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4일 김영사는 조금 까다로운 내용의 인문학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책이 출간되자 예상과는 달리 블로그에는 이 책에 대한 서평들이 급속히 퍼졌다. 소리 없이 독자들을 끌어 모았다. 특히 20대와 젊은 여성들이 이 책에 몰렸다. 그러자 출판사는 물론 언론도 놀라기 시작했다. 

    언론사들은 처음에는 이 책을 ‘하버드大 최고의 인기강의’라는 식의 서평만 전했을 뿐 그 내용이 정치철학 위주인데다 명확한 결론이 없는 탓에 몇 만 부까지 판매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런 언론의 예상을 넘어 너도나도 이 책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결국 언론사들 또한 이 책 열풍에 동참하면서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집었다.

    하버드大에서 배우는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30년 가까이 하버드大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25년 이상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일종의 강의록이라 할 수 있다. 

    1953년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마이클 샌델 교수는 27세에 이미 하버드大 교수가 됐다. 29세 때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大家)인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라는 논문을 발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다. 그런 그가 하버드大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처음에는 ‘정의’라는 것이 그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바뀔 수 있으며, 타인의 정의나 정의로움으로부터 파생된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우리네 기준이 때로는 매우 불합리하며,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주장의 모순점을 일깨워준다. 

    책의 본격적인 가르침은 그 다음부터다. 현재 세계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서구 정치철학 중에서도 자유주의의 근본이 되는 정치철학을 역사나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들을 통해 쉬우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책은 벤담의 공리주의, 그 다음에는 최근 우리 사회의 권력층들이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 도덕에 대해 깊은 연구를 했던 칸트의 이론, 존 로크가 국가를 설명하며 주장했던 사회계약설을 바탕으로 정의란 사회계약을 바탕으로 구성원 모두가 합의한 원칙에서 출발한다고 했던 존 롤스, 애초 미국에서 시작돼 최근 문제가 되고 있고 현재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소수민족 우대정책의 문제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사람들이 받을(또는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을 갖게 되는 것’이 정의라는 주장, 개인에서부터 집단, 나아가 국가까지도 도덕과 정의에 대해 어떤 의무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사회 또는 집단의 ‘공동선(공동체 자유주의와는 다름)’ 등을 설명한다. 

    이런 줄거리를 보면, 저자가 독자에게 ‘정의란 바로 이것’이라며, 뭔가 명쾌한 답을 줄 것 같지만 ‘정의’ 특히 ‘사회정의’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는 않고 끝을 맺는다. 그는 독자들 스스로가 이 책에서 보는 각각의 시각을 바탕으로 ‘과연 우리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사람들과 토론하기를 바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 사회를 휩쓴 이유 

    앞서 설명했듯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은 고대서부터 근대까지 발표된 주요 정치철학을 활용해 복잡다단한 현대인들 스스로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특히 ‘공동의 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돕는다. 

    이런 고민은 특히나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에 눌려 생존을 위한 일자리조차 찾기 어려운 30대 이하 젊은 세대들, 자기 스스로는 피지배층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돼버린 486세대,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끌었지만 외환위기의 책임을 지고 무대에서 강제퇴장당한 노인세대 등으로 가득 찬 우리나라에게는 현실적인 고민이기에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난 두 번의 정권에서 ‘이상주의자’들이 권력을 휘두르면서 지상(至上)가치가 돼버렸던 ‘인권’ ‘민주’ ‘관용’ ‘소수자 우대정책’ ‘개인의 자유’ 등이 우리 사회에서 일으킨 각종 문제들을 보는,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그들을 도와줄 책이 나오니 너도나도 구입한 건 아닐까. 

    아쉬운 건 그동안 ‘서민을 위한 정책’을 내세운 MB정부, ‘서민 정당’이라 주장하는 야당들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가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깊은 고민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통 사람들’의 고민을 외면해오다 이 책이 돌풍을 일으키자 다음 번 선거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 듣는 ‘정의란 무엇인가’ 

    아무튼 이런 우리 사회의 고민과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열풍 덕에 ‘정의란 무엇인가’는 5월 24일 출간된 뒤 불과 두 달 만에 25만 부가 팔렸다. 이 같은 열풍에 힘입어 오는 8월 19일에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주최로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와 기자들 간의 간담회를, 20일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샌델 교수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여는 강연회가 있다. 

    그동안 하버드大 학생들만 들을 수 있다던 ‘사회정의’에 대한 강의를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독자들은 크게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이미 읽고 고민한 독자들보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지키고 세우고 만드는 사람들이 먼저 이 강의를 듣고 ‘공동체’를 위한 정의가 무엇인지 한 번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강연회 참가는 출판사인 김영사의 카페(http://cafe.naver.com/gimmyoung.cafe)에서 선착순 900명 까지 신청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