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배후에 드리워진 '러시아' 직시해야  
     
     北급변사태 발생시 완전한 '영토회복' 어려울 수도
    金泌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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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과 푸틴의 만남. 한국이 북한의 변화과정(급변사태)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주변 4강의 북한 선점을 방관하면 △김정일 사후 또 다른 형태의 북한 독재 정권의 등장 △중국에 의한 북한 지역의 동북 4성화 △북한 지역에 대한 UN의 신탁통치 △압록강-두만강 접경지역이 완전히 배제된 ‘불완전한 통일’ 등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globalsecurity.org 

     "제국간(諸國間)의 상호 경제 관계 확대가 상호 이해와 평화를 추진한다고 하는 전제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사무엘 헌팅턴, 美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제(諸)정부의 외교 정책의 중대한 결정요인이 되는 것은 경제적 요소가 아니고, 군사적-정치적-민족적 요소인 경우가 많다." (케네스 왈츠, 美국제정치학자)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반(反)자유통일 세력은 중국과 김정일 독재 정권, 그리고 러시아라 할 수 있다. 러시아에게 있어 극동지역은 역사적으로 동방 진출의 통로이자 또 다른 해양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였다. 특히 동서 냉전 구도 하에서 극동지역의 안보 전략적 가치는 절정에 이르러 구소련은 이 지역 군비증강에 총력을 기울였다.
     
     극동지역은 최근 들어 러시아에 있어 단순히 군사 안보적 이해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적 이해까지도 교차하는 새로운 안보 요충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러시아 군사력, 서방중시→동서(東西)균형 배비로 전환
     
     이는 구소련이 NATO에 맞서 ‘서방 중시’ 전력 배비에 치중했던 데 반해 러시아의 전력 배비(ratio)태세가 점차 ‘동서(東西)균형’ 배비로 전환되어온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최근 들어 러시아 국내 여론이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면서, 또한 동북아 안보 논의에서 중국과 일본의 발언권 증대와 러시아의 소외가 대비되면서 극동지역은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게다가 극동지역에 중국계 불법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의 경제 활동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불만이 드세어지면서 이 지역에 대한 국가적 비중은 재인식되고 있다.
     
     아울러 NATO 확대 절차의 본격적 논의는 러시아 국민의 안보의식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의 이 같은 대내적 변화는 정군(政軍) 지도층이 극동지역 군사태세를 재정비할 수 있는 재정적 여건은 물론 정치적 동기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현 추세대로 러시아의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할 경우 러시아의 극동 전력의 향방은 멀지 않아 가시화될 것이다.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였다. 특히 러시아 정부가 95년 8월 과거 35년간 유지돼온 러·북 군사동맹조약을 96년 9월10일 연장시효가 만료될 때 폐기하고 다른 조약으로 대체하겠다는 의사를 통보, 그동안 문서상으로나마 남아 있던 양국의 동맹관계가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김정일 ‘러·조 친선선린 및 협조조약’ 체결
     
     북한 입장에서도 지난 몇 년간 러시아는 중국과 비교해 안보·경제 외교 목표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북한은 러·북 군사동맹조약을 대체할 ‘러·조 친선선린 및 협조조약’ 체결(2000년 2월9일)로 과거의 양국 관계를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이 조약은 한반도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양국이 관련 문제를 상호 협의(안보 위기 시 양국 즉각 접촉 및 군사협력 체결)한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00년 6월 푸틴 대통령에 의해 승인된 ‘러시아연방 대외정책 개념’에 의하면 러시아 정부는 한반도 상황을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관심대상으로 삼고 첫째, 한반도문제의 해결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 둘째, 남북한과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이 같은 대(對)한반도 인식을 기준으로 볼 때 러시아는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과 함께 중국과 더불어 한반도 문제에 직·간접적인 개입을 시도할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한반도 유사사태 발생시 연해주 등 극동지역에 피해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예방 차원에서 북한 군사시설을 사전에 단독으로 공격하는 방안을 수립해 놓고 있는 상태다.
     
     러시아, 北핵무기 사용 징후 보일 경우 '對北선제공격'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Izvestiya)는 2003년 7월 31일자 보도에서 러시아 국방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 북한 군사 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선제공격 계획은 오랜 검토 끝에 수립됐으며,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징후가 보일 경우 러시아 최대 함대인 태평양함대를 동원해 먼저 북한의 미사일기지를 공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탈북자 출신의 대북전문가는 21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향후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놓고 매우 비관적인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한국이 북한의 변화과정(급변사태)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주변 4강의 북한 선점을 방관하면 △김정일 사후 또 다른 형태의 북한 독재 정권의 등장 △중국에 의한 북한 지역의 동북 4성화 △북한 지역에 대한 UN의 신탁통치 △압록강-두만강 접경지역이 완전히 배제된 ‘불완전한 통일’ 등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이 가운데 불완전한 통일 시나리오는 향후 한국과 미국 대(對) 러시아와 중국의 헤게모니 경쟁 전선이 한반도 이북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 일본, 한국 등 잠재적 도전세력의 위협을 완화시켜 주는 전략적 ‘완충지대’로 보고, 북한이 붕괴되거나 심각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대내 경제난과 국제고립 완화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전략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이 시나리오는 최근 러시아와 홍콩기업을 필두로 한 러·중 자본의 북한 진출이 주로 중북(中北) 접경지역에 집중되고 있으므로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내 이권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에 따라 자유세력과 반(反)자유세력이 선(line) 하나를 경계로 맞닿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일종의 ‘완충지대’를 설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강대국 이해관계 따라 ‘제2의 얄타조약’ 체결될 수도
     
     이에 대해 또 다른 대북전문가는 “현실성 여부는 일단 접어두고, 이런 시각이 몇 가지 생각해볼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한 뒤, “자유통일에 대비하는 한국의 준비태세와 역량이 취약해질 경우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제2의 얄타조약’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급변사태 시 주변국들의 개입방안에 대한 시각은 미국 쪽에서도 여럿 나와 있다. 현역 미군장교인 데이비드 S. 맥스웰이 쓴 ‘북한의 파국적 붕괴와 미국의 대응’(원제: Catastrophic Collapse of North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대표적이다.
     
     미 국방부의 시각과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이 시나리오는 한국과 미·일·중·러의 장단기적 이해관계, 미군과 한국군·UN군의 가능한 행동노선 등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그 일부를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지역 국가들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UN에 주도권을 허락함이 붕괴된 북한을 다루는 데에 가장 좋은 방책으로 보인다. 비록 그것은 누구에게도 이상적인 선택은 아니겠으나, 모든 당사국들로 하여금 그들이 바라는 최종 상태의 많은 부분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합의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경우는 군대 파견을 통해서, 일본의 경우는 재정지원을 통해서 등 지역의 모든 국가가 UN의 활동에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으므로 어느 한 국가가 주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지역에 안정을 가져올 것이며, 사회간접자본(SOC) 재건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장래 경제적 이익의 분배를 대가로 통일 비용이 각 국가에 분담되도록 할 수 있다.”
     
     맥스웰의 시나리오는 좋게 해석하면 한반도 급변사태 발생시 강대국들이 힘을 합쳐 안정을 확보하고 북한 재건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한반도에서 4강 중 어느 누구도 영향력의 상실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남북한의 통일문제는 그들 입장에서 부차적인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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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자료] 100년 만에 ‘시베리아’를 석권한 러시아
      ‘타타르(Tatar)의 멍에’에서 벗어난 러시아의 역습
     
     몽골은 13세기 스웨덴계 바이킹의 후예들이 건설한 키예프 공국을 멸망시키고 볼가 강 하류 지역에 위치한 사라이(Sarai)에 본거지를 마련한 뒤, 무려 200년 동안 러시아를 지배했다. 이 시기 이뤄졌던 몽골의 지배를 러시아에서는 ‘타타르(Tatar)의 멍에’라고 한다.
     
     15세기에 이르러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겨우 몽골의 지배를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모스크바 대공국이다. 모스크바 대공국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질녀와 이반(Ivan) 3세 사이에서 태어난 이반 4세 이후의 왕은 ‘차르’(tsar)라고 청했으며,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에 이어 ‘제3의 로마제국’이라고 자칭했다.
     
     ▲유목화된 터키계 유목민 코사크: 그러나 이처럼 다시 일어선 러시아 사회는 불안정 요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터키계 유목민과 유목화된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옛 지배층인 ‘코사크’Cossack)였다.
     
     로마노프 왕조는 이반 3세와 4세의 혈통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혈통이 왕이 되면서 성립됐다. 그러나 로마노프 왕조가 성립된 후에도 러시아 농민의 농노화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이에 저항하는 농민 봉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짜리즘(Rsarism)의 역사는 농민 봉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로마노프 왕조 하에서도 여전히 진행되는 농노화에 반대해서 일어난 대대적인 봉기가 바로 ‘스텐카 라친’(Stenka Ragin·1670년) 봉기다.
     
     17세기에 유럽에서 많은 농민 봉기가 일어났지만, 스텐카 라친 봉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다. 스텐카 라친은 농민 봉기를 일으켰던 지도자의 이름이다. 이 봉기에는 농민뿐만 아니라 코사크(Rosak or Cossack)도 가담했다. 코사크는 흥미로운 집단이다.
     
     원래 러시아말로 코사크는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러시아 농민들은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있었다. 코사크는 16세기 들어 농노화를 피해서 러시아의 변경 지역 혹은 폴란드 지역으로 도망갔던 농민 집단이었다.
     
     이들의 공동체는 말하자면 자치 공동체였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수장을 선출하고, 또 공동체의 일들을 성원들이 모두 참여해서 논의했다. 특히 코사크들은 말을 잘 탔다. 그래서 그들의 공동체를 ‘기병 자치 공동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17세기에 러시아의 변경 지역까지 농노화가 확대되자 코사크들은 다른 농민들과 함께 스텐카 라친 봉기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봉기는 차르에 의해 무참하게 깨진다. 이후 러시아는 동서로 약4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시베리아 정복에 코사크를 이용했다.
     
     ▲러시아의 본격적인 시베리아 경영: 시베리아는 우랄 산맥 동쪽의 대(大)삼림지대로 러시아어 ‘시비르’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이는 몽골어로 ‘습지대’라는 뜻이며 16세기 우랄 산맥 서쪽에 있던 ‘시비르 칸국’(Sibir Khanate)에서 유래한 말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한 목적은 외화 획득의 수단이 된 검은 단비 등의 모피를 세금으로 징수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본토에서는 남획으로 인해 귀중한 모피가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러시아는 코사크를 통해 과거 바이킹이 러시아 땅에서 행했던 것처럼 18세기 전반까지 약 100년 동안 시베리아를 정복한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건설한 거점도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1604년 시베리아 서부의 오브 강(Ob: 페르시아어로 물을 뜻하는 ‘아부’에서 유래)의 상류 지류 도하 지점에 건설한 톰스크(Tomsk: ‘가득 찬 강의 도시’라는 뜻)
     
     (2) 1628년 시베리아 중앙부의 예니세이 강(Einsei: 원주민 말로 ‘대하’라는 뜻)의 도하점에 요새를 건설한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
     
     (3) 1640년 북극해로 흐르는 시베리아 동부의 대하 레나 강(Lena: 원주민 언어로 ‘대하’라는 뜻) 중류에 모피와 금의 집산 도시로서 건설한 야쿠츠크(Yakutsk). 이 도시는 훗날 극동의 식민 거점이자 유배지로 성장했다.
     
     (4) 1652년 바이칼 호(Baikal: 원주민어로 ‘샤먼의 바다’를 의미)의 남서 약 65km 지점에 위치한 이르쿠트 강과 앙가라 강(Angara)의 합류점에 코사크의 월동 거점으로 건설한 이르쿠츠크(Irkutsk: ‘급류의 마을’이라는 뜻). 이곳은 몽골과 중국으로 통하는 루트의 기점이 되었으며, 모피와 금의 교역장소로 성장했다.
     
     이들 거점 도시를 연결해 루트를 개척한 코사크는 원주민에게 모피 세(稅)를 부과하면서 1649년에 오호츠크 해(Okhotsk, 원주민 언어로 ‘강 마을’ 이라는 뜻, 음역하면 한국의 옛 고대국가인 ‘옥저’(沃沮)가 된다)에 도달했고, 오호타 강 하구에 항구 ‘오호츠크’를 건설했다.
     
     한편,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러시아는 코사크 기병대를 이용, 중앙아시아의 터키계 유목민이 거주하는 카자흐와 키르기스, 타지크, 투르크멘, 우즈베키스탄 등의 여러 지역을 정복해 러시아령 투르키스탄(Turkistan)을 만들었다.
     
     삼림민족인 러시아아인이 과거 자신들을 지배했던 중앙아시아 유목민에 대해 역습을 가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