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는 철새중에서도 稀貴種(희귀종) 
     
      햇볕정책 비판하고 한미 FTA 찬성하더니...
    변희재(미디어워치)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북한 3대세습 비판 및 연평도 사격훈련 중지 요청 발언으로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손 대표는 연평 사격 훈련을 앞두고 “북한은 3대 세습을 하는 비정상 국가다. 주민이 굶어 죽어도 핵개발을 하는 미치광이 집단이다” “이런 비정상국가에 합리적 판단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들을 자극하다가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손 대표 발언은 대한민국 국군의 정상적인 훈련을 제1야당 대표로서 방해한다는 점 이외에 민주당 친북노선을 정립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전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북한과 김정일이 매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체제와 인물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에 점차 시장경제를 보급해나가며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뤄나간다는 발상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이러한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김대중 자서전 제2권 365페이지에서는 미국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자세히 소개돼있다.

    햇볕정책은 김정일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전제

    “김 위원장은 정중했고, 저의 얘기를 경청했으며 질문에 바로 답변했습니다. 많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번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말씀처럼 그는 아는 것이 많았고 지역 문제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통령님의 평가가 정확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실용적인 사람입니다. 이해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변치 않을 것이고, 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관계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손학규 대표 발언대로 북한과 김정일이 미치광이 집단이고 비정상적 국가여서 합리적 판단을 요구할 수 없다면 햇볕정책은 180도 수정돼야 한다. 미치광이들에 아무리 지원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이라는 애국우파진영 논리에 손을 들어주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민주노동당식 친북좌파로 사상 전향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북한은 목표에 따라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다. 비정상이라든가 비이성적이라는 우리의 잣대로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손 대표의 발언을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손 대표의 햇볕정책 부정 발언이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무려 15년 간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 대변인, 보건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얻은 손 대표 개인의 정체성 문제라는 데 있다. 손 대표는 지난달 30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도 “대북 평화 포용정책이 기본임은 틀림없지만 햇볕정책이 모든 것을 다 치유하고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고 언급, 당내에 파장을 낳았다. 이때도 정 최고위원은 “햇볕정책은 한반도 평화의 길이자 민주당이 계승 발전시켜야 할 우리의 대북 기조”라며 맞받아쳤다.

    손학규 한나라당 시절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우파노선 발언을 자꾸 하고 있으니, 한나라당 요직에 있었던 시절 발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006년 10월9일 민심대장정 기자회견 때는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북한은 책임을 지고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과 개발을 완전히 철회하기 전까지 어떤 경제적 지원도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이날 백령도 해병여단을 방문해서는 “우리가 한미 공조를 확실히 하면 북한이 도발하지 못한다. 대량 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면 국지전이 일어난다는 여권 논리는 국제정치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치광이 집단이니 자극하면 안 된다”는 민주당 대표로서의 발언과는 180도 달랐다.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01년 8월13일에는 “김대중 정권의 엉터리 개혁은 망국 개혁”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만 해결 하겠다는 건 어리석은 짓” “김대중은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 말라” “5.18 특별법은 반드시 제정될 필요는 없다”는 강경 발언도 쏟아냈다. 초선 의원 시절이었던 1996년 1월17일에는 “김대중 총재가 간첩 서경원으로부터 김일성의 돈을 받은 사실과 김 총재의 전력시비, 국민회의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사상적 배경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할 수밖에 없다”며 색깔론까지 제기한 바 있다.

    그러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신당에 참여하면서 180도 말을 뒤집기 시작한다. 2007년 5월9일 방북 인터뷰에서는 “햇볕정책은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폐기할게 아니라 계승,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말을 바꿨고 지난달 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설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우리가 보내 준 쌀을 정권 유지에 쓰더라도, 정부는 ‘그래도 부스러기라도 일반 주민들에게 가면 좋지’하면서 쌀 지원을 해야죠. 쌀 자체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논리 측면에서만 보자면 손학규 대표는 외통수에 걸려있다. 민주당 내 박지원, 정동영 등 친김정일 세력들과 보조를 맞추려다보면 지난 15년 간 한나라당 당원 신분으로 쏟아낸 햇볕정책과, 김정일·김대중에 대한 비난을 모두 뒤집어야 한다. 반면 한나라당 시절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정부와 여당이 아닌 민주당 내 유력 실력자들과 정면 싸움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해 손 대표의 불안한 위치를 가장 정확히 보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이 손 대표가 한나라당과 같은 노선으로 발언할 때마다 손 대표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양 쪽을 다 잡으려다 “북한은 미치광이 집단이니 자극하면 안 된다”라는 논리적으로 모순된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손학규는 창당과 합당, 탈당 반복하는 유시민류와 다른 정책철새

    이미 손학규 대표는 한미FTA 관련 입장을 180도 뒤집었다. “민주당은 한미FTA를 비준하지 못한 데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한다”(2008.5.26)에서 “한미FTA 비준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2010.11.9)로 바뀐 것. 손 대표는 한나라당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던 2007년 1월16일 16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 다음과 같이 한미FTA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한미FTA를 체결하면 8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데?
    - 그런 말은 믿지 않는다. 지금 세계 경제는 개방체제다. 새로운 시대정신은 창조와 개방과 통합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창조하고, 혁신을 해야 하고, 우리를 열어가야 한다. 가둬놓고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겠다면서 극단으로 가면 북한처럼 된다.”

    대한민국 정치계에서는 수많은 정치철새들이 양산됐다. 그러나 끊임없이 창당과 합당, 탈당을 반복하는 유시민류의 정치철새와 달리 대북정책, 시장개방정책 등 국가적 차원의 정책과 관련해 손 대표처럼 180도 입장과 말이 바뀐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철새형 기회주의 처신 탓에 손 대표는 자칫 민주당 내 정동영 등 친북좌파세력과 애국우파세력 사이에서 압사될 위험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변희재 /객원논설위원, 미디어워치 발행인: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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