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새벽 동중국해에서 발생한 한국선적 골든로즈호와 중국 선적 진성(金盛)호간의 선박충돌 사건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사고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첫째, 선박충돌 직후 왜 진성(金盛)호가 조난된 선원들을 방치한 채 사고현장을 떠났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진성(金盛)호가 침몰하는 골든로즈호 선원들에 대한 구조의무를 회피한 것은 유엔 국제협약에 명시된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이며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둘째, 사건이 보도된 이후 중국정부가 보여준 책임회피의 모습이다. 사고 직후 중국정부는 사고해역을 자국 영해로 주장하며 헬기를 동원한 한국해경의 현장 접근을 가로막아 인명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또한 이후 조사과정에서 사고의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해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현재 양국 정부가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한국인의 마음에 가해진 상처와 중국정부의 횡포에 대한 우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사고는 국제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가해선박인 진성(金盛)호가 중국 선적 소속이며 향후 사고처리를 담당할 당사자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기 때문이다. 이번 충돌 사고를 선박간의 운항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일회적 사건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은 이미 동아시아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역맹주로 자리잡았으며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강대국으로 인정 받기 위해 중국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군사력과 경제력, 영토의 크기와 인구의 규모와 같은 객관적 지표만이 강대국의 지위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강대국화의 조건으로 중국이 물리적인 능력의 확장만을 고려한다면 주변 국가들은 중국에 맞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이고 이는 결국 동아시아를 긴장과 위기의 공간으로 몰고 갈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국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주변국가들을 안심시키고 평화와 안정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규범과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에 적합한 제도 및 가치와 규범을 형성하는데 성공한 국가들만이 진정한 강대국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근대로의 이행을 촉진한 스페인은 새로운 군사제도의 도입과 신대륙의 발견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의 서막을 열었으며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이 빚어낸 갈등에서 외국의 지식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범을 보였고 이후 국제법 및 해양법을 제도화시키는데 있어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또한 민주혁명을 통해 절대주의 왕정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인민주권이라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제시하였으며 전후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민족자결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해나갔다. 반면 일본이나 독일처럼 군국주의와 파시즘으로 치달은 국가들은 결국 강대국화에 실패하며 세계평화를 위협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이 진정한 강대국으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주변국들에 대한 하나의 위협으로 전락할 것인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중국정부의 노력여하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 중국정부는 무엇보다 국제법을 준수하고 인도주의에 충실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골든로즈호 침몰사고의 명확한 원인을 밝히고 피해자 및 피해선박과 이에 실려있던 철제코일에 대한 손해배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4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한 시 양국간 해공군 핫라인설치와 해상수색구조훈련에 합의했다. 이는 양국간의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사고의 발생시 양국정부가 신속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또한 작년2월 한국해경은 난파위기에 처한 중국선박에서 14명의 선원을 구조해준 전력이 있다. 이는 자국의 영해에서 위기에 처한 선박과 선원을 구조해야 한다는 국제법과 인도주의 정신을 충실히 수행하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 동안 한-중 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교류의 양적 증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제도와 규범이 뒤따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 사건이 양국 정부간 획기적인 제도와 규범을 마련하고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전환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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