친구 포숙아의 도움으로 숱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관중은 자기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자기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라고 고백하였다.

    “내가 초년에 어려울 때 일찍이 포숙아와 장사를 하였다. 장사를 해서 생긴 이익을 나눔에 있어서 내가 많이 차지하였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꾸몄으나 도리어 더욱 어렵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보면 유리한 경우도 잇고 불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차례나 벼슬길에 올랐으나 세 번 다 군주에게 쫓겨났다. 그러나 포숙아는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때를 못 만났다고 이해해 주었다.
    나는 일찍이 세 번 전쟁에 나가 세 번 다 도주하였다. 그런데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음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자 소홀은 따라 죽었으되 나는 옥에 갇혀서 욕을 당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없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功名)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을 것을 부끄러워함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
    -『사기(史記)』「관안열전(官晏列傳)」-
     
    보통 사람들은 여기까지는 잘 알고 있다.  관포지교라는 숙어를 배우면서 포숙이 정치적으로 반대진영에 속해있던 관중을 환공에게 천거해서 재상이 되게 한 것까지는 말이다. 이 관중은 중국 최고의 명재상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뒷부분이 있다.  관중이 포숙을 차기 재상이 되지 못하게 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한비자』와 『사기』에서는 이 부분을 약간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한비자에 의하면 관중이 임종에 즈음하여, 환공이 그를 찾아오게 된다. 환공과 관중은 관중의 운명이 다 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관중의 후계자, 차기 재상자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된다.  환공이 관중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사람은 바로 포숙이었다. 환공 또한 오랫동안 자신을 보좌해오고 관중을 천거하였던 포숙을 재상으로 삼을 생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환공의 질문에, 관중의 대답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 아니 되옵니다. 그는 강직하고 괴팍하고 사나운 사람입니다. 강직하면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 괴팍하면 인심을 잃게 되며, 사나우면 백성들이 일할 용기를 잃게 됩니다. 두려운 것을 모르는 그는 패자의 보좌역으로 마땅치 않습니다." (한비자)

    한비자에서 관중이 포숙아를 평가한 부분을  사기의 관중편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쪽이 진짜 관중이 한 얘기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

    " 물론 포숙아는 군자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정치와 잘 맞지 않습니다. 포숙아는 선악을 너무 분명하게 가릅니다. 선을 좋아하는 것이야 군자의 도리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악을 싫어함이 너무 분명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포숙아는 사람이 한번 잘못하거나 악의 길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평생 그를 안보려 할 정도입니다. "  (사기 관중편)

    이어서 환공은 자신이 측근으로 생각하는 수조, 개방, 역아에 대해 물어봤으나 관중은 이들을 멀리하라고 하고, 습붕을 재상으로 삼으라고 추천하였다.  환공은 그 자리에서는 관중의 말을 옳다고 여기고 동의했으나, 막상 관중이 죽고 나니 관중이 천거한 습붕이 아닌 측근 '수조'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는 역사에 남아 있다.  수조가 재상이 된지 3년후, 수조는 반란을 일으키고 환공을 죽였다.

    그러나, 어느쪽이 관중의 진정한 평가였던지, 관중이 절친 포숙이 재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관중의 매서운 평가 때문일까? 포숙의 가문은 이후 제나라에서도 명문 대부로서 10여대에 걸쳐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포숙은 살아 생전에도, 그리고 죽어서까지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이는 관중의 혹독한 평가 덕이라고 하겠다. 만약 포숙이 차기 재상이 되었다면, 그의 성격상 많은 고난을 겪거나, 백성들이 고난을 겪었을 것이다.

    제나라의 환공은 관중의 말을 듣지 않은 댓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자기에게 입속의 혀처럼 살갑게 굴며, 색을 밝히는 자기를 위해 미인을 데리고 궁궐로 들어오기까지 하던 측근 수조의 행동을 충성으로 착각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았지만, 그 댓가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제환공을 미련하다 탓할게 아니다. 지금의 우리들은 어떠한가?  무상복지니 반값등록금이니 하는  매력적인 미인들을 제공하는 간신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오히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충신들을 바른말 한다고 미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