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덟 번째 Lucy 이야기 ①  

     이승만은 이제 두 번째로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1912년 3월 26일, 이승만의 38번째 생일이 되는 날이다.

    수기를 덮은 내가 탁상시계를 보았다. 11시 반, 2009년 5월 29일이다. 지금부터 97년 전의 일이었다.

    한동안 시계를 보던 내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버튼을 누르자 발신음이 세 번 울리더니 곧 응답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고지훈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고지훈은 밝은 목소리로 묻는다.
    「루시,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고.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말씀하시죠, 루시.」
    「찾아볼 한국 사람이 있어요.」

    그러자 고지훈이 짧게 웃는다.
    「수기에 적힌 사람이군요. 루시.」
    「그래요. 이승만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미래와 그 자손들이 어떻게 되었나 알고 싶어서요.」
    「좋습니다.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이름이 영문과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서 당신이 직접 보셔야 될 것 같아요. 내일 아침에 수기를 프론트에 맡겨 놓을테니 찾아가 주시겠어요?」
    「그러죠. 제가 복사하고 원본은 돌려드리지요.」
    「찾아볼 사람 이름에 표시를 해 놓을 게요. 부탁해요.」
    그러자 고지훈이 다시 웃는다.
    「당신이 관심을 가져주어서 오히려 내가 더 기쁩니다. 루시.」

    통화를 끝낸 나는 만족한 식사를 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좋은 대화를 나누면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내가 룸서비스를 불러 수기를 프론트에 가져다 놓았더니 고지훈은 소리 없이 찾아갔다.
    내 일에 방해가 될까봐 전화도 걸지 않았다. 나는 이런 남자가 좋다.

    서로 호감을 받고 잠자리를 하고나면 마치 몇 년 쯤 사귄 사이처럼 또는 제 소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사내들이 있다. 대개 아이큐가 낮은 사내들인데 멀쩡했던 인간도 그렇게 변하는 걸 보면 남자들의 진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을 마친 내가 저녁까지 먹고 나서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7시 반이었다. 프론트에서 키를 받아든 나에게 직원이 말했다.
    「메시지가 와 있는데요, 루시양.」

    받아보았더니 고지훈한테서 온 것이다.
    「언제든 전화 주세요. 오늘 일을 보고 드릴테니까요.」

    얼마나 성실하고 예의바른 사내인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도 보내지 않고 일을 마친 내가 호텔에서 키를 받을 때 메시지를 받도록 한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고지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 연결이 되었을 때 내가 말했다. 
    「고, 내 방으로 올 수 있어요? 괜찮다면요.」
    내가 뒷말을 그렇게 붙인 것도 예의다. 호텔방으로 이렇게 남자를 부른 적이 없는 것이다.

    고지훈은 통화를 끝낸 지 30분쯤이 지났을 때 내 방으로 들어섰다. 나는 마악 샤워를 끝낸 후여서 가운 차림이었는데 밑에는 팬티도 입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몇명은 조사 했습니다.」
    정색한 고지훈이 앞쪽 소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오늘 아침에 명단을 넘겨주었으니 12시간만에 알아내었다. 소문만 들었던 한국인의 「빨리빨리」 재능을 이번기회에 보게 되었다.

    탁자위에 서류를 내려놓은 고지훈이 말을 이었다.
    「먼저 노석준씨와 후손들의 신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석준은 총독부 소속 이구치 대좌의 조선어 통역으로 이승만을 위해 정보를 준 애국자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