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0일 사설 '이재오 의원이 대통령을 도우려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총선 낙선 후 지리산 일대에 머물던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하산한 뒤 거침없는 언행으로 한나라당 안팎을 긴장시키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을 앞둔 때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며 복귀한 그의 행보는 정부·여당은 물론 국민에게도 스트레스를 준다.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혼자 기세를 부리는 모양새다. 일개 낙선한 국회의원이 이만큼 정가와 국민의 걱정 대상이 되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이 의원은 하산 이틀 후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했다고 한다. 18일에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권 지역구 의원이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차기 당 대표로 거론되는 영남 출신 박희태 국회부의장에 맞서 수도권 출신 안상수 원내대표를 민다고 알려졌다. 같은 날 저녁에는 갈등 관계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포함해 여당 중진 의원들과 만났다. 한 달 전 밝힌 미국 연수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흐리고 있다. 이 의원의 부산한 움직임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당권 투쟁으로 해석된다.

    실세(實勢)를 자처하면서도 18대 국회에서 원외에 있어야 하는 이 의원 입장에서는 당내 교두보를 마련하지 않으면 실세(失勢)가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 복당을 둘러싼 갈등이 수습되려 하는 한나라당이 개인적 계산 때문에 새로운 분란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나라당이 다시 당권 투쟁에 몰입한다면 가뜩이나 떨어져나간 민심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이 의원이야말로 한나라당의 총선 압승을 불발케 한 원인제공자 중 한 사람이다. 이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석달 만에 20%대로 떨어진 데도 그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지금의 행보는 이 대통령은 물론이고 자신의 재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설 때가 아니다. 이 의원이 지지하는 정의화 의원의 어제 원내대표 불출마 선언은 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시사한다. 같이 실세 반열에 있다가 낙선 후 일체 언행을 자제하고 있는 이방호 전 사무총장을 본받을 수 없는가.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습니다. 지리산에서 내가 잘못한 것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라고 고백한 초심을 되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