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고 현장 취재기] "아직 끝난 게 아냐, 유종의 미 거두자"
  •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수능 가채점 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수능 가채점 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가채점 안 했으면 안 했다고 써놓고. 점수는 좀 어떤 것 같아?"

    제자들의 수능 가채점 카드를 걷는 황환웅 교사의 손이 분주했다. 수능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고3 교실이 이제서야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진중한 표정으로 가채점 표기를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수능 망했어", "나쁘지 않아" 분명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어디선가 들렸을 법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교실을 따뜻하게 녹여갔다.

    24일 오전, 지난주 방문했던 서울 용산고등학교를 다시 찾았다. 수능이라는 인생의 커다란 허들을 넘은 용산고 3학년 학생들은, 지난주보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학생들 복장은 교복과 사복으로 제각각이었다. 다수는 물론 교복이었지만, 후드 티셔츠, 청바지 등을 입은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용산고 관계자는 "규정은 교복이지만, 수능 끝난 다음날이기도 하고 크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지난 15일부터 포항 일대를 뒤흔든 지진과 수능 연기, 모든 국민이 불안에 떨며 중대한 시험을 앞둔 아이들을 걱정한 일주일이었다. 황 교사는 "어쨌든 아이들이 후회없이 (수능을) 치렀으면 했는데 크게 불안해 하지 않고 시험에 임한 것 같다"며 "포항 학생들도 힘들었을 텐데 시험을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고 바라는 결과를 얻었으면 한다"고 수험생들을 격려했다.

     

  •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 가채점 카드를 제출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 가채점 카드를 제출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 내일부터 논술고사, 다음주는 기말고사

    수능이 끝났다고 마냥 신나게 놀 수도 없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종례와 함께 많은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교실에는 논술·면접고사를 준비하거나 담임과의 면담이 잡힌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 적지 않은 인원이었다. 황환웅 교사는 "2차 수시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학생들도 있어, 이제부터 남은 대입전형 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용산고에서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된다. 황 교사는 "논술도 이제부터 시작인데, 쉴 땐 쉬더라도 이제까지 잘해왔으니 끝까지 잘했으면 좋겠다"며 모두가 유종의 미를 거둬주길 당부했다.

    그는 "우리 반은 논술을 20명 이상 보는데 '안 되면 재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학생들이 꽤 있다"며 "서울권 대학에 진학이 가능한 2~3등급 학생들이 특히 그런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성동진 학생은 "저도 그렇지만,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최소 10명 정도는 재수를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수현 학생은 "재수를 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중앙대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기자도 재수를 경험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아쉬운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수능 가채점 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수능 가채점 카드를 작성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사진기자.

     

    ◆ "수능이 연기됐지만 영향은 크지 않았다"

    이강물 교사는 "올해 처음 고3 담임을 맡아 작년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학급은 지난 모의고사와 대비해서 더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면서 "아이들 반응이나 성적을 봐도 수능이 연기된 것에 심리적으로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종례를 마치고 복도에서 다른 반 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신민상 학생은 "지난 6월·9월 모의고사보다 더 나은 성적을 받았다"며 "서울시립대 건축학과를 지망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포항지역 수험생들이 계속된 여진 때문에 당일까지 크게 불안했을 텐데 시험을 잘 치렀다는 얘기를 (매스컴을 통해) 들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대학 전형 너무 많고 복잡…수시·정시 비율 5:5 돼야

    저마다 각자의 꿈을 안고 쉴새 없이 달려가는 꿈나무들, 그리고 그들을 열성적으로 이끌어주는 교사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소중한 일주일이었다. 기자도 모처럼 고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회와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 급격한 변화 주기와 정책의 복잡함에 교사는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이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교육계는 "대입전형이 수천 개에 이르는데 현장 교사는 물론, 학생·학부모도 혼란스러워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취지는 다양성이나 창의성 살리겠다고 하지만 정말 수능의 본 취지를 살리겠다면 정시 비중을 최소한 5 대 5로는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현행 수시·정시 모집 비율은 7.5 대 2.5 정도로 균형이 어긋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학생들은 교육계, 나아가 정부가 합의한 결정에 따르고 그 틀에 맞춰가야 한다. 수천 개로 세분화된 전형을 모르면, 정보를 아는 학생에 비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생을 좌우하는 수능을 치르며 숨가쁜 나날을 보내는 수험생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기자 역시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과의 일주일은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디 하루빨리 정형화된 올바른 시스템이 한국사회에 안착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