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술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정치권은 본격적인 정계개편 채비를 차리는 모습이다. 특히 현직 국무총리, 전직 대통령, 차기 대선주자 등이 새해 벽두부터 '개헌 카드'를 꺼내며 정치권의 요동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차기 대선 승패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대선 예비주자들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할 것으로 관측된다.

    열린우리당에서는 2·18 전당대회를 통해 김근태-정동영 두 대권 예비후보자의 대선 전쟁이 예고돼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의 정치적 행보에 따라 여권의 대선후보 구도는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고 전 총리의 입장이 정리되기까지 김-정 두 사람의 대결구도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이명박 서울특별시장간의 양강 구도 속에 강재섭 전 원내대표, 손학규 경기도지사, 이회창 전 총재 등이 가세하며 새로운 대선국면을 만들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나라당 차기 대선후보군의 경우 소위 빅3(박근혜·이명박·손학규)라 불리던 대권구도가 빅4(박근혜·이명박·손학규·강재섭)에서 빅2(박근혜·이명박), 그리고 빅5(박근혜·이명박·강재섭·손학규·이회창)구도로 변화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 지방선거와 맞물려 이들의 당내 세대결은 병술년 정치권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사학법 마무리와 지방선거 성적표가 대권운명 가를 듯'

    먼저 박 대표는 사학법 반대투쟁의 결과에 따라 대권전략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꽃피는 봄이 올 때까지 장외투쟁 하겠다"고 공언하며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박 대표의 대권행보는 '사학법'이 키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내에선 '단식'이란 극단적 카드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박 대표도 3일 출입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사학법 투쟁을 위해선 박 대표가 단식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며 입장을 묻자 "국민에게 (사학법의)부당성을 알려야 한다. 야당이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말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반대 안 하면 누가 하겠나. 지킬 것을 안 지키면 지방선거나 대선에서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갈때까지 갔다. 이젠 발을 뺄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는 등 당내에서도 박 대표가 사학법 논란에 대한 결론도출 없이는 다른 정치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는 관측을 하고 있는 만큼 '사학법 마무리'는 병술년 박 대표의 최대과제라고 볼 수 있다. 또 총선과 두번의 재선거를 통해 '선거 리더십'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박 대표에겐 5.31 지방선거 성적표가 자신의 경쟁력을 재입증하고 원활한 대권행보를 이어갈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포스트 이명박'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선전략 바뀔 듯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를 따돌리고 1위를 고수하던 고건 전 총리와도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이 시장은 '차기 서울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권레이스에 파란불이 켜질지 빨간불이 켜질지가 결정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시장은 얼마전 까지만 해도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에 대해 내심 만족하지 못해 다른 인재를 물색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젠 마음을 접고 현재 당내 '포스트 이명박'을 향해 레이스를 벌이는 주자들의 경선 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후문.

    무엇보다 청계천 효과로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부각된 만큼 이 시장은 차기 서울시장이 자신의 과업을 이어갈 수 있는 적임자가 당선이 되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이 시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의원은 "이 시장은 일로 컸기 때문에 자신이 일궈낸 일이 잘못될 경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차기 서울시장은 이 시장의 과업을 잘 이어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이 시장의 대권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지방선거 이후 당에 복귀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 시장에겐 5.31 지방선거가 자신의 대권행보를 결정할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학규 '박근혜·이명박과 차별화 통한 지지율 반등 시도'

    빅3로 불리며 박 대표, 이 시장과 함께 유력한 차기 대권 예비후보로 거론됐던 손 지사는 당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리며 당을 장악해가고 있는 박 대표와 청계천 효과로 훌쩍 커버린 이 시장 사이에서 고전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손 지사의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두 사람과의 차별화를 통한 반등을 노리는 모습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게 한다. 손 지사는 당내 대권 후보중 가장 먼저 장외투쟁을 비판하며 등원을 촉구했다.

    손 지사의 발언을 계기로 당내 소장파를 비롯, 장외투쟁에 비판적인 의원들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의 합리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다. 그는 또 황우석 파동으로 여야 대선주자들이 말문을 닫고 있을 때 "서울대를 떠난 황 교수를 다른 대학에서 받아주는 것을 검토해 볼만하다"며 논란을 일으켰다. 박 대표와 이 시장이 황 교수 파동에 언급을 자제하고 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박 대표와, 비교적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는 이 시장 사이에서 손 지사는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스탠스를 취하며 차별화하겠다는 것. 손 지사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손학규가 빠진 당내 경선은 재미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손 지사 역시 이 시장과 함께 지방선거 직후 당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현재 당내에선 소장파와 수도권 일부 의원들이 손 지사의 지원세력으로 분류되고 있다. 따라서 오는 7월 전당대회를 통해 소장파 의원들이 얼마만큼의 성적표를 거두며 세 확산을 이뤄낼지에 따라 손 지사의 당내 영향력도 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강재섭 '긴호흡 갖고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 올릴 수 있을지 여부 최대 관건'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강재섭 의원도 본격적인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의 통과로 당이 큰 내홍을 겪을 당시 구원투수로 나서 당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리며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분당위기까지 놓였던 당 분위기를 추슬렀다는 당안팎의 평가를 받으며 원내대표를 발판으로 본격적인 대권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막판에 열린당의 사학법 개정안 강행처리를 막지 못했고 이후 진행된 사학법 장외투쟁에서도 어정쩡한 스탠스를 나타내며 박 대표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인 점이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강 전 의원은 구랍 30일 사퇴기자간담회에서도 사학법에 대한 박 대표의 장외투쟁에 대해 내심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당직을 맡다보면, 과거에는 무심하게 지나치던 일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된다"며 "주위에서 계급을 보고 여러 가지 잔글씨로 된 서류를 가져와 속삭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돋보기를 쓰게 되고 돋보기를 쓰면 먼 곳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위 당직을 가질 수록 정치를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음을 주장한 것. 이 같은 발언은 박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학법 반대 투쟁에서 '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박 대표에게 멀리 볼 수 있도록 눈과 마음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어 "당직자가 되면 속삭이는 말과 잔글씨에 현혹되고 먼 곳이 잘 안보일 수 있다"며 "나도 그렇고 노 대통령도 그렇고, 계급장을 붙이려면 잔글씨에 현혹되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 멀리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권을 놓고 박 대표와 경쟁을 해야 하는 만큼 강 전 대표는 향후 민감한 현안을 두고 박 대표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도 높다. 당직에서 벗어난 만큼 소신발언을 하는 데 한층 자유로워 졌기 때문. 그러나 2007년 대선까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유지시킬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 강 전 원내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봐온 한 관계자는 "현안에 대처하는 순발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지속성은 좀 부족한 듯 하다"며 "긴호흡을 갖고 대선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여러가지 생각하는 이회창" 본인의 선택따라 대권구도 변화

    정계은퇴 후 굳게 닫아온 자택을 공개하고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 말문을 여는 등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회창 전 총재는 한나라당 차기 대권구도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0.26 재선거에서 직접 대구까지 내려가 자신의 측근이었던 유승민 후보의 선거유세를 지원하며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 이 전 총재는 이후 당내 차기 서울시장 후보의 출정식에 모습을 나타내며 '재기의 신호탄'을 터뜨렸다. 특히 이 시장이 "이 전 총재보다 노 대통령이 더 낫다"는 말을 하자 이 전 총재는 강하게 불쾌감을 나타냈고 결국 이 시장으로부터 정식 사과까지 받아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또 병술년 새해엔 서울 서빙고동 자택을 공개했고, 이날 당의 차기 예비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이 시장, 손 지사를 비롯, 지방선거 출마예정자인 김문수 김영선 남경필 맹형규 박계동 이재오 전재희 의원 등 1000여명이 대거 찾아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나라의 기본이 흔들리는 데 대한 염려를 하는 국민과 같은 심정으로 앞으로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정계복귀에 대한 여운도 남겼다.

    자신의 팬클럽인 '창사랑'이 지속적으로 그의 정계복귀를 부추기는 데 부담을 느끼면서도 특별한 언급을 하지않고 있는 점도 꾸준히 '이회창 정계복귀 의혹'을 갖게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이 전 총재 측에서도 당내에서 꿈틀거리는 '이회창 역할론'에 대해 "'자연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혹은 '정치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며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 가능성에 대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 이 전 총재의 측근인 유승민 의원도 "한나라당의 다음 정권 창출 과정에서 이 전 총재가 결정적인 순간에 간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회창 역할론'을 거론한 바 있고 당 관계자들도 "이 전 총재가 갖고 있는 당내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 총재가 어떤 선택을 할지에 따라 한나라당의 향후 대권구도 역시 크게 소용돌이 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