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롭다, 이해해달라 

    컬러링 음악이 다 흘러갔다.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라는 안내 음성이 이어졌다.

    ‘다시 전화를 걸까’하다가 수화기를 내려놨다.

    바쁠 터였다. 영화 ‘워낭소리’가 개봉 37일 만에 꿈의 기록이라는 100만 관객 돌파를 맞는 20일 오전. 이충렬 감독이 한가할 리 없는 날이었다. 전날인 19일 오후엔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회의실에서 제2회 한국독립PD상 특별상을 받은 그였다.

    20일 오후 4시30분엔 ‘워낭소리’ 제작사인 느림보가 마련한 긴급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단독 인터뷰가 어렵다면 기자회견장에서 볼 수밖에….’

    아쉬운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이 감독의 전화가 왔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수화기 저편 음성은 무겁고도 따스했다.

    “이해해 주세요. 너무 힘들어서.”

    목소리에서 진실이 묻어났다.

    신드롬으로 불릴 만큼 워낭소리에 대한 화제가 만발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라는 국가적 대사가 있었음에도 워낭소리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만큼 다양한 말들이 입으로 인터넷으로 흘러 다녔다. 수익금 배분에 관한 갖은 추측 기사들이 난무했고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영화 관람을 두고도 기자들은 각양각색의 정치적 해석을 실었다.

    총 제작비 2억 원으로 대박을 터트리자 수익금 10%를 최원균 할아버지 부부에 전달한다는 출처 불명의 기사까지 나왔다. 이 대통령과 영화 동반관람도 일부 네티즌들은 시비를 걸었다. 어느 진보 언론은 이 감독이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그렇게 자제를 당부했어도 일부 언론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을 계속 찾아가 부부의 소중한 사생활을 해치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제 뜻과 다른 일과 말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한 지경입니다. 너무 괴롭고요. 인터뷰는 조금 정리된 다음에 했으면 합니다.”

    힘든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이 감독은 몹시 미안해했다. 그리고는 “이따가 기자회견장에도 안 나갈 겁니다. 나가면 또 여러 말이나 질문을 하고 받게 돼서….”

    그는 “회견에서 제작자인 고영재 PD가 하는 말이 제 마음이니 그대로 믿어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수화기 너머 짓고 있을 힘든 표정이 마음속에서 그려졌다.

    이 감독이 한 마디 더 말을 건넸다. “이해해주세요.”라고.

    #우리를 로또 맞은 사람들 취급

    20일 오후 4시30분 광화문 일민미술관 5층 미디액트 긴급 기자회견장. ‘워낭소리’ 제작자 고영재 PD가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최근에 청와대 영화 관람 건 때문에 이충렬 감독이 너무 힘들어해 모든 대응은 내가 다 하겠다 하고 혼자 나오게 됐다"고 이 감독의 불참이유를 설명했다.

    “영화 수익금 배분과 관련해 이 감독이나 제 뜻과는 무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아 명확한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의 고 PD는 “사회가 우리를 마치 로또 맞은 사람처럼 취급을 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누구와 러닝개런티 관련 계약을 한 적이 없다. 영화의 흥행에 따른 법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는 수익금의 배분과 관련된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고 PD는 ”영화가 잘되는 것은 관객이 제작진에게 주신 선물이고 그 선물은 반드시 사회에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자세“라며 “워낭소리의 전체 수익금 중 30%는 독립영화 발전을 위한 곳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와 이충렬 감독은 ‘콩 한쪽도 나누는 사이’라며 “사회적으로 기여할 기부금을 제외한 모든 수익을 이 감독과 정확하게 반으로 나눌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 내외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자식이 성공하면 자식으로서 부모님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많은 것을 해드리고 싶은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고 PD는 “두 분에 관한 많은 관심이 오히려 두 분과 그 가족들에겐 피해가 될 수 있다. 저와 두 분 자녀분들 사이에서는 보도와 달리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아 달라”며 “돈보다 할아버지께서 원하는 물건을 사 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중을 밝혔다.

    #영화 정치적 이용 없다

    고 PD는 이명박 대통령의 영화 관람 및 이후 간담회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독립영화 하는 사람이 왜 구걸을 하느냐는 지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화를 관람한 것이 일회성 이벤트처럼 비쳐진 것도 유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독립영화의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제안이 이번 처음이었다”며 “독립영화 발전을 위해 제안을 할 기회라고 여겨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고 PD는 “하지만 간담회 기사에서 독립영화인들의 요구가 너무 적게 다뤄져 마치 퍼포먼스의 들러리처럼 보여졌다”며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독립영화에 대한 확실한 지원책이 논의되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