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 했다"
    "경제 힘든데 정치와 역사에만 관심 쏟는 것으로 보여 민심이반"
    "민주당 대선 구호도 기억 안난다"
    "권위주의 붕괴시켰지만 새 권위 만드는 데는 실패"
    "민주당 하면 유독 의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좌파 논객으로 불리는 진중권씨(중앙대 겸임교수)가 내린 민주당의 대선 및 총선 참패 이유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로 고민 중인 민주당이 해법을 찾기 위해 24일 진씨를 국회로 불렀다. 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원장 김효석)은 자당의 지지율 회복과 이를 위한 당의 방향을 찾고자 지난 18일 부터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대표 논객과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있는데 이날 진씨는 지난 18일 김호기 연세대 교수에 두 번째 강사로 나섰다.

    진씨는 민주당보다 이념적으로 더 좌측에 위치한 인물인데 진씨 스스로도 강연 시작 전 "다 알다시피 내가 진보신당의 홍보대사고 당원이기도 해 (민주당과) 시각이 많이 다를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과연 (민주당에) 먹혀 들어갈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민주당에 대한 진씨 진단은 매우 냉혹했다. 민주당을 지탱하고 있는 '민주'라는 구호가 더는 여론 호응을 받기 어렵다고 하자 한 참석자는 "민주나 통일이 정치적 의제가 되던 시절이 끝났다고 하면 (이를 토대로 한) 민주당의 미래는 설정 자체가 안되는 것 아니냐"며 반론을 했다. 

    앞서 진씨가 지적한 문제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민주당 하면 유독 의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론을 주도할 인물이 부재했다는 것인데 뚜렷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어 고민 중인 민주당 역시 차기 리더 부재가 지금의 지지율 부진에 큰 몫을 한다고 보고 있다. 진씨는 "민주당은 구심력은 없고 원심력만 존재한다"면서 "막연하게 테두리만 실로 표시해놓은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에게 뚜렷한 (당의) 성격을 어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진씨는 곧바로 "의원 개개인의 활동도 충분히 인상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탄돌이라고 하던데 4년 동안 이름이 별로 기억나는 의원이 없다"면서 "진보신당은 노회찬 심상정 등 대중에 각인된 의원들이 있고, 한나라당도 있는데 민주당 하면 유독 의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 뒤 "있다면 유시민 의원 정도인데 유 의원이 알려진 것도 '대중들에게 옳은 말을 하는 싸가지'로 알려졌지 대중에게 그렇게 어필하진 못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런 진씨의 비판에 강연을 주최한 민주정책연구소 원장 김효석 의원은 강연 뒤 서운함을 나타냈다. 진씨의 강연에 "고맙다"면서도 "좀 억울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 쪽 의원들이 제대로 보이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김 의원 옆에 앉은) 정봉주 전 의원(현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억울할 것이다. BBK 때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라고 했다.

    진씨는 "민주당이 상황인식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민주'니 '통일'이니, '참여'니 '자율'이니 하는 말은 관념적 사치일 뿐"이라며 "민주당의 정체성을 이루던 가치는 외려 환멸의 대상이 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경제적 토대가 흔들리면 늘 정치적 위기로 나타난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호남을 벗어나려 했는데 이 전략은 옳았으나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이런 정치적 기획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여론은 민주당이 "정치와 역사에만 관심 쏟는 것 처럼 보여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면서 "호남색을 벗으려 해 전통적 지지층마저 등돌리게 했고 이로 인해 리더십도 혼란에 빠져 노무현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낮은 지지율로 고생해야 했다"고 주장한 뒤 "게다가 김대중 같은 제왕적 카리스마를 스스로 버린 노 정권는 국민에게 뭔가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줬다"고 꼬집었다. 진씨는 "제왕적 카리스마를 버리더라도 민주에 대한 권위라도 있어야 했는데 유시민 의원 말대로 '대통령 씹는게 국민 스포츠가 될 정도'로 신뢰가 망가졌다"면서 "대중은 차라리 안정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봤고, 역선택으로 드라마를 통해 형성된 허구적 이미지이긴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씨는 "선거때만 진보라는 구호를 외쳤고 집권만 하면 다시 돌아간다. 그래서 대중이 환멸을 느낀 측면이 있다"면서 "노 정권은 사실 경제정책에서 우경화된 정책을 폈고 그러다보니 지지층을 배반하는 통치를 했다"고 지적한 뒤 "정치적으로 남은 (노무현)지지층도 노 정권의 본질이 서민과 중산층 정당이라는 토대를 배반하고 (우경화 된) 노 정권의 경제 정책에 찬성을 해버린다. 옛날에는 '개혁이기 때문에 노무현'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냥 '노무현이 개혁'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진씨는 민주당에 경제정책의 분명한 노선 정립을 당부했다. "민주나 통일이 정치적 의제가 되던 시대가 지났다"고 주장한 그는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 정당을 표방한다면 그 정치적 지향은 당연히 경제 정책 속에 구현돼 있어야 한다"면서 "지지자를 배신하는 정책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또 "현재의 비판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획자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 뒤 "대선구호도 기억이 안나고 뭘 하려 했는지도 기억이 남지 않고 한나라당 따라가기에 급급했다"면서 "'국개론'이 있다. '국민 개새끼론'이라는 것인데 '너희들이 찍어놓고 왜 이제와 욕하느냐'는 이론이다. 국민은 어느 정책이 실현될 것이라 믿어서 찍는 게 아니라 믿고싶어서 찍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런 대중의 욕망조차 사로잡지 못했다. 그래서 이명박씨 같은 허구적 드라마를 통해 얻어진 이미지가 슈퍼맨 같은 것으로 보인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