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흘째 당무에 복귀하지 않고있다. 지난 11일 전당대회에서 석패한 이 최고위원은 곧바로 지방으로 내려갔고 현재 전남의 한 사찰에 머물고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3일 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선출했다. 전당대회를 통해 5명의 최고위원이 선출됐지만 이날 의원총회에서 통상 지도부가 앉는 맨 앞줄엔 강재섭 대표최고위원과 전여옥 최고위원만이 자리를 채웠다. 현역 의원들만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의 투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원외인 강창희 최고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형근 최고위원은 의원총회에 참석했음에도 강 대표와 전 최고위원이 앉아있는 맨 앞줄에 앉지 않았다. 

    한 당직자는 "안 그래도 언론에서 '과거회귀다' '보수색채가 강하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는데 정 최고위원까지 앉아 있으면 보기가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뒤편에 앉은 것 같다"고 했다. 지도부 스스로 '영남색' '보수색'이 너무 강하다는 비판을 인정한 것이다. 

    이 최고위원을 도와준 그룹과 지도부 입성에 실패한 소장그룹 의원들은 강 대표와 강 대표를 지원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연일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2007년 정권창출을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할 새 지도부는 전당대회를 통해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에 바쁜 실정이다. 이처럼 한나라당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스스로 만든 지도부의 모습에 당당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할 만큼 불공정한 게임을 치렀다. 

    축제의 장이 되야 할 전당대회를 '실패작'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가장 국민적 지지를 많이 받고 있고 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불리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억울하다. 먼저 움직인 건 저쪽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등의 하소연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네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구성된 새 지도부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관리란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러나 새 지도부는 시작부터 '불공정 경선 시비'우려를 낳고있다. 이런 우려의 단초를 제공한 박근혜-이명박 두 대선 후보는 결국 자신들이 참여해야 할 게임을 스스로 망쳐놓은 셈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실수로 여권에 기사회생 할 기회를 줬다는 점이다.

    어짜피 두 사람의 충돌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전면전을 펼치며 박근혜-이명박 두 사람은 대선 전까지 감춰야 할 당의 전략을 스스로 훤히 노출시켰다. 대선을 1년 반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패를 경쟁상대인 열린우리당에게 보여준 셈이다. 열린당은 이번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결과에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있다. 자신감도 되찾고 있는 분위기다. 결국 한나라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얻은 것은 '상처'뿐이고 박근혜-이명박 두 사람은 이번 실수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를 고민해야 하는 부담만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