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덟 번째 Lucy 이야기 ③  

     「이곳에요?」
    내가 손으로 방바닥을 가리키며 묻자 고지훈은 머리를 끄덕였다.

    「예. 정완의 아들 정장환이 1958년에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정장환은 5년 전에 81세로 사망하고 현재 52세 된 아들 정명규와 49세 된 딸 정민희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정명규는 서울시청의 공무원이라 바로 저기에서 근무하고 있지요.」
    하면서 고지훈이 눈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고지훈의 시선 끝에 광장 건너편의 서울시청 건물이 있는 것이다.

    「그래요?」
    쓴웃음을 지었던 내가 불쑥 물었다.

    「그 사람도 할아버지 정완과 이승만의 관계를 알고 있을까요?」
    「정장환이 35세때 휴전선을 넘어왔는데 바로 부산의 수산시장 관리자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배려를 해준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때니까요.」
    「그럼 정장환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궁금하시면 내일 만나보도록 주선을 해보지요.」
    「궁금해요.」

    내가 웃음 띤 얼굴로 자리를 고쳐 앉다가 가운 자락이 벌려졌다. 내 허벅지가 드러났으므로 고지훈은 머리를 돌렸다.

    그때 내가 말했다.
    「이리와요.」

    머리를 든 고지훈과 시선이 마주쳤고 나는 눈웃음을 쳤다. 고지훈이 그 의미를 모르겠는가?
    자리에서 일어선 고지훈이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고 방 안은 이제 더운 열기가 품어지기 시작했다.

    가운을 젖힌 고지훈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입술이 곧 내 젓꼭지와 가슴을 덮었고 열기에 뜬 나는 고지훈의 목을 두 팔로 감아 안았다.
    침대로 옮겨 갈 여유도 없는 것처럼 고지훈은 서둘렀다. 저고리와 바지를 떼어내듯이 벗더니 바로 소파 위에 나를 눕혔다.  

    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두 몸이 합쳐진 순간 나는 커다랗게 탄성을 뱉았다.
    고지훈의 남성은 내 샘에 빈틈없이 밀착되었고 그 포만감에 저절로 비명같은 탄성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끝없이 이어지는 쾌락의 감동.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으니까.
    이윽고 나는 온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을 받으면서 허공에 떠올랐다. 내 입에서 터진 환희의 함성이 몸을 더 솟구쳐 주는 것 같다.

    그리고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느낌을 받고나서 눈을 떠 보았더니 어느새 내 몸이 침대 위로 옮겨져 있었다. 섹스를 끝냈을 때 몸이 이렇게 가볍게 느껴진 경우는 처음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감동으로 벅찬 기분도 처음이다. 그러나 손끝 하나 까닥하기 싫었으므로 나는 가쁜 숨을 고르면서 고지훈을 찾았다.

    「어디 있어요?」
    그때 옆으로 고지훈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땀에 젖은 내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고, 저 탁자 위에 놓인 이승만 수기를 가져가요.」
    고지훈에게 몸을 맡긴 내가 말을 이었다.
    「가져가서 읽어요. 앞으로 나하고 같이 이승만의 수기를 읽도록 해요.」

    그래서 고지훈과 함께 1912년 이후 이승만의 행적에 동행하리라.

    1945년에 해방이 되었다니 앞으로 33년간 방랑자가 될 이승만이다.

    눈을 감은 내가 고지훈의 손에 몸을 맡긴 채 다시 말했다.
    「그 33년의 투쟁도 우리는 하룻밤에 읽게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