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방식 변경을 두고 이명박·박근혜 두 진영은 11일에도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대로 확정돼야 한다” “중재안대로라면 박 전 대표는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고 대결을 이어갔다. 강 대표는 중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표 자리와 국회의원직을 모두 버리겠다고 나섰다.

    제대로 된 집안이라면 이쯤에서 당 안팎 이곳저곳에서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려는 사람들이 나섰을 것이다. 두 사람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목소리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에선 모두가 이·박 두 사람의 얼굴과 입만 쳐다보고 있다. 분쟁 해결 능력이 전무한 상태다.

    한나라당이 왜 이렇게 당 노릇을 못하게 됐을까. 그것은 한나라당 의원 거의 전부가 이·박 진영에 줄을 서 버렸기 때문이다.

    전직 국회의장·당 대표 같은 원로들과 다선의 중진 의원들부터 앞다퉈 이·박 두 진영으로 쫙 갈라져 버렸다. 국회의원들은 사령탑에서 오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쫓아가고 앉으라면 앉고 하는 행동대원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일부 의원들은 중립을 선언하고 ‘줄 안 서는 모임’까지 만들었지만 당내에선 “이제 줄 안 선 의원은 128명 중 5명도 안 된다”는 소리가 나온다. 한나라당은 겉간판일 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명박당’과 ‘박근혜당’의 문패만 걸려 있는 것이다. 이러니 ‘당내당’끼리 한번 부딪치면 그대로 직접 충돌해 깨지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정당의 중심은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의원은 당의 명함을 박아 다니는 당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상하의 위계로 얽혀 있는 관료나 관료조직과 다르다. 그래서 관료민주주의라는 말은 없어도 黨內당내 민주주의라는 말이 태어난 것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성숙 여부는 그 당이 제대로 된 당인가를 결정하는 척도가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의 존엄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고 이명박·박근혜라는 두 ‘장군’ 아래 ‘졸병’으로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 한나라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집권을 겨냥한다는 정당 조직이 군대 조직이 돼 버린 것이다. 정당 조직이 이렇게 퇴화하면 유언비어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군중집단과 다를 게 없다. 이런 정당이 이 상태로 집권해 나라를 이끌어간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