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임 시절 큰 인기도 없고, 심지어 무능한 듯 여겼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온 국민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대중의 마음이란 조변석개(朝變夕改)라고 하지만, 하루 사이에 그는 최고의 대통령으로 미화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혹자는 이것을 감성적인 한국사람의 특성으로 돌렸다.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고 또 냄비처럼 금방 끓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국민성의 발로로 해석한다. 어떻게 해석되든, 대중의 행동은 대한민국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반영한다.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는 대중이 그를 통해 이루고 싶은 기대와 희망을 담고 있다. 이뿐 아니라 가까운 시간 내에 그 지도자가 하게 될 행동에 대한 기대와 그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다. 왜냐하면 특정 인물에 대해 대중의 이미지란 바로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또는 미래 사회를 움직여 가는 대중의 지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엑스레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스캔하는 방식으로 찾아낸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우리 대통령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았다.

    "결과에 대한 심각한 고려보다는 일단 시행하고 본다. 기득권이나 지지 세력만을 대표하는 정치를 한다. 타이밍이 적절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방식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만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이따금 '왜 저러나?'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한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강한 편이다.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고 주변의 평에 개의치 않는다. 이벤트성 행사를 잘하고, 쇼맨십이 있다. 한번 결정한 사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인다."

    이미지의 심리로 이런 특성을 보이는 사람의 행동방식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앞뒤 상황, 여건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여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보통 무데뽀 또는 독불장군이라고 한다. 이런 이미지의 사람은 자신만의 아집과 확신이 분명하다. 소신껏 일을 저지르고 밀어붙인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반응을 무시한다. 임기응변적인 이벤트성 행사나 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노력한다. 자기 확신에 근거하여, 추진하는 사업들을 제대로 홍보해야 한다고 믿는다. 진정성이 없다는 소리도 듣는다. 자기의 아집을 계속 부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기 쉽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도 일어난다.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는 더욱 강해진다. 이런 행동의 배후에는 막연한 피해의식에 근거한 아집도 있다. 만일 이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중은 이런 이미지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반발심과 분노를 갖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도, 모두 궁극적으로 자신이나 지지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왜 저러나" 싶은 생각과, "타이밍이 적절치 않다"는 믿음, 모든 노력을 쇼맨십의 발로라고 평가한다. 점차 이 사람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신뢰와 권위는 점차 사라진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의 사람은 이런 대중의 반응조차도 자신의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로 인식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분명한 대응책은 법치주의를 앞세운 경찰이나 검찰을 동원하는 공안정치이다.

    위대한 업적을 만들고 싶어하는 대통령이 있는 대한민국은 분명 축복받은 국가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민은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려는 대통령을 반기지 않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먹을 것 못지않게 접촉을 통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심리학 연구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실험실 원숭이도 먹을 것을 제공하지만 철망으로 만들어져 온기가 없는 부모보다, 따뜻한 위안을 주는 부모를 선호했다. 먹여주고 입혀준다고 부모 노릇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간절히 기대한다. 못 먹고 굶주린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이런 자식의 심정은 철없는 짓이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 마음은 바로 이런 자식의 심리와 유사하다. 그래서 국민은 다음과 같은 대통령을 간절히 원한다.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지금보다 미래가 좀 더 나아질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에게는 호감이 간다. 믿음직하고 신뢰감을 준다. 전통 지배세력을 바꿀 개혁가이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 민주주의 가치와 민주적 태도를 중시한다. 보통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정치인이다. 반대자와의 화해와 용서, 타협을 아는 사람이다.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시인하고 책임을 진다."

    (조선일보 6월 16일 A34면 '아침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