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조선 데스크'란에 이 신문 이선민 문화부 차장이 쓴 '뉴라이트, 이제는 사상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좌파에서 전향한 일군(一群)의 40대 사회운동가들이 중심이 된 자유주의연대가 2004년 가을 출범함으로써 시작된 ‘뉴라이트’ 운동은 한국의 우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정치권의 우파가 연이은 대통령선거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참신성과 추진력을 갖춘 뉴라이트는 우파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2005년 들어 교과서포럼·뉴라이트싱크넷·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의 단체가 잇달아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전교조에 대응하기 위한 자유교원조합이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른 북한 인권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도 전면에 부각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한 점은 두드러진 성과이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이제 새 방향을 모색할 시기에 이르렀다. 지난 1년여의 활동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운동은 성공했고, 사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의 활기에 비해 뉴라이트 사상은 아직 초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여러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이념은 ‘공동체 자유주의(Communitarian Liberalism)’이다. 시장(市場)과 법치(法治)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되, 개인주의가 극단화될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아직 구호를 넘어서 사상과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둥근 사각형’ 같은 모순어법(矛盾語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는 ‘공동체 자유주의’가 한국적 상황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때로 사상이 없이 운동만으로도 단기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또 현재 우리나라가 놓인 절박한 상황에서는 사상보다 운동이 더욱 시급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중장기적으로 성공한 정치나 운동은 대부분 사상이 뒷받침됐다. 사상이 결여된 정치나 운동은 선거 때마다 그 결과에 좌우되며 표류하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선거의 시기가 다가오면서 뉴라이트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의욕과 활기에 넘치는 ‘들판형’ 뉴라이트 운동가들이 정치권에 새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운동을 띄우느라 소홀했던 사상과 정책에 주력하는 것이다. 

    최근 좌파 지식인들이 ‘지속 가능한 진보’를 모색하는 싱크탱크를 잇달아 출범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보수’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제 유효하지 않다는 점은 대부분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다고 그 반(反)작용으로 시장지상주의나 신자유주의로 달려가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 남북한 관계나 대외관계 등도 어떤 식으로든 입장의 재정리가 불가피하다. 

    이제 뉴라이트는 정치와 사상으로 분화돼야 한다. 정치는 운동가들에게 맡기고 지식인들은 ‘지속 가능한 보수’와 ‘공동체 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좌파의 잘못된 현실·역사인식을 비판하는 ‘파사(破邪)’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면, 이제는 미래를 위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현정(顯正)’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다. 사상은 정치보다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